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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월급 좀 더 받는다고 빌딩 못 사, 숨통 트이는 삶 살라”

남정미 기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10-24 13:57

[아무튼, 주말] 책 ‘햇빛은 찬란하고···’ 6만부 돌파 MZ 멘토 된 ‘밀라논나’ 장명숙

이 할머니 심상치 않다. 중저가 브랜드 매장에 걸려 있는 옷 한 번만 보고도 단박에 어느 고급 브랜드를 따라 했는지 알아내더니, 유행 한참 지난 아웃렛에서도 보석 같은 아이템을 발굴하고, 80년이 넘었다는 아버지 와이셔츠를 20대 모델보다 더 세련되게 소화해낸다. 밀라노와 서울을 오가는 할머니란 뜻의 유튜버 ‘밀라논나’, 장명숙(69)씨 이야기다.

처음엔 60대 패션계 대모가 주는 실용적인 팁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자 여느 패션 유튜버와는 조금 다른 양상이 벌어졌다. 패션에 관심 없다는 중년의 남성 독자부터 20대 사회 초년생까지, 그의 철학과 메시지에 웃고 운다는 이들이 많아졌다.

한번은 노화 방지 얘기를 하며 그가 말했다. “우리가 노화를 어떻게 방지해요. 진시황도 죽었는데···. 억지로 역류하려고 하면 힘들어요. 슬프고 힘든 일도 마찬가지. 울고 싶을 땐 울어야 하지만, 가능하면 빨리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이 간단한 이야기에 위로받았다는 구독자가 약 90만명(10월 21일 기준). 최근 발간한 그의 책 제목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도 여기에서 왔다. 8월 발간 이후 6만부를 돌파하며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세는 만 18세가 돼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해야 하는 보호종료 아동의 자립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비 오는 광화문에서 밀라논나를 만났다.

밀라논나 장명숙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밀라논나 장명숙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나 같은 맹탕 할머니가 인생 멘토라니

–밀라논나의 인기를 보며 요즘 젊은이들이 꼰대는 싫어도 멘토는 여전히 필요로 한다는 걸 알았다.

“처음엔 나보고 ‘띵언 제조기’라고 하기에, 내가 머리를 띵하게 뭘 잘못했나 생각했다, 하하! 나중에야 그게 ‘명’과 ‘띵’의 글자 생김새가 비슷하니 젊은이들이 ‘명언’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말이란 걸 알았지. 칭찬이 쑥스러우면서도 씁쓸했다. 기성세대가 얼마나 젊은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기에 나 같은 맹탕 할머니를 인생 멘토 삼을까. 어른이라는 말 자체가 ‘다 자란 사람’이란 뜻 아니겠나. 어른들이 먼저 젊은 사람을 좀 품어 주고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장년 세대에게 젊은이들과 할 얘기가 없으면 차라리 날씨 이야기를 하라고 조언했더라.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비결이 있나.

“아무래도 유럽 사회에서 배운 게 큰 것 같다. 유럽도 집집마다 다르지만, 한국만큼의 고부 갈등은 거의 없다. (유럽에 사는) 친구들이 시어머니한테 하는 것, 또 그들이 시어머니가 돼 며느리한테 하는 걸 보니 그 이유 알겠더라. 일단 며느리는 아들이 데리고 온 손님이다. 며느리가 좋아하는 파스타 해서 대접하고, 애 언제 낳을 건지 묻지 않는다. 그러니 시댁 가기 싫을 일이 뭐가 있겠나. 주말마다 시댁에 가서 밥 먹는 집이 많다. 그렇게 사랑받은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도 잘한다.”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부르기 금지 캠페인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내 귀한 자식을 왜 남하고 비교하나. 내가 낳은 내 자식을, 남이 낳은 남의 자식과 비교할 필요 없다. 봄에 피는 꽃 따로 있고, 여름에 피는 꽃 따로 있듯 다 자기 리듬이 있는 거다. 나도 어릴 때는 어머니가 비쩍 마른 병아리 다리라고, 커서 어떻게 시집가느냐고 걱정 많이 하셨다. 지금은 미인 소리도 듣는다(웃음). 가을 단풍이 똑같은 한 색이면 뭐가 아름답겠나.”

–밀라논나는 부부 싸움도 안 할 것 같다.

“에이, 무슨 소리. 다른 환경에서 살았고, 다른 성(性)을 가진 사람들인데. 오죽하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그런 말이 나왔겠나. 물론 옛날보다는 지혜로워졌다. ‘아, 이 말을 하면 싸움이 되겠다’, 그건 알겠다.”

–어떨 때 싸우시나.

“‘남이 보더라도 이 정도는 해야 괜찮지’란 말이 난 정말 싫다. 우리는 왜 그렇게 남을 신경 쓸까. 허례허식 많은 사회에서 커 오며, 그게 항상 못마땅했다. 그런데 반려자라는 사람도 그 소리를 하니까 못 참겠는 거지(웃음). 남한테 해 끼치지만 않으면, 남이 봤을 때 좋은 삶보다 내가 보기에 괜찮은 삶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인생이 두 번 아니라, 한 번이라서

밀라논나는 이화여대 장식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밀라노 마랑고니 패션스쿨에서 유학했다. 남편과는 대학 때 출강하던 선생님의 소개로 만났다. 집안에선 여자대학 가사과를 졸업해 전업주부가 되길 바랐지만, 여대를 선택한 대신 미대를 가고, 결혼해 유학을 가는 ‘우회로’를 택했다. 이후 에스콰이아와 삼풍백화점, 삼성문화재단 등에서 디자인 고문 및 구매 디렉터로 일하며 페라가모와 막스마라 등 이탈리아 유명 브랜드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의상 디자인과 ‘아이다’ ‘돈 주안’ 등 수많은 연극과 오페라 무대 의상 디자인도 그의 손을 거쳤다.

–그 시절 미대도 가고, 밀라노 유학도 갔다. 금수저라 가능했던 게 아니냐고 청년 세대가 항변한다면?

“인정해야지, 사실이니까. 일단 뭐든 인정을 하면 논쟁이 줄어들더라. 금수저는 아니지만 은수저 정도는 될 수 있겠다(밀라논나의 아버지는 은행원이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혜택을 누리기도 했지만, 내 꿈을 향해 스스로도 부단히 노력했다고 말하고 싶다. 큰애가 초등학교 들어가고 둘째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20년간 하루에 4~5시간밖에 못 잤다. 친정 어른들은 결혼하고 애 낳으면 내 열정이 누그러지리라 생각하신 것 같다. 그런데 결혼하고 애 낳아도 꿈이 소멸이 안 됐다. 인생이 두 번이면 남들이 원하는 대로 살겠지만, 한 번인 걸 어쩌겠나. 날마다 극기 훈련 하듯 살았다.”

–어떻게 해냈나.

“이 악물고 했지(웃음). 내 윗세대에는 사회생활을 한 여성들이 거의 없었다. 여자가 하는 일은 언제든지 그만둬도 된다고 무가치하게 평가하는 게 화도 나더라. 커리어에 제약도 많았다. 내 브랜드 론칭 같은 건 못했으니까. 밤 문화라는 것도 모른다. 퇴근하면 집에 오기 바빴으니. 취미도 없고, 골프도 못 친다. 좋은 회사에서 오라고 해도 집에서 멀면 안 갔다.”

–일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일할 때 제일 행복하니까. 아이 키우고, 집 안 꾸미는 것도 좋지만 창의성 발휘해서 디자인하고, 잘 팔리겠다고 기획한 것이 히트를 칠 때 행복했다.”

–그렇게 일을 사랑했지만, 이탈리아 유학을 떠날 때 1년간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간 건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했던데.

“살아보니까 외제차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게 내 자식들 가슴에 ‘회복 탄력성’을 남겨주는 거더라. 애가 어떤 환경에서도 툴툴 털고 일어나 사회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능력. 아이 내면에 이 에너지를 심어주는 건 양육 기간 외에는 할 수가 없다.”

–‘돈을 조금 더 받아서 내 자유를 뺏기지 말라’고도 했다. 연봉이 자신의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연봉이 아무리 높아도 남이 주는 건 월급이다. 월급 조금 더 받아도 빌딩 못 사고, 재벌 안 된다(웃음). 월급쟁이는 그냥 월급쟁이다. 그러니 너무 버겁지 않은 그 상태를 즐겨라. 너무 버거운 연봉을 받으면 불철주야 그것에 매달려야 한다. 매달리지 말고 자기 숨통 트이는 삶을 살아라.”

◇내 나이 예순아홉, 지 맥대로 산다!

–고급 브랜드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폐해를 목격할 때마다 마음이 쓰라린다고 했다.

“유튜브 채널을 보면 끊임없이 이른바 ‘명품’이란 단어가 나온다. 나는 명품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다 명품이잖아. 하다못해 들꽃도 이름이 다 있는데, 자신이 명품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살면 되지. 그거 하나 든다고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허무할 때도 있다. 그래도 하고 싶으면 해봐야지. 그래서 난 옷 어떻게 입으라는 조언도 안 한다. 조언한다고 듣나? 그건 자신이 깨달아야 하는 거다.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움, 취향을 스스로 찾는 게 중요하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때가 노년이라고 했는데.

“어릴 때 집안 어른들이 내가 신바람이 나서 노래를 흥얼거리면 말씀하셨다. ‘명숙이가 아주 지 맥으로 신이 났구나!’ 나이 드니까 참 좋다. 24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지 맥대로’ 사는 것이다. 남 눈치 볼 것도 없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내가 좀 늦게 일어난다고 어디 사회에 해 끼치는 건 아니니까. 젊음을 뭐 부러워하나. 어차피 걔네들도 다 늙을 텐데(웃음).”

–젊은이들 멘토로 ‘띵언’은 많이 하셨는데 동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밀라논나가 처음으로 ‘어렵다’며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내 다정한 목소리로 친구에게 말하듯 했다.

“아들·며느리·손주만 생각하지 말고, 마음의 환기를 좀 시켜. 자식도 중요하지만, 너의 즐거움을 찾아. 그게 실은 걔네한테도 더 즐거울 수 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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