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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135억·집 팔고 '두리랜드' 숙식 "세상에 지기 싫습니다"

밴조선에디터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0-05-16 14:01

[아무튼, 주말] 

[변희원 기자의 한 點] 두리랜드 재개장 배우 임채무

어린이날을 앞둔 지난 4일 경기도 양주 두리랜드에서 만난 임채무. "왜 두리랜드를 운영하느냐"고 여러 번 캐물으니 마지막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요즘 TV를 켜면 옛날 드라마가 나오는 것처럼, 나도 나중에 누군가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연예인 임채무 말고 놀이공원 주인 임채무로."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오후 4시의 두리랜드 매표소. 경기도 양주시의 이 어린이 놀이공원 앞에서 어느 부부가 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여기 이제 돈 내야 한대. 지금 들어가면 두 시간밖에 못 놀아. 내일 아침 일찍 와서 놀자"고 말하면서 부모는 칭얼대는 아이를 끌다시피 주차장으로 데려갔다. 남편이 아내를 질책하듯 물었다. "당신, 두리랜드는 입장료 안 받는다고 하지 않았어?"

배우 임채무(71)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두리랜드가 지난달 30일 재개장했다. 실내 테마파크동과 교육 연수동 등 실내 시설 두 동을 짓고, 실외 놀이 기구도 교체했다. 서울 교외에 있는, 규모가 작은 놀이공원이지만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개장 당일, 매표소에 '성인 2만원, 어린이 2만5000원'이라고 적은 가격표를 보고서 실망하거나 화를 내며 발을 돌린 사람들이 있었다. 인터넷에선 맘카페를 중심으로 '에버랜드도 아니면서 왜 이 돈을 받느냐' '이제 두리랜드로 돈 벌겠다는 거냐'는 부정적 반응이 나왔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놀이공원 점검을 하러 두리랜드를 돌아다니던 임채무를 만났다.

―입장료가 생겼습니다.

"정식 개장 첫날에 온 사람이 입구에서 '임채무가 돈독이 올랐다. 예전에 입장료가 없어서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쁜 놈이다'라고 욕하는 걸 아내가 들었어요. 원래는 이것보다 더 심하게 얘기했는데, 제가 좀 순화해서 전한 겁니다. 아내가 '그런 거 아니에요. 빚 많이 져가면서 만든 것이고, 이걸로 돈 못 벌어요'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이러더래요. '누가 하래요? 그럼 이런 거 하지 말고 편히 살든가.'"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두리랜드 아니었으면 편하게 살았을 겁니다. 왜 다시 하는 겁니까?

"두리랜드는 예전부터 적자였어요. 재개장을 하지 않고 다 접어버리자는 생각도 안 한 건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세상에 지는 거잖아요. 이대로 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만 다시 해보려고요."

―얼마나 투자했습니까.

"이번에 증·개축하면서 190억원 정도 들었습니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게 135억원, 나머지는 갖고 있던 집 두 채 다 팔고, 자식들 마이너스 통장까지 다 끌어모으고, 사채도 조금 써서 마련했어요. 집이 없어서 지난 1년 반 동안 두리랜드 근처 일곱 평짜리 원룸에서 살았어요. 두리랜드 재개장하면서 지금은 두리랜드 안에서 살고 있어요. (두리랜드에서요?) 네, 먹고 잘 데는 있어요. 이거 알려져서 지인들이 찾아오면 안 되는데…. 여긴 제 일터이기도 한데 찾아오는 손님들 접대하다 보면 일을 못 하거든요."

경기도 양주에 재개장한 놀이공원두리랜드 앞에 선 임채무.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세상에 지기 싫어서 하는 일치고는 대가가 너무 큽니다.

"안 그래도 한 달에 내야 할 이자가 수천만원에다가 놀이동산 규모가 커지다 보니 인건비, 전기료 등이 예전보다 몇 배가 더 들어요. 그렇게 큰돈을 빌렸는데 어떻게 불안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직원 월급 안 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월급 줄 돈이 없다 싶으면 지방 여기저기에 전화합니다. 전국 나이트클럽 돌면서 공연해서 그 돈을 마련하는 거죠. 고비만 계속됐다면 주저앉았을 수도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그걸 극복할 방법이 하나씩 생겨났어요. 그래서 이렇게 빚이 많은 상황인데도 잘될 수 있단 희망을 갖고 있어요."

―2만~2만5000원이란 금액을 납득 못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임채무 나와'라며 쌍욕을 하기도 하고, 어린 직원의 머리에 손세정제 병을 던진 사람도 있어요. 그 직원은 충격이 컸는지 그 뒤로 안 나와요. 인터넷 비난 댓글도 많고요. 일반 키즈 카페에서 노는 금액을 기준으로 책정한 가격이에요. 1990년에 열었을 때 110억원이 들었고, 이번에 190억원을 추가로 투자했어요. 아이들이 즐겁게 놀라고 몇 백억원을 들여 만들었는데 왜 공짜가 아니냐고 욕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가요. 돈독이 올랐다면 190억원 갖고 두리랜드를 하겠습니까? 돈을 처음 벌었을 때도 놀이공원을 만들려고 여기 땅을 샀어요. 그 뒤로도 땅을 산 건 강화도의 작은 농지와 두리랜드의 부지밖에 없을 정도로 투자를 안 하고 살았어요. 제가 싫어하는 게 내기나 도박입니다. 골프장 가면 다들 내기 골프를 하니까 언젠가부터는 골프도 치러 다니지 않아요."

―가족은 두리랜드 재개장에 동의했나요.

"서울 여의도의 68평짜리 아파트에서 살던 아내가 경기도의 7평짜리 원룸에서 살게 됐습니다. 걱정이 많아서 잠을 못 자면서도 저한테 불평불만 하지 않고 두리랜드를 열심히 챙겨주고 있어요. 어제도 자다 깬 아내가 한숨을 쉬면서 잠에 못 들기에 '굶기진 않겠다'고 했어요. 자식들은 당연히 이런 거 하지 말고, 편히 살라고 난리죠."

임채무는 1989년에 두리랜드를 짓기 시작해 1990년에 문을 열었다. 그는 "30년 가까이 담도 없고 입장료도 없었다. 시작하면서부터 적자였지만 한동안 버틸 수 있다. 90년대는 CF, 드라마, 야간 업소 출연해서 돈을 벌었을 때다. 내가 방송에 나가 번 돈이 놀이동산 매출의 두 배였다. 내 돈으로 운영하고, 직원 월급을 줬다"고 했다. IMF를 겪으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놀이동산을 찾아오지 않았고, 임채무를 불러주는 데도 줄었다. 2000년대 초에 닫았다가 2009년 재개장했다.

임채무와 함께 두리랜드 실내에 들어서자 부모들이 아이 손을 잡고 와서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고 했다. 임채무는 "친구보다 두리랜드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더 반갑다"고 했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왜 놀이공원이었나요?

"산세가 좋고 계곡도 있는 이 동네는 80년대 사극의 단골 촬영지였어요. 제가 단역 배우 생활을 길게 하는 바람에 여기 자주 와야 했죠. 당시 이 계곡으로 놀러 나온 가족을 자주 봤어요. 삼겹살 구워 먹다가 술 마시며 화투 치거나 노래 틀어놓고 춤춰요. 그러다가 자기들끼리 시비가 붙어서 싸우고 깨진 술병에 아이들이 발이라도 다쳐서 울면 그때쯤 다들 주섬주섬 짐을 싸서 가죠. 그게 얼마나 한심하고 안타까웠는지 몰라요. 나중에 돈 벌면 이 자리에 꼭 아이들이 가족과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자고 다짐했어요. 어릴 때 맨날 어머니 손 잡고 이사 다닌 기억, 좀 커서는 학교 공과금 못 냈다고 선생님한테 혼난 기억이 있어요. 지금에 와서는 추억이라고 회상하지만, 어렸을 때는 그게 나름대로 고통이었죠. 애들이 그런 고통 느끼지 않고 즐기며 살기를 바랐습니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노는 모습만 봐도 제가 다 즐거웠거든요. 몇 년 지난 뒤 주연 배우 해서 돈 벌자마자 이곳 땅 한 뙈기를 샀어요.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사 모았어요. 놀이공원 지을 만큼 모았다 싶었을 때 시작했죠."

―당시엔 입장료가 공짜였습니다.

"처음에는 2000원을 받았는데, 이게 장벽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두리랜드 문 연 지 얼마 안 됐을 때, 마감을 하고 퇴근하려는데 아들을 데려온 부모가 문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거예요. 아이는 들어가겠다고 울고, 모자를 푹 눌러쓴 아버지가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동전 소리만 들리는 거예요. 아버지 얼굴에 큰 흉터가 있어서 일부러 저녁에 온 것 같았는데, 입장료 때문에 난처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음 날 직원 불러서 입장료 없애자고 했죠. "

―그것 때문에 지금의 입장료가 더 많아 보이는 것 아닐까요.

"네, 그때 잘못했어요. 5000원, 1만원씩이라도 받았으면 지금처럼 어려워지진 않았을 거예요."

―2009년에 재개장했다가 또 닫았습니다.

"90년대만 해도 인기 있었던 회전목마, 바이킹, 박치기차(범퍼카) 같은 아날로그 놀이 기구는 사양길인 거예요. VR 같은 게 들어왔죠. 게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까 미세 먼지와 황사 때문에 엄마들이 바깥에서 오래 노는 걸 꺼렸어요. 실외 놀이공원은 날씨 때문에 1년 중 5개월 정도 손님이 오는데, 그마저도 이제 없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롯데월드처럼 실내 시설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2017년 말에 닫고 2018년부터 신축에 들어갔어요."

―맘카페의 후기에선 실내 시설에 대한 만족도가 높습니다.

"원래 실내 시설은 다 무료로 하려고 했어요. 지금 오락기만 1000원 정도 받고 있고, 어린이용 암벽 등반이나 성인용 안마 의자는 다 공짜입니다. 안마 의자는 곧 돈을 받을 겁니다. 이 돈을 받아봤자 돈벌이에는 도움이 안 돼요. 무료로 했더니 한 사람이 독점하는 일이 생기고 심지어 부모끼리 많이 싸워요. 안마 의자를 한번 차지하고 아예 거기서 자는 사람도 있고요. 코인 노래방도 공짜로 들여놓고 싶은데 또 그런 일이 생길까 봐 돈을 받을 것 같아요."

2002년 월드컵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에서 주심을 맡았던 모레노 심판을 임채무가 패러디한 '돼지바' 광고.
임채무는 1973년 MBC 공채 탤런트로 뽑혔다. 해병대 말년 휴가 때 공채 시험을 봤다. 단역·조연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다가 1984년 '사랑과 진실'의 주연을 맡았다. 시청률 60%가 넘은 작품이다. 30대 후반 이후 멜로드라마 주연은 맡지 않았지만 단 한 해도 TV에 출연을 안 한 적이 없다. 2006년 '돼지바' 광고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주심을 맡았던 모레노 심판을 패러디한 연기로 큰 인기를 얻었다.

임채무와 두리랜드 실내에 들어서자 네댓 살짜리 딸을 데려온 부모가 "와, 임채무다"라고 소곤거리더니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딸과 임채무를 함께 세우고 사진을 찍고서, 딸에게 "저 할아버지는 연예인이다"라고 설명해줬다. 아이와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모 때문에 임채무와 두리랜드를 다니면 세 걸음 걷다 한 번씩 멈춰야 한다. 부모는 임채무를 보면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고, 아이는 임채무를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

―노주현, 한진희 배우와 멜로드라마 트리오로 유명했습니다.

"두 분 다 나보다 주연을 먼저 맡았어요. 부러울 정도로 잘생기고 인기도 많았죠. 저는 한창때도 출근할 때 거울 보면서 '이런 얼굴로 주연 하다니' 하고 놀라곤 했어요."

―조·단역 출신이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서 첫 주연을 맡았죠?

"촬영 도중에 김수현 선생님이 '임채무씨, 연기하기 쉽죠? 이 배역은 처음부터 임채무씨 생각하며 썼어요'라고 했어요. 나중에 전해 들은 얘기로는 단역 시절에 성실해서 눈여겨봤다고 했대요."

―성실한 편인가요?

"일단 지각하거나 약속 안 지키는 것을 싫어합니다. 아주 올드한 스타일이죠, 보수적이고 고지식하고. 자식들이 유학을 갔는데, 방학 때 한국에 들어오면 세 가지를 지키게 했어요. 첫째, 압구정동에 가지 말 것, 둘째, 어쩔 수 없이 가게 된다면 영어를 쓰지 말 것, 셋째, 통금은 10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애들이 외국 물 좀 먹었다고 강남에서 거들먹거리며 영어 쓰는 게 참 보기 싫었어요. 제가 얼굴이 알려진 사람인데 자식이 밖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기면 구설에 오를 수도 있고요. 아버지가 배우라는 이유로 애들을 희생한 것 같아 좀 미안하긴 합니다."

―트로트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진실'로 한창 인기가 많았을 때 저보고 이 드라마 주제가를 불러보라기에 녹음했는데, 500만원을 받았어요. 그 뒤로 쭉 노래를 하면서 작사도 하고, 공연도 합니다."

노래 이야기가 나오자 지난해 나온 신곡 '9988 내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곡 모두 그가 작사했다. '9988 내 인생'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구구팔팔 내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구구팔팔 내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오늘은 갑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일은 옵니다'.

―이렇게 평생 꾸준히 일해서 번 돈, 두리랜드에 다 투자했습니다. 아쉬움이 없을 수가 있나요.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소주 마시고 취하나 양주 마시고 취하나 똑같습니다. 라면 먹으나 짜장면 먹으나 스테이크 먹으나 배부른 것도 똑같고요. 무명 시절, 한 달에 3만원씩만 갖고도 잘 지냈습니다. 돈을 계속 벌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 제게 건강한 몸과 좋은 목소리를 물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대접받으면서 돈을 벌어왔고요. 제가 가진 건 무엇하나 다른 사람한테 안 받은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가진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요."

―이번에 실패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진짜 그만할 겁니다. 여기를 팔아서 빚을 갚아야죠, 받아야 할 돈 못 받는 사람이 없도록. 제가 책임질 건 다 질 겁니다."

오후 5시가 넘자 임채무는 "두리랜드 마감을 하러 가야 한다"며 일어났다. "왜 두리랜드를 하느냐"고 또 묻자 그는 "두리랜드 만들 때부터 나보고 미쳤거나 바보라고 했던 친구들은 요새 크루즈 여행을 하거나 골프를 치러 다닌다"고 했다.

"여행 가자, 술 마시자, 골프 치자는 사람들의 제안 다 거절해서 이제 주변에 남은 지인이나 친구가 몇 명 없어요. 저는 그 시간에 두리랜드에서 일하는 게 훨씬 더 좋아요. 왜 두리랜드를 하냐고요? 즐거워서 하는 거예요. 여기서 아이들과 사진 찍는 게 즐겁고, 기계 점검하고 작동하는 일도 즐겁고, 손님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워요. 제가 즐겁지 않으면 어떻게 남을 즐겁게 만들어 주겠어요!"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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