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PA 개정 또 급선회··· BC 정부 입장 철회
일주일 새 4번째 번복, ‘일관성 없는 국정’ 지적
일주일 새 4번째 번복, ‘일관성 없는 국정’ 지적
데이비드 이비 BC주 수상이 원주민 권리 선언법(DRIPA)을 둘러싼 정책 대응에서 또다시 한발 물러섰다. 지난 4개월간 거듭된 입장 번복 끝에 올봄 주의회 내 법안 수정 및 유예 방침을 전면 보류하기로 하면서, 이비 정부의 통치 리더십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비 수상은 지난 주말 원주민 지도자 협의회(FNLC)로부터 유예 방침에 반대하는 공개 서한을 전달받은 직후, 월요일 오후 공동 성명을 통해 올봄 회기 중 DRIPA 관련 입법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협상은 불가하다”며 법 개정을 강행하려던 기존 입장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잇단 입장 번복, ‘협상 불가’에서 ‘공동 협의’로
이번 사태의 뿌리는 지난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DRIPA는 BC주 정부와 원주민 사회가 ‘화해’라는 대의를 위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상징적인 법안이었다. 하지만 2025년 12월, BC주 항소법원이 “모든 법률 해석에 DRIPA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정부 내부에서는 이러한 사법부의 해석이 자원 개발 등 주요 경제 현안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이에 이비 수상은 투자 심리 위축을 막겠다며 법 개정을 예고했다가, 이후 3년간 관련 조항을 유예하겠다는 방안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원주민 지도부의 즉각적인 반발에 부딪히자 수 시간 만에 계획을 철회하고 ‘공동 협의’라는 모호한 수순으로 전환하는 등 일관성 없는 행보를 보였다.
이번 사태 과정에서 눈에 띄는 점은 원주민 지도부의 반대 서한이 수상이나 내각이 아닌 ‘모든 주의원(MLA)’을 대상으로 발송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원주민 측이 의회 내 이탈표를 공략해 정부안을 저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사실상 이비 수상의 의회 장악력이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야권 “책임감 없는 정책 혼선”, 신임 투표도 철회
야권은 즉각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트레버 홀포드 BC 보수당 임시 대표는 SNS를 통해 “4개월 동안 세 번이나 입장을 번복했다”며 “책임감 없는 태도와 갈팡질팡하는 정책으로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이 현 정부의 실상”이라고 맹비난했다. 보수당은 항소법원 판결 직후부터 경제적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DRIPA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정부 신임 투표와 연계하겠다던 강경한 태도에서 한발 물러나 원주민 지도부의 요구를 사실상 전면 수용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이비 수상의 정치적 추진력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프레이저 밸리 대학교(UFV) 해미쉬 텔포드 교수는 “이비 수상은 정치적 벼랑 끝에 몰려 있다”며 “차기 총선까지 당을 이끌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1석 과반의 위기, 가을 회기가 분수령
이비 수상은 과거 ICBC 개혁 당시의 성공 사례를 언급하며 정책 추진 과정에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해명했으나 당시와 현재의 정치 환경은 판이하다. 당시엔 여당이 의회를 압도했지만, 현재는 여야 의석이 단 1석 차이의 박빙 구도다. 정부의 작은 시행착오 하나가 곧바로 의회 내 신임 투표 위기로 직결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비 수상의 ‘시행착오식 접근’은 더 큰 정치적 리스크를 부르고 있다.
주 정부와 원주민 지도부는 오는 가을 주의회 회기 전까지 공동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미 거듭된 입장 번복으로 신뢰가 흔들린 상황에서, 과연 가을까지 실질적인 합의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정치 평론가들은 이번 사태로 정부가 강조해 온 ‘긴급한 법 개정 필요성’은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고 평가한다. 오는 가을 주의회 회기 전까지 실질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박빙의 의석수 구도 속에서 반복된 정책 후퇴가 정부를 벤치로 불러들이는(퇴진 압박) 더 큰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최희수 기자 chs@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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