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관세 위법 판단 이은 정치적 타격
보수 성향 대법관 3人, 다수 의견 동참
트럼프 “나라에 큰 불행, 입법으로 만회”
보수 성향 대법관 3人, 다수 의견 동참
트럼프 “나라에 큰 불행, 입법으로 만회”
미국 연방대법원은 30일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자동으로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는 이른바 ‘출생 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을 금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는 지난해 1월 취임 직후 미국에서 불법으로 체류하거나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에게는 출생 시민권을 금지한다고 밝혔지만, 보수 우위의 대법원은 이날 6대3 의견으로 출생 시민권에 대한 폭넓은 해석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으로 트럼프 정부가 임기 초반부터 드라이브를 걸던 이민 정책 추진에 일부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우리나라에 큰 불행”이라면서도 의회 입법을 통해 자신의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868년 채택된 수정 헌법 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사람은 모두 미국 시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1898년 연방대법원이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계 이민자의 시민권을 인정한 ‘웡 킴 아크’ 판례 역시 이를 다시 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미국에서 영주권 없이 임시 체류하는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도 미국 시민권을 자동으로 취득해 왔다. 반면 트럼프는 출생 시민권의 애초 취지가 남북전쟁 직후 흑인 노예, 자녀들에게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지 미국에서 ‘원정 출산’을 하는 중국 부유층과 불법 체류자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에 민주당 소속이 주지사로 있는 22개주(州)와 워싱턴 DC가 행정명령이 소송을 제기해 1·2심 법원이 위헌(違憲) 판단을 했고, 그 효력을 중단하라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이날 판결문은 194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번 판결에 쏠린 관심과 사안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시민권은 과거에도 지금도 가질 권리, 즉 우리의 정치 공동체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였다”며 “수정 헌법 14조를 만든 이들은 그 약속을 이 땅에서 자유롭게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까지 확대했다. 오늘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현재 보수 성향 대법관이 6명인 보수 우위 구도인데 보수 성향인 로버츠를 비롯해 에이미 코니 베럿, 브렛 캐버노 대법관이 다수 의견에 동참했다. 다만 보수 성향인 캐버노는 별도 의견에서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연방법에 어긋난다’면서도 헌법이 반드시 이런 해석을 요구하는지는 별도로 판단했다. 향후 의회가 입법으로 시민권 범위를 조정하려 할 경우 논쟁이 벌어질 여지를 남겼다고 CNN 등은 분석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판결 직후 “결과가 대단히 실망스럽다”며 “헌법을 개정해 이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에 계속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 4월 대법원 변론에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출석했다. 대통령이 직접 발언을 한 것은 아니지만 힘을 싣기 위해 법원에 나타난 것이다. 트럼프 정부 측은 단순히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시민권을 부여해서는 안 되고, 부모의 합법적 체류 여부와 미국에 대한 로열티(충성도)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상호 관세 위법 판단에 이어 법원이 트럼프의 반(反)이민 정책을 상징하는 출생 시민권 폐지에도 제동을 걸면서 트럼프가 정권의 명운(命運)이 걸린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또 한 차례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가 출생 시민권 자체를 흔들기보다는 국경 통제, 체류 단속, 비자 심사 강화 등 다른 수단으로 이민 억제 정책을 밀어붙일 가능성은 있다.
트럼프는 이날 판결에 대해 “대법원이 출생 시민권 제도를 유지하기로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큰 불행”이라며 유감을 표시헀다. 이어 “대통령의 지지릉 바탕으로 우리는 쉽게 만회할 수 있다”며 “의회가 돈이 많이 들고 불공정한 출생 시민권을 끝내기 위한 작업을 오늘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수정 헌법 14조를 개정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으로 개정 효과를 낼 수 있는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라는 취지다. 현재 친(親)트럼프 인사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브라이언 바빈 하원의원 등이 출생에 따른 자동 시민권 부여를 폐지하거나 대폭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해놓은 상태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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