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청와대 앞 등 떠돌며 하루종일 시간 때우기 일정
점심 食代는 독지가가 계산, 어르신들 "이게 뭐냐" 분통
구미市·醫協·현대오일뱅크 등 "돕고싶은데 어찌해야 할지…"
강남署, 김문희 회장 소환조사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식당 앞에서 정수코리아 김문희 회장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김지호 객원기자
이 단체 김문희(66) 회장은 사기전과 4범으로,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 만든 '정수장학회'를 여러 차례 사칭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수코리아는 이날 확정된 일정 없이 재외동포 200여명을 데리고 서울 북악스카이웨이→경기도 송추→청와대→경복궁→강남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일대를 떠돌아다녔다. 점심은 경기도 양주의 한 식당에서 때웠고, 식대(食代) 190만원은 돌연 나타난 '독지가'가 계산했다고 단체 관계자는 말했다. 이날 행사를 위해 관광버스 6대를 빌렸지만, 버스 회사 측엔 계약금(약 2800만원) 한 푼 내지 않았고,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영부인 정수코리아'라고 적힌 명함만 내밀었다.
이날 양주에서 본지 기자와 만난 김 회장은 "예정된 7박8일 일정을 모두 소화하겠다"며 "여행 경비는 한 푼도 없지만 오늘부터 독지가들이 나타나주고 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 회장의 지인은 "조선일보가 잘 써줘야 후원자가 더 나타나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정수코리아는 지난 5월 자원봉사자 40여명으로 설립한 단체로 이번 '모국 방문 환영회'가 첫 기획 행사"라고 소개하면서도 자신의 이력에 대해선 함구했다.
이 단체의 총무는 지난달 28일 캐나다 토론토 한인식당에 파독 광부·간호사 120여명을 모아 설명회를 열고 1인당 70달러씩 가이드비를 걷었다. 김 회장은 "가이드비를 걷었다는 것은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면서도 "관광버스 기사들께 팁 주는 용도로 받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그는 당초 한 종교 단체에서 5억원을 후원받기로 했는데, 이것이 갑자기 취소되면서 혼란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행사 직전까지 돈을 구하러 뛰어다니다 보니 예약을 중간에 취소하지 못하고 엉망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원하기로 한 종교 단체가 어딘지는 거듭된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본지 확인 결과, 김 회장은 과거 '정수회(正修會)'라는 단체에서 활동했고, 자신을 '서울 정수회 회장'이라 소개하고 다녔다. 정수회는 정수장학회와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正)'자와 육영수 여사의 '수(修)'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이 단체는 박 전 대통령 추모제를 올리는 등 각종 행사를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수코리아’ 회장 김문희(66)씨의 명함. 앞면 로고에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영부인’이란 문구가 선명하다(왼쪽). 뒷면에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 경선 특별보좌역 등 직책을 적었다. /원선우 기자
이날 앵벌이 여행에 동원된 파독 광부·간호사들은 허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파독 간호사 출신 이숙이(69)씨는 "식사도 노숙자처럼 먹었다. 싸구려 약장수나 다름없는 100% 사기 행각"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는 말에 정장과 드레스를 사왔는데, 오늘 청와대 분수대 가서 사진 찍은 게 전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참석자는 "행사 추진한 사람들이 꼭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 했다.
이날 본지 보도를 본 구미시, 대한의사협회, 한국관광협회, 태권도진흥재단, 현대오일뱅크 등은 여행 경비와 의료 서비스 등을 돕겠다고 연락해왔다. 한 단체 관계자는 "유령 단체가 이들을 계속 모시고 있는데 어떻게 도와야 할지 답답하다"고 했다. 이날 서울 강남경찰서는 "정수코리아 김 회장을 소환, 관련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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