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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끼’의 위대함을 나눈다···나 역시 노숙인이었기에

남정미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11-28 17:54

아산상 사회봉사상 부부 수상자
노숙인·청년 도운 김현일·김옥란
김현일·김옥란씨 부부가 노숙인을 위한 도시락을 다 만들고 나서 부엌 한편에 섰다. 부부는 “IMF 위기를 겪으며 평범하게 세끼 밥 먹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거룩하고 위대한 일인지 배웠다”고 했다. 부부가 입은 옷은 고립·은둔 청년 회복 기관인 푸른고래 리커버리에서 만든 티셔츠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김현일·김옥란씨 부부가 노숙인을 위한 도시락을 다 만들고 나서 부엌 한편에 섰다. 부부는 “IMF 위기를 겪으며 평범하게 세끼 밥 먹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거룩하고 위대한 일인지 배웠다”고 했다. 부부가 입은 옷은 고립·은둔 청년 회복 기관인 푸른고래 리커버리에서 만든 티셔츠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23일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이었다. 가을의 마지막 절기. 이날이 끝나면 절기상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다. 이날 서울 성북구 보문동 성북천 인근을 찾은 노숙인들에겐 겨울이 먼저 온 듯했다. 몇 겹씩 껴입은 옷은 물론이고 두꺼운 파카를 입은 이도 있었다. 이들은 약속된 오후 5시가 되기 한참 전부터 천변을 따라 길게 줄을 섰다. ‘밥 한 끼’란 그 단 한 가지, 평범하고도 숭고한 이유를 위해서.

김현일(59) 바하밥집 대표는 이곳에서 17년째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있다. 이곳에선 누구도 ‘노숙인 무료 급식소’란 말을 쓰지 않는다. 그저 ‘밥집’이고, ‘손님’일 뿐. 컵라면 5개에서 시작한 밥집은 이제 일주일에 400명의 밥 한 끼를 책임지는 곳이 됐다. 성북천 인근에서 직접 나눠주는 도시락이 300인분, 서울역 인근 노숙인 센터로 보내는 도시락이 100인분이다.


김 대표는 “아내가 없었으면 하지 못했을 일”이라고 했다. 남편이 노숙인 밥 주는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중소 무역 회사에 다니던 아내 김옥란(53)씨는 잔소리 대신 스테인리스 식판 30개를 내밀었다. 플라스틱 식기는 애들 장난감 같지 않냐면서. 2019년 남편이 공황장애를 겪자, 직장을 그만두고 은둔·고립 청년들 회복을 돕는 ‘푸른고래 리커버리 센터’를 설립한 것도 아내였다. 밥집을 찾는 청년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 20·30대 청년에게 집중하는 것이 노숙을 예방하는 ‘골든타임’임을 확신하면서다.

지난 25일 아산사회복지재단(이사장 정몽준)은 노숙인과 고립·은둔 청년들의 회복과 자립에 힘쓴 공로로 이 부부에게 아산상 사회봉사상(상금 2억원)을 수여했다. 아산상 관계자는 “이 부문에서 부부 수상자가 나온 건 2012년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25일 서울아산병원 강당에서 열린 ‘제37회 아산상 시상식’. 왼쪽부터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춘실 성 데레사 진료소장(아산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김웅한 교수(의료봉사상), 김옥란·김현일 부부(사회봉사상).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25일 서울아산병원 강당에서 열린 ‘제37회 아산상 시상식’. 왼쪽부터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춘실 성 데레사 진료소장(아산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김웅한 교수(의료봉사상), 김옥란·김현일 부부(사회봉사상).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나도 용산역 노숙인이었다

1997년 12월 31일, 김현일은 서울 명동성당 앞 무료 배식소에 줄을 서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1997년은 잊기 어려운 해. 빚을 내 경기도 신도시 일대에서 신문 보급소를 운영하던 그도 마찬가지였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가 터지자 신문 구독이 끊겼다. 사무실 겸 살림집이었던 보급소가 문을 닫자 당장 세 식구 갈 곳이 없었다. 갓 돌 지난 첫째 아이와 둘째를 임신 중인 아내는 처가로, 그는 돈 벌어 오겠다며 거리로 나섰다.

-노숙을 얼마나 한 건가요.

김현일(이하 일): “저는 제가 생활력 강한 사람이라, 금세 일어설 줄 알았어요. 몸으로 하는 일은 거의 안 해 본 게 없거든요. 그런데 IMF 때는 어딜 가든 일이 없더군요. 결국 서울역, 용산역, 을지로 일대에서 5개월간 노숙을 해야 했습니다. 거리마다 그렇게 쏟아진 가장들이 넘쳐났어요.” 아내는 “수년 뒤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노숙인 무료 급식소도 그때 가 본 건가요.

일: “연말이라 성당 앞에서 한 자선 단체가 김밥 한 줄과 두유를 나눠줬습니다. 알량한 자존심에 잠깐 망설이다 늦게 줄 섰더니, 바로 제 앞에서 음식이 떨어지더군요. 주린 배를 쥐고 그 긴 밤을 또 지새울 생각을 하니, 잠깐 망설인 제가 원망스러웠어요. 너무 서럽고 막막한 찰나, 한 노숙인이 자신이 받은 김밥 반 줄을 나눠줬습니다.”

이때 기억으로 김 대표는 ‘바하밥집에선 마지막 한 사람까지 밥을 준다’는 원칙을 세웠다. 햇반·컵라면 등을 늘 갖춰 놓고,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땐 인근 식당에서 음식을 사서 제공한다.

-가족이 어떻게 다시 모여 살게 됐나요.

일: “부평에 있는 신문 보급소에 자리를 얻었어요. 그러다 서울 신촌에 상황이 좋지 않은 신문 보급소가 하나 있는데, 살려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죠. 사무실 보증금을 빌려 다 쓰러져 가는 집 하나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부평 보급소에서 만난 어려운 형편의 청년 셋을 데리고 왔다. 김 대표를 따르던 이들이 함께 신촌으로 오겠다고 한 것이다.

-남편이 데려온 군식구가 싫지 않으셨나요.

김옥란(이하 란): “나중에 사회 복지를 공부해보니 그게 바로 요즘 말하는 그룹홈이더군요(웃음). 가족 해체나 빈곤 등으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아동·청소년에게 가정과 같은 주거 여건과 보호를 제공하는 곳. 다른 사람들은 저희가 그 친구를 돌봤다고 하는데, 아니었어요. 없는 사람끼리 서로 위하며 모여 살았기에 힘이 되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IMF 여파는 여전했고 보급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 앞집에 살던 교회 장로가 나들목교회(현 나들목네트워크) ‘바나바하우스’를 소개해줬다. 자기 힘으로 주거를 해결하기 힘든 사람에게 보증금을 무이자로 빌려준다고 했다. 부부와 두 딸, 청년 셋은 바나바하우스 1호 수혜자가 됐다. 남편은 교회 어린이집 운전기사로, 아내는 중견 무역 회사에 새롭게 취직했다. 청년들은 이후 7년가량 함께 살다 모두 자립했다.

지난달 23일 오후 5시 서울 성북천 인근에서 부부와 봉사자들이 배식하는 모습. 부부가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하자, 노숙인들은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23일 오후 5시 서울 성북천 인근에서 부부와 봉사자들이 배식하는 모습. 부부가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하자, 노숙인들은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컵라면 5개로 시작한 노숙인 배식

눈치 챘을지 모르겠지만, ‘바하밥집’은 ‘바나바하우스 밥집’의 줄임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나바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어려운 이에게 나눠 준 ‘긍휼의 사도’로 통한다.

-밥집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일: “운전 일을 하다 보니, 유독 제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교회 인근 노숙인이었습니다. 제가 수혜를 받은 사람이잖아요. 그들이 밖에 놓인 자장면 그릇 뒤져 먹는 모습을 보며, ‘혜택받은 사람으로서 매주 교회에 가만히 앉아 예배만 드리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란: “아마 노숙 경험이 있어서, 다른 사람 눈엔 안 보이는 게 남편 눈엔 유독 잘 보였던 것 같아요.”

2009년 1월 24일, 김 대표는 설날을 앞두고 컵라면 다섯 개와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통을 가지고 성북천 아래로 내려갔다. 바하밥집의 시작이었다.

-그게 점차 커졌군요.

일: “어린이집 학부모님들이 제가 손님(노숙인을 부르는 용어)들에게 컵라면 드리는 걸 알고는, ‘컵라면보단 밥과 국이 낫지 않겠느냐’며 국을 들통째 해서 들고 오셨어요. 교회에도 알음알음 소문이 나 35인용 밥솥을 기증해 주시는 등 도움을 자청하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취업 준비생이던 봉사자 한 명은 자신이 취업할 때까지 오겠다고 하더군요. 속으로 ‘아, 큰일 났다’ 했죠. 그렇게 오래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웃음)….”

청년은 약속을 지켰다. 첫 월급으로 김치 냉장고, 연수원 들어가선 동기들에게 밥집 사연을 알려 함께 식기 소독기를 사서 보냈다. 밥집은 교회 주방을 빌려 쓰며 일주일에 최대 700인분 식사를 준비하는 곳으로 커졌다. 재정적 고비도 여러 번 있었지만, 봉사자들의 헌신과 보이지 않는 후원 덕분에 넘길 수 있었다. 지금도 밥집은 정부 지원이 아닌, 500여 명 후원자와 100여 명 봉사자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다.

바하밥집에서 만든 자장밥 도시락. 자장에만 재료를 5가지 이상 넣었다.
바하밥집에서 만든 자장밥 도시락. 자장에만 재료를 5가지 이상 넣었다.

-아내 역시 숨은 후원자였다고요.

일: “밥집에 처음 스테인리스 식판 30개를 사준 사람이 아내였어요. 그 무렵 손님들이 너무 빨리 늘어나 집에 갖다 주는 돈이 많이 줄었거든요. 사정을 안 아내가 ‘내가 버는 건 우리 집과 아이들을 위해 쓸 테니, 당신 월급은 이 일 하는 데만 쓰라’고 하더군요.”

-진심이셨나요.

란: “솔직히 ‘이러다 노숙인까지 우리 집에 데려오는 건 아닐까’ 싶었죠(웃음). 그런데 저희는 IMF 때 같이 어려움을 겪고, 이겨나갔잖아요. 그때 꿈이 ‘딱 100만원만 있으면 우리 가족 다같이 잘 살 수 있을 텐데’였어요. 감사하게도 남편과 제가 각각 취업을 하면서, 그 이상 돈을 벌게 된 거예요. 그때 남편과 약속한 게 ‘우리 수입은 늘어도 지출은 늘리지 말고, 필요한 사람에게 쓰자’였어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지키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일: “다행히 저희가 뽑기 운이 좋아서(웃음)…. 아이들이 학원 보내달라거나, 뭐 사달라고 보채는 일이 없었어요. 물론 여자아이들인데, 한 번도 백화점에서 좋은 신발이나 옷을 못 사줘 미안했지요. 그래도 물질적으로 많이 가지는 것보다, 세상에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단 걸 알았으면 했어요.”

란: “정말 감사한 건 아이들은 어렸을 때 자신들이 가난했단 기억이 없대요. 남편이 신문 배달하다 헌옷 수거함에서 종종 구두 같은 걸 가져왔거든요. 그걸 제 발에 신겨 보곤, ‘아, 신데렐라가 아니네’ 했죠. 다들 웃음보가 터졌어요. 부모가 가난 때문에 싸우거나 비관적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은 밥집 규모가 400인분 정도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일: “코로나 때 위기였어요. 진짜 식당처럼 식탁에 의자 두고 식판에 배식했는데, 다들 예민했잖아요. 집단으로 모여 식사할 수 없으니 도시락으로 만들고, 규모도 줄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게 신축 아파트더군요. 인근 성북천 일대가 개발되면서 배식하는 걸 싫어하는 분이 많아졌어요.”

-노숙인에 대한 편견 때문인가요.

일: “사지 멀쩡한 사람에게 왜 공짜로 밥 주느냐고 해요. 그런데 이들이 마냥 게으르고 정신적으로 나약해서만 이런 생활을 하는 건 아니거든요. 저 역시 노숙을 했고, 정말 일하고 싶어도 못 구하는 사람도 많아요.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이날 성북천 인근 배식소에서도 한 여자 노숙인이 앞이 보이지 않는 지적장애 딸과 함께 도시락을 받아 갔다.

◇젊은 노숙인이 많아지더라

바하밥집은 무료 급식뿐 아니라 노숙인 자활 지원과 직업 창출도 돕는다. 노숙인 A씨도 그중 한 사람. 알코올 중독인 그를 설득해 병원에서 중독 치료를 받게 했다. 입원을 마치고 나오는 길. A씨는 “마지막으로 딱 한 병 먹고 새출발하겠다”며 그 자리에서 소주 한 병을 들이켰다. 끝없는 도돌이표가 곳곳에서 반복됐다. 어린이집 운전도 그만두고 밥집에만 전념하던 김 대표에게 2017년 번아웃과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아내분이 회사를 그만둔 게 그 무렵인가요.

란: “더 이상 남편에게만 이 짐을 지워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혼자 놔두면 이 사람 죽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날로 사표를 썼습니다. 그동안 경제적인 지원만 한 것에 대해 빚진 마음도 있었고요.”

-대개 이런 상황에선 밥집을 그만두지 않나요.

일: “그 무렵 밥집은 이미 더 이상 저희만의 것이 아니었어요. 쉬어갈 순 있지만, 중단할 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셨습니까.

일: “‘내가 이거 한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싶은 회의가 찾아오다가도, 현장에만 나가면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오후 5시에 배식한다고 하면 오후 2시부터 줄을 서 계시거든요. 그분들에게 이 한 끼가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제가 잘 알잖아요. 줄 설 때의 참담함과 평범한 밥 한 끼의 위대함을요. 그러다 보니 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하하!”

아내는 퇴직금으로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남편은 물론이고 당시 밥집에서 활동하던 청년들을 다 데리고 시애틀의 청년 회복 센터 등 7개 기관을 탐방했다.

-왜 청년 회복 센터였나요.

일: “2014년 무렵부터 배식받는 청년들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하더군요. 그런데 노숙인이 된 상태에서 자활하는 건 굉장히 어려워요. 제가 해보니 노숙인 자활은 성공률이 10%도 안 되거든요. 그래서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고 봤어요. 그 예방을 위해선 먼저 고립·은둔 청년들을 살펴야겠더군요.”

2019년 그렇게 세워진 곳이 서울 성북구 보문동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다. 센터장을 맡은 아내는 제대로 해보겠다며 사이버대학에 진학,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다. 김 센터장은 “누구에게나 고립되고 은둔하는 시간이 올 수 있다”며 “고립·은둔 청년이라고 낙인찍기보단, 고래가 수면 위로 숨 쉬러 올라오듯 잠시 고립된 친구들이 이곳에서 숨 쉬고 나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리커버리 야구단' 소속 청년들이 야구 훈련을 하고 있다./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리커버리 야구단' 소속 청년들이 야구 훈련을 하고 있다./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매주 금요일마다 청년들과 야구를 하더군요.

란: “일단 햇볕을 쬐게 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야구는 1루에 나갔더라도 다음 사람이 공을 쳐줘야 2루에 가고, 홈에 들어올 수 있잖아요. 공동체성이 강한 운동이라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봤어요. 감사하게도 이런 취지에 공감한 이만수, 한상훈, 권혁돈 전 야구 감독이 지도를 맡아주셨습니다. 처음 청년 몇 명과 한겨울에 광나루 야구장에 나갔는데, 너무 재밌어하더군요. 정신과 약 때문에 몽롱한 친구가 야구가 하고 싶어 집중하는 모습에 감독님들도 큰 감동을 받으셨대요.” 야구단은 올해 창립 7년째 맞았다. 얼마 전엔 키움에서 운영하는 예강희망키움재단의 지원으로 청년 27명이 제주도로 전지훈련도 다녀왔다.

-가장 보람 느낄 때를 꼽아 주신다면.

란: “지금 현재 리커버리 센터에서 ‘코치’로 일하는 활동가들은 모두 과거에 상담받으러 온 사람이거든요. 질문에 대답 하나 하기까지 20분이 걸리는 친구가 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17년 동안 혼자 살면서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렸대요. 그런 친구가 얼마 전 청년의 날 행사 때 앞에서 ‘메시지 하나 써달라’고 호객 행위를 하더군요.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지만, 저희는 알잖아요. 실어증이나 다름없던 친구가 이렇게 살아내는 걸 볼 때,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나요. 인생에 이런 경험 하는 사람 몇 명이나 있을까요.”

일: “저는 다른 일 하라면 못 할 것 같아요. 이 일만큼 보람 있는 일을 못 찾을 것 같아서요. 그렇지만 보람과 힘든 건 또 달라서, 그만두고 싶은 적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가끔 아내가 제게 ‘존경한다’는 말을 해요. 살아 보니 그게 생에서 가장 큰 감사이자 보람이더군요. 제 인생을 30년 동안 본 사람이니, 그건 진짜잖아요.”

두 사람은 지금까지 한 번도 싸워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가진 건 적지만 서로 아끼고 남을 도우며 살아온 부부의 삶은 누구보다 풍요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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