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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순풍’ 아니었다··· 그래도 가다 보니 여든에도 새 항로 있더라

남정미 기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6-01-30 15:04

[아무튼, 주말]
[남정미 기자의 정말]
유튜브로 새로운 전성기 연 배우
데뷔 60주년 선우용여
“안녕하세요. 한국 최고령 유투바(유튜버) 선우용여입니다. 제 나이 81세, 그러나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선우용여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지난해 4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순풍 선우용여’를 만들며 했던 이 이야기는 1년이 채 안 돼 현실이 됐다. 1월 중순 기준 구독자 43만4000명, 공개된 146개 영상 조회 수를 모두 합하면 1억4768만회에 달한다.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인급동)’ 1위를 비롯해 순위권에도 여러 차례 올랐다.

제2의 전성기란 말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지난해 내로라하는 예능프로그램 대부분에 얼굴 빠지는 곳이 없더니,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예능(‘용여한끼’)도 찍었다.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남편 역 배우 오지명이 늘 애타게 외치던 “용여! 용여!”를 이제 모두가 찾는다.

1965년 TBC 공채 무용수 1기로 선발됐고 이듬해 ‘상궁나인’으로 데뷔해 배우 생활한 지 올해로 60주년을 맞는다. 마냥 순풍에 돛 단 배 같은 시간만은 아니었다. 결혼과 동시에 거액의 빚을 졌고, 배우 생활을 접고 떠난 미국에선 공장·한식당·미용실로 출근했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엔, 갑작스러운 뇌경색이 찾아왔다.

이달 중순, 이 ‘최고령 유투바’와 서울 중구 한 호텔 식당에서 마주 앉았다. 평소 그가 조식 먹으러 즐겨 찾는다는 그 호텔이다.

◇우리 엄마도 선우용여처럼 살았으면

‘매일 벤츠 몰고 호텔 가서 조식 뷔페 먹는 81세 선우용여’. 유튜버 선우용여의 서막을 알린 영상 제목이다. 오전 6시,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을 나선 선우용여가 직접 벤츠를 운전해 서울 중구 한 5성급 호텔에 도착해 조식 먹는 내용을 담았다. 업계 용어를 빌리자면, 제대로 터졌다. “와, 돈 많이 벌어서 이렇게 멋있는 할머니 돼야지” “영 앤 리치보다 명랑한 부자 할머니” 같은 재기 발랄한 MZ세대 반응부터 “이러면 자식들도 참 좋지요. 부모님이 병원 덜 가고 건강관리만 잘하셔도 자식에게 선물이니까요” “60대 여성 로망입니다” 같은 내용까지, 남녀노소를 망라한 댓글 약 4600개가 달렸다.

–정말 매일 호텔에서 조식 드시나요.

“매일은 아니고요. 남편과 사별하고, 애들 다 시집 장가 가니 나 혼자잖아요. 옛날처럼 시장 봐서 영양가 있는 음식 만들어 먹으려니 들이는 돈과 시간, 노력 대비 효율적이지가 않은 거예요. 그런데 호텔 뷔페 가면 신선하고 다양한 음식을 건강하게 조금씩 먹을 수 있잖아요. 또 밖에 나가려면 일단 뭐라도 (얼굴에) 발라야 하고 옷도 챙겨 입어야 하니까, 그게 삶에 또 다른 활력이 돼요. 나이 들면 집안에서 늘어지는 걸 경계해야 하거든요. 은퇴 후 사람이 갑자기 확 늙는 게 매일 아침마다 하던 루틴이 깨지기 때문 아닐까요. 아침에 일어나 외출 채비해서 조식 먹으러 가는 즐거움이 생각보다 커요.”

–호텔 조식을 사치스럽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부러 자랑하거나 뽐내려고 호텔 가는 거 아니냐고도 하는데, 전혀요. 제가 평소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나는 주식 투자는 안 해도 조식 투자는 한다’예요. 자기 몸에 하는 투자만큼 안전하고 좋은 게 없잖아요. 전 사실 보험도 없거든요. 그런데 주변을 보면 먹는 건 등한시하면서 보험에는 매달 수십만원씩 내는 분이 많아요. 그 돈 대신 저는 ‘조식 투자’하는 거죠(웃음). 개인적으로 옷은 비싸지 않아도 깨끗하게만 입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배우 생활하며 대부분 동대문에서 (브랜드 없는) 옷 사 입었고, 명품은 아웃렛에서 몇 년 지난 제품 싸게 팔 때 처음 샀고요. 그런데 몸에는 투자해야 돼요. 나이가 들수록 더.”

그도 젊을 땐 촬영장에서 하도 굶으며 일해 얼굴이 노랗게 뜨고, 녹화 중 영양실조로 쓰러진 적이 있었다. 예기치 못한 질병이 그의 삶을 바꿨다. 2016년 8월, 방송 녹화 도중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더니 팔이 안 올라갔다. 남편과 사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시 촬영 중이던 방송이 건강 관련 프로그램이었다. 패널로 전문의 여럿이 나와 있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응급실로 갈 수 있었다. 뇌경색이었다. “사실 몇 달 전부터 전조 증상이 있었는데도 무시하고 일했던 거죠. 그때 알았어요. ‘아, 내가 정말 내 몸을 헌신짝처럼 여겼구나. 내 몸을 위해 한 게 전혀 없구나.’ 그걸 알고 나니 오히려 뇌경색에 감사하더군요. 더 늦기 전에 나한테 알려줬잖아요.”

–‘우리 엄마도 선우용여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중장년층 댓글이 많더군요. 평생 남편·자식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어머니가 드시는 데 돈 아끼지 않고, 일상을 즐겁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일까요.

“우리 세대는 누구나 다 고생하면서 자랐어요. 그러면서 ‘내 자식만큼은 이런 고생 안 시키겠다’는 마음이 컸죠. 평생 일해서 자식 뒷바라지하고, 퇴직금 받아선 결혼 자금까지 대주는 게 이런 이유 아닐까요. 그런데 살아 보니 내 건강과 삶을 챙기는 게 먼저예요. 인생에서 빚진다는 게, 꼭 돈만 해당되는 게 아니더군요. 아프면 사실은 그것도 자식들에게 빚이거든요. 빚 지지 않고 즐겁게 살다 가려면 먼저 나부터 잘 살펴야 해요. 부부가 맛있는 거 먹으며 여행 다니고 재밌게 살아야 건강하고 치매도 안 오는 것 같아요. 저는 남편이 없으니 차가 제일 친한 친구고, 혼자서도 어디든 정말 잘 다니거든요. 오죽하면 산 지 1년 반 된 차로 2만7000㎞를 탔을까요, 하하!”

◇결혼하자마자 빚더미 앉아

선우용여는 1945년 8월 15일에 태어난 해방둥이다.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 담당 교수가 그에게 새로 개국한 동양방송(TBC) 공채 시험을 권했다. 당시 창립자인 이병철 회장이 직접 면접을 봤다. 준비해 간 무용은 보여줄 새도 없이, 카메라 테스트만으로 덜컥 1등으로 합격했다. 그 이듬해 드라마 ‘상궁나인’으로 정식 배우 데뷔를 했다.

–꽃길이 예정된 여배우 인생이 결혼(1969년)과 동시에 달라졌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데 오질 않아요. 그런데 누가 ‘지금 신랑이 경찰서에 잡혀 있으니, 이 종이에 도장 찍으면 풀어주겠다’고 해요. 알고 보니 당시 사업을 하던 남편이 부모님처럼 따르던 분 빚보증을 섰는데, 그걸 갚지 못해 경찰서에 들어간 거예요. 일단 신랑은 나오게 해야겠다 싶어 도장 찍고 보니, 그게 빚을 제가 떠안겠다는 내용이더군요. 빚이 당시로 1750만원, 지금으로 치면 200억원쯤 될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연기자란 직업이 간절하지 않았다. 포옹신이 싫어 영화 작업도 꺼렸고, 결혼하면 잠정 은퇴할 계획이었다. 그 도장이 모든 걸 바꿨다. “나는 TV에 나오는 직장인”이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덤볐다.

–첫째 아이 태어나고 일주일 만에 다시 일을 시작하셨다고요.

“출산 후 3개월 만에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 죽는 장면도 찍었죠. 영화 6편, TV 방송 2개를 동시에 한 적도 있어요. 그때는 영화 촬영을 한꺼번에 몰아서 했거든요. 닷새를 꼬박 잠도 안 자고 촬영을 하고 나니, 6일째 되는 날엔 자려고 해도 근육이 경직돼 눈꺼풀이 감기질 않더군요.”

–남편이 원망스럽거나, 억울하진 않았나요.

“참 이상하죠. 저는 그런 게 없었어요. 일단 빚이 많은데 일이 계속 많이 들어오니 일하기 바빴고, 결혼하고 이런 일이 생긴 걸 보니 ‘남편이 받을 복 있어, 내가 일복이 많나 보다’ 했어요. 심지어 아예 통장을 남편에게 주고 저는 용돈만 받아 썼거든요. 그래도 별로 억울한 마음이 안 들었어요. 요새 들어 가만히 생각해보면, 불교에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란 말이 있잖아요. 남에게 베풀되 베푼 바 없이 행동하면 그게 결국 돌고 돌아 나한테 오는 것 같아요. 부부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그래요. 다른 사람에게 한 게 결국엔 다 어딘가엔 저금이 돼 내게 돌아오더군요.”

–배우로서 작품 욕심은 안 났나요.

“그땐 솔직히 내가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 안 했어요. 그래도 두 가지는 반드시 지켰습니다. 시간 약속은 엄수하자. 나 때문에 NG가 나서 상대 배우 감정 깨뜨리게는 하지 말자.”

◇진짜 연기는 식당에서 배웠다

먹고살기 위해 한 연기였다지만, 다작(多作)은 그의 인지도를 크게 올려놓았다. 국내 배우 최초로 자동차 광고를 찍었고, 1977년엔 영화 ‘산불’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업계에서도 인정받았다.

–그때 돌연 미국으로 가셨죠.

“어느 날 딸 연제가 물어요. ‘엄마 옆집 아줌마는 왜 집에 있어?’ 지금까지 ‘엄마’는 밖에 있는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산 거죠. 아들은 학교에 ‘엄마가 너무 뚱뚱해서 못 온다’고 말했더라고요. 일하면서 아이들 학교 행사에 한 번도 간 적이 없거든요. 어느정도 빚도 갚았으니 이제는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 살아야겠다 싶었어요.”

참고로 이 ‘연제’는 1993년 가요톱10에서 4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노래,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을 부른 가수 최연제(56)다. 지금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난임 전문 한의원을 한다. 선우용여가 연예계 생활을 접고 1982년 떠난 곳도 LA였다. 이민 초기엔 작은 봉제 공장을 차려 바지에 지퍼나 단추 다는 일을 했고, 1년쯤 뒤엔 한식당을 개업했다.

–잘나가는 배우였는데, 아쉬움은 없던가요.

“제 장점이 지나간 일은 안 돌아본다는 거예요. 그런데 8년쯤 지났을까. 일하고 오니 딸이 한국에서 전화 한 통이 왔대요. 당시 한식당에 계약 문제가 생겨 거의 빈손으로 쫓겨나다시피 하고, 미용 기술을 배워 웨스트우드 미용실에 취직한 지 20일쯤 됐을 때거든요. 1989년 방영된 드라마 ‘역사는 흐른다’를 연출한 황은진 PD였어요. 같이 드라마를 하고 싶다더군요.”

–수락하셨나요.

“원래는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딸이 그래요. ‘엄마, 이제는 엄마가 하고 싶은 거 해도 돼.’”

그때부터 한국에 돌아와 매년 쉬지 않고 2~3개 작품씩 꾸준히 했다. 단 하루를 편하게 못 쉬는데도 힘들단 생각이 안 들었다. ‘결국 이게 내 천직인가’ 싶었다. “실은 미국 가기 전엔 웃음도 울음도 다 한 가지라고 생각했거든요. 미국에서 공장과 식당 운영하며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니 알겠더군요. 세상에는 수만 가지 웃음과 울음이 있구나. 진짜 연기 공부는 사실 여기서 하고 간 셈이죠.”

–그리고 만난 게 ‘순풍산부인과’인가요.

“그땐 너무 바빠 순풍이 그렇게 잘나가는 줄도 몰랐어요. 백화점에서 처음으로 옷을 협찬해 주겠다고 해, 어렴풋이 실감했죠. 얼마 전 대만에 갔는데, 공항에서 사람들이 ‘선풍, 선풍’ 해요. 무슨 말인가 들어보니 ‘순풍’이에요(웃음). 요즘은 OTT에서도 볼 수 있어 젊은 사람들도 다시 많이 본대요. 사실 그때만 해도 ‘왜 그렇게 망가지는 연기를 하느냐’는 사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전 TV에선 미친 짓 하라면 얼마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시청자들이 기뻐하면 그걸로 된 거죠. 대신 밖에 나가서 미친 짓 안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TV 안에선 멋있는 역할만 하면서 밖에 나가 나쁜 짓 하는 이가 얼마나 많나요.”

–최근에도 연예계에서 비슷한 문제가 터졌죠.

“잘나갈 때 막 살면 안 돼요. 잘나갈 때 더 잘해야죠. 세상에 영원한 건 없거든요. 누가 이유 없이 비싼 밥 사주는 자리나, 하다못해 동창회도 거의 가본 적 없어요. TV 밖에서 제 자신에게 더 엄격했어요. 또 사람들 많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다들 그저 남 안 좋은 얘기 하기 바쁘더라고요.”

◇80대, 뭐든 할 수 있는 나이

선우용여는 지난해 12월 자서전 ‘몰라 몰라, 그냥 살아(21세기 북스)’를 출간했다. 곧 대만에서도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그는 책에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를 이렇게 썼다. “누군가는 ‘다 늙어서 무슨 유튜브야?’ 할 수도 있겠지만, 80세가 되니 오히려 남의 시선이나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살고 싶다. … 아, 나쁜 것만 빼고!”

–이렇게 화제가 될 걸 예상하셨나요.

“80대에 이렇게 될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어요. 유튜브는 ‘어떻게 되고 싶다’는 목표 없이 정말 편하게 시작했어요. 딱히 연기한 것도 아니고, 실제 사는 것 그대로 보여준 거고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내숭이거든요. 연기는 연기할 때만 해야지, 삶을 연기하면 피곤해서 안 돼요. 아, 그래서 좋아해 준 걸까?”

–책 제목이 재밌었습니다. ‘몰라 몰라, 그냥 살아’. 순풍 때 유행어를 딴 건가요?

“그렇기도 하고, 실제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해도 결국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살 거잖아요(웃음). 내 자식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데, 굳이 나이 많다고 내 삶을 정답처럼 말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도 결국 잘되려는 사람은 자기가 다 알아서 하기에, 그렇게 썼죠.”

–그래도 젊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남 눈치, 다른 사람 시선 너무 많이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범죄만 아니라면, 남 보기에 대단히 흉하지만 않다면 그냥 나답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 인생 보지 말고, 내 울타리 안에서 행복을 찾아보세요. 남의 것 탐하지 말고, 내 것 더 잘 지키면서 살면 돼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친정어머니를 꼽으셨는데.

“친정엄마는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셨는데 참 지혜가 있으셨어요. 사는 게 힘들고 바빠 자주 연락을 못 드리면, 그러셨어요. ‘괜찮다. 네가 쉬는 날이 내 생일이고 명절이야.’ 자식들 대학까진 공부시켰지만, 이후엔 철저하게 독립시켰고요.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 건물은 넘보지 말라’고 하셨죠(웃음).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노후는 철저하게 대비해야 돼요.”

–실제 자녀분들에게 그렇게 하시나요.

“딸이 외국서 결혼했는데, ‘비행기표는 내가 사서 가겠다. 다른 거 더 해주는 건 없다’고 했죠. 사실은 지원해주고 싶죠. 그래도 안 했어요. 주변을 보면, 너무 곱게 키운 자식들은 인생에 대한 면역력이 없더군요.”

–새해 목표가 있으시다면.

“계획한 대로 모든 일이 되나요. 그저 하루하루 지금 자리에서 최선 다하는 거죠. 착하고 진실되게. 목표는, 몰라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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