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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그날 2020.03.23 (월)
  몇 해 전부터 캐나다로 놀러 오겠다던 친구는 올해도 못 올 것 같다고 한다. 일찍 남편과 사별한 후 함께 살기 시작한 조그만 식구 쪼코 때문이다. 나이가 이젠 사람으로 치면 80이 넘은 격이라 여기저기가 안 좋아지고 있다 했다. 작년부턴 많이 아파 서 어디 두곤 나올 수가 없단다. 누구에게 맡기지도 못 하고 강아지 곁을 떠나지 못 하는 친구가 안쓰럽다. 외로워서 어찌 살거나 힘들어하고 무척이나 우울해하던 친구 곁에서 위로가 되고...
김 베로니카
훈습 (薰習*) 2020.03.23 (월)
꿈결에 내 꼴 보고 참담한 맘으로 기도했고   샐녘엔 나 역겨워 수치심 하나에 매달렸다   밤사이 도둑눈 찾아와 나뭇가지마다 소복하구나   힘내어 창문 여니 샛바람 시원하고   밤새가 울고 가니 눈꽃이 흩날린다       *註: 薰習 – 우리가 행하는 선악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어떤 인상이나 힘을 마음속에 남김을 이르는 말.
김 토마스
“사색의 미학-그 숲의 비밀” / 신용목 <1>                                                                                  ...
이명희
  “게으름은 실용주의에 떠밀려 사는 사람들의 인간성 회복에 꼭 필요한 여유다.”  나는 반복되는 일상의 무게에서 벗어나 길을 떠난다. 모래바람이 시야를 가리는 혼돈의 세상에서 메마른 가슴을 적실 마중물이 필요하다. 방향감을 유지하며 하늘을 나는 새처럼 삶의 지도 위에서 내 위치를 살펴야 할 때다. 잠시 달리던 길 위에서 숨을 돌리고 방향을 살핀 후 뛰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밴쿠버에서 비행기로 4시간 30분, 멕시코...
조정
  참말로 긴 밤 입니다   밤 사이 찾아온 도둑이 온 마을 사람들의 단잠을 깨웁니다   길 건너 우리 어머니 무사 하실까 아랫집 동생은 잘 자고 있을까   오만가지 걱정에 시뻘개진 눈이 따갑습니다   동이 틀 새벽임에도 자욱한 안개로 캄캄한 거리는 삭막함 속 정적만 흐릅니다   얼른 해가 뜨면 좋겠습니다   새벽 단잠을 깨워주던 그 빛이 너무나 기다려집니다   뜨겁다 불평 안 할테니 조금만 서둘러...
전종하
             요즘 대세 프로그램인 ‘미스터 트롯을 보면 ’신인들의 열기가 대단하다. 출연자 대부분이 청년층이고, 심지어는 소년들도 있다. 트롯음악이 한 물 간 어른들의 노래인양 잊혀지는가 했더니 TV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한다. 참 고무적이다. 마찬가지로 원고지대신 컴퓨터로 쓰는 문학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시대의 사건과 사상과 사람을 표현하는 문학은 소위 ‘밥도 떡도 생기지 않는’ 힘든 예술이지만...
이원배
침묵의 언어 2020.03.09 (월)
  “세상에 눈보다 게으르고, 손보다 빠른 것은 없단다. 아이구 내 손이 내 딸이구나.” 젊은 엄마 목소리 귀에 쟁쟁한 한나절   한 소쿠리 깔 양파를 들여놓고 저걸 언제 다 까나 마음이 한 짐이더니 눈물을 한 종지 흘리고 서야 엄마 그리워 눈물인지 아픔인지 가슴 가득 아려온다   창밖만 응시하고 계신 아흔일곱의 내 엄마 아파야 가는 저승길 나풀나풀 댕기머리 시절 그리우신가 오래전 먼저 가신 아버지 그리우신가 말 없는...
강숙려
호두까기 인형 2020.03.09 (월)
                                내 연주실에는 한국에서 이민 올 때 가지고 온 호두까기 인형이 있다. 예술의 전당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뮤지컬 “호두까기 인형”을 보고 나오는데 그 주인공 인형을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키대로 세워 놓고 판매를 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작은 것은 장식용이고 어느 정도 키가 큰 것부터는 진짜 호두가 까질 것 같아서 조금 큰 것으로 샀던 기억이 난다.   그...
박혜정
우연도 기적이다 2020.03.09 (월)
몇 년 전의 일이다. 일이 있어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를 몰고 오는 동안 내내 기분이 울적했다. 그 즈음엔 힘겹고 쓰라린 상황이 계속되었다. 시도하는 일들이 이루어질 기미는 없고 늘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견디기 힘들었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애만 쓸 뿐 결실은 이루지 못하는 인생인가 싶어 우울하고 힘이 빠졌다. 라디오를 틀었다.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답답한 마음에서 벗어나고자...
김선희
동화목(冬花木) 2020.03.09 (월)
                                                옷 한 벌 입지 않은 맨몸으로 빈들에 서서 떨고 있는 저 엄숙한 침묵, 시린 발, 시린 몸, 웅크리고 제 몸 비벼 봄을 틔우고 있는 저 심지의 환한 불길, 내가 가만가만 그에게 다가가 살짝 귀 대어 들어 보니 벌컥 벌컥 물 마시는 소리, 그 뜨거운 생불生佛의 열기 확, 내 몸에 불을 당긴다  
이영춘
                                                                 세상이 한번쯤 화려해지는                눈부셔라 새해 새 아침                  폭설이 사방 십리를 휘몰아쳤다...
김영주
   “희망이란 좋은 거예요.     가장 소중한 거예요.     좋은 것은 결코 멸(滅)하지 않아요.”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에서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이 감옥에서 사귄 친구 레드에게 한 말이다.      이 영화는 감옥 안의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교도소라는 동일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갖는 자와 잃어버린 자의 삶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심현숙
평풍같은 얼음 골 폭포, 아픈 마음 떨쳐 내리고 들어간 약수터,  더운 몸 냉동되어 겨울 산신 되었구나 주왕산 용의 혈맥 풍경은 천국에 오니 풍요로운 농작물 인심도 참 고와라 유교사상 맥 이어 전통 고택보존 선조의 유산 산천경계 황혼 질 때 노을 빛 주렁주렁 사과알에 옮겨 담고 산딸기 아가씨 붉은 입술로 청송청송 노래 부르네 우지 짖는 새들도 늘어진 왕 버들 가지에 안개를 털어내면 높은 봉우리 고사리 산채들이 지천으로 바람...
강애나
                                 음성 장날 고추 모 세 판을 사다 심었다. 오이고추, 청양고추, 일반 고추다. 모종을 파는 상인의 생존율 100%라는 부연설명까지 들어서 그런지 땅내도 못 맡은 모종들이 싱싱하기가 청춘이다. 모종을 심고 나면 한 보름 동안은 빈약한 떡잎가지 시들배들한다. 겨우 어른 손 길이만 한 어린 것들이 적어도 보름 정도는 죽느냐 사느냐 사투를 벌일 것이다. 그...
반숙자
늘 푸른 미니스쿨의 첫 수업 (下)       (*2019-10-07에서 계속)                                                              “시간의 가치는 나이에 따라 다릅니다. 몸은 아직 작아도 청년기의 꿈이 실린 5년은 장년기의 30년보다 긴 시간입니다. 지금은 와닿지 않겠지만 여러분이 내 나이쯤 되면 그때야 50년 전의 이 말이 폐기처분...
박병호
카레덮밥 2020.02.24 (월)
    스미하와 함께 마트에 온 은경이는 혹시나 엄마를 만나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엄마는 식품부에서 반찬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으니 아마 매장에서는 부딪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반찬코너는 멀찍이 돌아서 생활용품 쪽만 보고 있었습니다. BTS의 팬이면서 한국물건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스미하가 한국 마트에 가고 싶다며 몇 번을 졸라 하는 수 없이 같이 온 은경이었습니다....
신순호
겨울 강가의 재회 2020.02.18 (화)
     무수하게 꽂힌 빛살 위로 초록의 정오가 무심히 강가를 산책한다 그리고 수초를 감싸는 작은 애무   물가 언덕 위에 검은 이끼를 입고 서 있는 허공 속 나무 하나  물 위에 어른대는 꼭 닮은  나무  둘  그리고 물속 깊은 곳에 자기를 묻고 사는  나무 셋   바람이 찾지 못하는 숨겨진 겨울 숲속을 흐르는 회한의 강가에서 엇갈린 빛 너머 나무는 재회를 한다   고요한 아픔이 흐르고 나서...
김석봉
                                                                           어린 시절 우리 가정은 불교를 믿었다. 그 당시 기억에 의하면 주위의 많은 가정에서4월 초파일이 되면, 절에 가서 가족의 건강이나 안녕을 빌기 위해 불공을 드렸다. 또한 전통적으로 예부터 내려온 유교의 관습대로 제사는 물론이고 명절 즉...
이종구
일을 나가지 않고 쉬는 날에 오히려 일찍 눈이 떠질 때가 있다. 창문에 어슴푸레 푸른 여명이 비치고 그것을 한 번 본 뒤로는 벌떡 일어나고 만다. 커튼을 제치고 산 밑의 마을을 잠시 내려다본다.   썰물같은 푸른 어둠에 잠겨 있다. 간밤에 내린 눈때문에 세상이 새삼 청순해 보인다. 천지가 창조되던 때처럼 하늘도 땅도 구분이 없다. 멀리 도로에는 달리는 차도 눈에 띄지 않고 과묵하기 그지없다. 백 년된 소나무에 사는 다람쥐들도 간밤에...
정숙인
봄 날의 약속 2020.02.18 (화)
잿빛 하늘이 슬픈 날이면 너와 지붕 눈어깨도 들썩이지 않고 조용히 흐느껴 운다   처마 끝 눈물이돌아 누운 베갯잇에 얼룩 남기듯콘크리트 바닥에 아픔을 꾸겨 넣는다   밟아야 모진 겨울 나고봄 날 싹 틔우는 보리처럼 아픔은 짓이겨진만들기 시간 찰흙처럼모래성 쌓고 뭉개고갯벌 산낙지처럼숨구멍만 남긴 채초승달 찔린 하늘처럼가시만 가슴에 묻고
전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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