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
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고이는 피를 받아 낸다. 그런데 수시로 혈압을 재고 당을 체크하며 피를 빼 가고 밤낮으로 온몸을 찔러대도 참으며 견뎌야 한다. 그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 고통을 견디며 삶을 유지해야 하는지 죽음의 그림자가 일렁거리기도 했다.
죽는다고 하자. 세상을 하직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 우주와 이별이며 가족과 산벗과 꽃들과 새소리와도 작별해야 한다.
성경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그대로다.
고통도 고통이자만 시간은 왜 그리 더디 가는지 모른다.
다시 수술을 받고 이 고통을 당해야 한다면 그대로 죽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고통 속에서도 힘을 얻는 것은 산벗들이 보내주는 카톡 메시지다. 그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이 고통을 참고 이겨야 했다.카톡을 받을 때마다 보내준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운 얼굴들이다.
연한 고사리 순도 뿌리로 영양을 받으면서 자라고 새로운 삶을 이루어 간다. 긴 여름날 폭풍우를 이기면서 가을을 만나고 포자를 남긴 채 한해살이를 마치고 대지로 돌아가 겨울잠에 든다.
인간도 그런 게 아닐는지?
연한 고사리 같은 육체다. 절대로 무리하지 말자.
그렇다고 편히 쉬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이 또한 아니다.
우리가 몸을 편하게만 하면 모든 장기가 에너지를 생산하지 않아도 되니 느슨해진다. 따라서 기능을 잃게 되고 면역력이 떨어지니 병과 싸우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내 몸에 맞게 기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게 운동이다. 그 운동 중에 제일 좋은 것이 산행이 아닐까 한다.
산행도 내 체력에 맞게 하자.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예수를 믿어왔다. 우리가 이생을 떠나면 아름다운 내세가 있다고 수없이 들어왔다. 황금 길을 걸으며 늘 새 노래를 부르고 아픔이나 고통이 없는 새로운 천국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죽음이 두려운가?
죽은 사자보다 살아있는 지렁이가 더 행복한 존재인가. 삶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절대적인 게 생이다.
평소 나는 90까지 건강하게 사냥도 하고 산행도 하면 좋겠다고 희망해 왔다. 37년 12월 24일생이니 일주일 사이에 햇수로 한 살을 더한 85세다. 한세상 건강하게 잘 살아왔다. 지금 그 꿈을 접는다 해도 억울할 것은 없다. 목표에서 5년을 감하는 것이 되니 괜찮다고 생각해 본다. 기력을 회복하여 정상으로 돌아 갈 수 있으면 더 바랄게 무엇이겠는가.
이 글은 현재 스스로 경험하고 있는 나의 생생한 기록이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혹사해서는 안 되고 또 느슨하게 방치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만약에 독자들이 이 투병기를 읽고 건강을 지키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었다면 지금 나의 이 고생이 헛된 것만이 아니라고 위로를 받고 싶다. <끝>
늘산 박병준
* 투병기 연재는 계속됩니다.
www.beautifulcanada.ca '늘산의 소리' 수필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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