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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나 보니 매일이 기적이고 모든 게 감사더라

남정미 기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6-03-13 13:48

[아무튼, 주말]
[남정미 기자의 정말]
폐섬유증 이기도 돌아온
데뷔 40주년 가수 유열


침대에 혼자 걸터앉을 수 있는 시간이 1분에서 8~9분으로 늘었다. 앉을 때 시선 정면(턱 당기고) 가슴 펴고.... 아무것 두려워하지 말라. 매일매일이 Miracle! 기적이다. 

2024년 5월 28일 서울대병원에서 폐섬유증으로 투병 중이던 가수 유열(65)이 폐 이식을 기다리며 쓴 일기의 일부분이다. 폐섬유증은 폐 조직이 반복된 염증으로 딱딱하고 두껍게 변해 산소 교환이 어려워지는 질환이다. 진행을 늦추는 약만 있을 뿐, 폐가 딱딱해지기 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유열은 2019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 폐섬유증 진단을 받았다. 상태가 점차 악화해, 2024년 5월 서울대병원에 입원할 무렵엔 대소변도 다른 이가 받아 내야 할 정도였다. 호흡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쓰다 보니 키 173㎝인 그의 몸무게가 40㎏으로 줄었다. 폐 이식 수술을 받으려면 먼저 최소한의 체력부터 길러야 했다. 매일 침대에 등 대지 않고 앉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유열이 입원 생활 중 쓴 일기장./영상미디어 이신영 기자 
 

이달 초 만난 유열은 반년 간의 입원 생활 동안 쓴 일기장 두 권을 가지고 나왔다. 혼자 앉을 수 있는 시간이 1분에서 8~9분으로 늘어났을 때, 처음 혼자 일어섰을 때, 마침내 병실 복도를 걷기 시작했을 때…. 이 일기장엔 그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기적’들이 빼곡하게 기록돼 있었다. 그는 2024년 7월 폐 이식 수술을 받았고, 그해 10월 말 퇴원해 현재 회복에 힘쓰고 있다. 2시간이 넘는 인터뷰 동안 가끔 호흡이 거칠어질 때도 있었지만, 전성기 때 라디오 부스 앞에 앉은 듯 그는 편안해 보였다.

 

“이번에 일기장을 다시 쭉 읽고 나니 남는 단어는 결국 ‘기적’과 ‘감사’더군요.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어요.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데, 시합을 해도 가볼 수 없잖아요. 이 아이를 조금만 더 지켜줄 수 있게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어요. 지금 그때 쓴 일기를 보니, 제가 퇴원하면 가장 하고 싶었던 것 세 가지를 다 하고 있더군요. 가족이 눈 마주치며 함께 소박한 식사를 하는 것, 아내와 함께 산책하는 것, 아들 축구 시합에 가서 직접 보고 응원해 주는 것. 기적과 감사죠.”


 

◇돌아보니 모든 게 기적, 감사

 

유열이 처음 폐에 이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2017년이었다. 건강검진을 했는데 담당 의사가 “폐에 섬유화된 조직이 보인다”며 “앞으로 진행 사항을 지켜보자”고 했다. 그때만 해도 ‘앞으로 관리만 잘하면 되겠지’란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상을 느낀 건 2019년 급성 폐렴이 오면서였다. 40도까지 오른 열이 일주일 동안 잡히지 않았다. 조직 검사 결과 폐섬유증 진단을 받았다.

 

 

-처음 진단받았을 때 어떠셨나요.

 

“낯설고 어색했죠. 남의 일 같고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숨 쉬는 게 힘들어지고, 점점 몸무게가 줄어 체력이 급격하게 저하되면서 ‘이게 내 일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2023년 한 교회에서 야윈 모습으로 찍힌 영상이 유튜브에 퍼지면서 일반인에게도 투병 사실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저를 포함한 가족들은 오히려 서서히 진행된 일이라 서로 격려하며 담담하게 노력 중이었는데, 유튜브 영상 공개 후 투병 소식이 알려지며 놀라신 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기도와 응원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상황은 점차 나빠졌다. 숨 쉬는 게 힘들어져 집에서도 산소 호흡기를 사용했고, 집 앞도 겨우 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2024년 5월 응급실로 실려갔죠. 사망설까지 나왔는데.

 

“호흡곤란과 함께 열이 40도까지 올라갔습니다. 폐에서 감기 바이러스 일종이 검출됐다고 해요. 일주일 만에 몸무게가 4~5㎏이 빠지고,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습니다. 백혈구 수치도 떨어지고, 기흉도 생겨 폐 양쪽엔 관을 꽂았습니다. 폐가 안 좋으면 심장이 같이 나빠지는데, 심박 수가 가만히 있어도 180~190까지 올라갔고요.”

 

 

결국 다니던 병원에선 유열의 아내에게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며 “연명 치료를 할 건지 결정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몇 달 전 대기를 걸었던 서울대병원에서 기적처럼 연락이 왔다. 입원 중이던 병원에선 ‘환자가 너무 약해 추천하지 않는다’던 폐 이식 수술을 “해볼 만하다”며 전원(轉院)을 받아준 것이다.

 

-이식 수술을 받으려면 대기가 길지 않나요.

 

“당시 제 순서가 되려면 몇 달을 더 버텨야 하는데, 제 몸이 너무 약하니 의사들도 가능할지 걱정했다고 하더군요. 매일 자리에 앉는 것부터 시작해 혼자 일어서는 것, 걷는 것을 연습하며 체력을 길렀습니다. 당시 아내가 매일 경기도 수원에서 서울대병원이 있는 서울 혜화동까지 왕복 3~4시간을 운전해 따뜻한 밥과 새 반찬을 해서 가져왔어요.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한결같이 방긋 웃으며 병실에 들어오는 아내를 보며 저도 힘을 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많은 분들이 기도와 응원도 참 많이 해주셨어요. 다니던 교회에선 오전 5시부터 밤 12시까지 2인 1조를 짜서 몇 달간 릴레이 기도를 해주셨고요, 모르는 분들도 ‘유열씨 위해 기도했다’ ‘응원했다’고 하시더군요.”

 


◇기증자의 숭고한 마음까지 이식

 

유열은 2012년 클래식 전공자인 15세 연하의 아내와 결혼해 이듬해 첫아이를 얻었다. 유열의 아내는 “매일 새벽 예배 가서 기도하며 다 쏟아낸 뒤 병실에는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갔다”고 했다. “남편은 투병 생활하며 한 번도 짜증 낸 적이 없어요. 2인실을 썼는데 옆 사람이 나중에 ‘그 집 남편은 건강 회복할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늘 작은 것에 감사하며, 생에 대한 의지가 있다고요.” 유열과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낙담하고 불안하진 않으셨나요.

 

“불안보다는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오늘 하루도 살아내겠습니다’라고 매일 아침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생명은 신의 주관하에 있는 것이니, 그저 나는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일에 감사하고 내 시간을 귀하게 쓰겠다고.”

 

 

-투병 생활 중 가장 힘이 나는 말은 무엇이던가요.

 

“첫째가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는 말. 그건 ‘함께한다’는 것과 같은 말인 것 같아요. 누군가 나를 위해 울어주고, 아파하고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됐는지 모릅니다. ‘네 뒤엔 내가 있다’, ‘넌 회복만 생각하라’며 알게 모르게 병원비를 도와준 지인분들도 있어요. 병원비를 못 낼 만한 형편인 건 아니었지만, 투병 생활이 길어지며 아내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을 거예요. 특히 간병비는 매일 현금으로 17만~20만원 정도를 드려야 하니까요. 같은 시기 활동했던 수만이 형(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도 병원비를 책임지겠단 연락을 주셨습니다. 마음만 받겠다고 했지만요.”

 

-투병 생활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지요.

 

“처음엔 아내가 제게 안 알렸어요. 너무 충격받을까 봐. 그때가 폐 이식을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혈중 이산화탄소 수치가 너무 올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연탄가스 마신 거랑 같은 상황인 거예요. 섬망 증세가 심해 간병인 세 분이 그만두실 정도였습니다. 아내가 힘들게 이야기를 꺼내기에, 어머니를 잘 보내드려 달라고 했죠. 제 애도는 조금 늦추겠다고요. 손주인 제 아들이 상주 역할을 하고 아내가 발인까지 지키다 제가 정신을 잃었단 소식에 또 급하게 병원에 오는 상황까지 있었습니다.”

 

유열은 두 번의 이식 대기와 취소 끝에 2024년 7월 폐 이식 수술을 받았다. 당시 담당 의사는 “생각보다 폐가 더 기능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며 “여태까지 버틴 게 기적”이라고 했다.

 

-이식 후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고요.

 

 

“수술 후 3~4일이 지났을 때 부정맥 때문에 심정지 비슷한 상황이 온 거예요. 중환자실에서 정신이 돌아왔을 때 얼른 담당 교수님께 메모지 좀 달라고 해 A4 용지 2장짜리 유언장을 썼습니다.”

 

-뭐라고 쓰셨나요.

 

“아빠인 제가 좀 더 이른 나이에 그러지 못했음을 후회하면서, 아이에게 제가 믿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첫째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둘째로는 더욱 사랑하는 삶, 포용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썼고요. 정말 마지막에 다다르니 누구에게 못 받은 것보단, 제가 돕지 못했던 것들만 떠오르더군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누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상이 은혜고, 기적이라고요. 이 소중한 걸 아내와 아이 두 사람이 매일 느끼며, 일상을 감사함으로 기쁘게 누리며 살길 바란다고 적었습니다.”

 

“그런 일이 없길 바라지만 혹시 생긴다면 아내에게 전해달라”고 맡겼던 유열의 유언장은 “돌려드릴 수 있어 기쁘다”는 중환자실 담당 교수의 쪽지와 함께 다시 유열에게로 돌아왔다. 유열은 “투병 생활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맞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가장 많은 기도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감사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 그 감사가 다시 사는 저의 삶에 동력이 되고, 방향타가 될 것 같아요.”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 전환도 그중 하나입니까.

 

“제게 폐를 기증해 주신 분이 누구인진 모르지만, 장기뿐 아니라 기증자와 그 기증자 가족의 숭고한 마음까지 제게 같이 기증됐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에서 딸을 보내면서 장기 기증을 결정한 아버지가 ‘기증받은 분들이 건강하길 바란다’고 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 모습에서 절 살려주신 가족분들의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장기 기증은 기증자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동의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그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열은 지난 9일 보건복지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의 ‘생명 나눔 공동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그는 지난해 3월에는 아내와 사후 장기 기증에도 서약했다.

 

◇40년 가수 생활 중 가장 좋았던 무대

 

유열은 한국외대 무역학과 3학년 시절이던 1986년 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로 대상을 받으며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별이래’ ‘단 한 번만이라도’ ‘어느 날 문득’ ‘화려한 날은 가고’ 등의 대표곡을 냈다. 1994년부터 2007년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유열의 음악앨범’을 진행해 ‘아침의 연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후 어린이 뮤지컬 ‘브레멘 음악대’ 등 뮤지컬 창작자로도 활동했다.

 


 유열이 1986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로 대상을 받고 앙코르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빨간색 옷이 당시 금상을 받은 가수 이정석이다./유열 제공


-어렸을 때부터 가수를 꿈꾼 건가요.

 

“어렸을 땐 노래 잘한단 이야기보다 목소리 좋단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솔직히 개성 강한 보이스는 아니라 돋보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제 톤의 노래를 담은 음반을 2장 정도는 내보고 싶었어요. 근데 때마침 대학가요제에서 드라마틱하게 대상을 받은 거죠. 당시 정석(가수 이정석)이가 ‘첫눈이 온다구요’로 금상을 받았는데 첫눈파와 지금파로 팬들이 많이 갈렸습니다, 하하!”

 

-지난 1월 24일 당시 대학가요제에 같이 나갔던 피아니스트 지성철씨와 함께 ‘불후의 명곡’ 무대에 섰지요.

 

“투병 이후 7년 만에 처음 선 방송 무대였어요. 녹화 날(1월 12일)이 마침 생일이었는데, 다시 태어난 후 맞는 생일에 신이 주신 선물 같았습니다. 올해가 데뷔 40주년인데, 그 무대의 감동은 단연코 40년 중 최고였어요. 모든 방청객분들의 마음이 저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랜 벗인 지성철 피아니스트와의 교감은 말할 것도 없이 너무 좋았고요.”

 

-지금 건강 상태는 어떤가요.

 

“90% 정도는 회복한 것 같아요. 어제 병원에 갔는데 폐활량이 아프고 난 이후 제일 좋다고 해요. 한 달에 한 번씩 가던 병원도 앞으로는 두 달에 한 번씩 오라고 하네요. 2024년 10월 말에 퇴원할 때만 해도 스스로 걸을 수 없어서 휠체어를 타고 나왔거든요. 지금은 아이와 매일 30분씩 축구를 할 정도까지 왔습니다. 이젠 아이가 저보다 훨씬 축구를 잘해서 저를 가르치지만요, 하하!”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

 

“계속 재활 중이라 거창한 계획은 안 세웠지만 감사하는 삶, (타인과) 연결된 삶, 특별히 몸과 마음이 아픈 분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 안에 여러 할 일이 있는 거겠죠. 마라톤도 풀코스가 있고 하프 마라톤이 있는 것처럼, 이제 저는 조금씩 걷고 뛰기 시작하는 단계이니 조금 더 회복해 혹시 하프 콘서트를 하게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웃음).”

 

-다시 돌아온 일상은 어떠신가요.

 

“다시 살고 보니 ‘처음’이 너무 많아요. 처음 내 힘으로 머리 감은 날, 처음 면도에 성공한 날, 처음 내 힘으로 볼일 보는 데 성공한 날(웃음)…. 아,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매일 아침 눈 뜨면 아내가 너무 반가워 한참을 안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아들 초등학교 졸업식과 중학교 입학식에 다녀왔는데, 너무 감사하더군요. 평범한 일상이, 매일 아침이 새롭습니다.”

 

그는 지난 3일 아들의 중학교 입학식에서 학부모 대표로 축사를 했다. “무슨 내용이었느냐”고 묻자 “중환자실에서 아내와 아들에게 썼던 가장 간절한 당부를 아들 친구들에게도 해주고 싶었다”며 그 일부를 들려줬다.

 

“더욱 사랑하는 삶을 살고, 기회 있을 때마다 나누는 삶을 사세요. 숨 쉬고 앉고 서고 걷는 것, 잘 자고 깨서 가족과 눈을 마주치고 아침을 먹는 것, 학교 가는 것, 공부할 수 있는 것,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는 것,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상이 선물이자 은혜입니다. 일상에 감사하는 삶을 살길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너무도 간절하고 감사한 기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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