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 BC한인미술인협회장 |
옆집 할아버지
우리 옆집엔 이탈리안 부부가 살고 있다. 빌(Bill) 할아버지는 연세가 80세가 넘으신 근면, 성실하신 부지런한 분이시다. 아침 6시부터 채소밭 가꾸시고, 정원 가꾸기에 분주하시어, 뒷마당엔 항상 예쁜 꽃들로 가득하다. 나를 보시기만 하면 한아름 꽃을 따서 주시곤 하시며 해 맑은 미소를 띄우곤 하셨다. 캐나다에서 40년 이상 사셨는데 영어는 잘 못하였고 내 차가 그 댁 앞을 지나려면 정원일 하시다 말고 손을 흔드시며 악수하자고 뛰어나와 내 손을 꼭 잡아 주시곤 하셨다. 매번 자기 집에 와서 차를 마시자고 하시지만 허리가 아프셔서 잘 움직이지 못하시는 테레사(Theresa) 할머니께서 힘들어 하시는 것을 알기에 놀러 가겠다 대답만하고 놀러 가지는 않았다.
일주일 전쯤 다시 빌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도 손을 꼭 잡아 주시며 한번 꼭 놀러 오라고 하시기에 "그러지요" 하고 지나 갔었다. 사흘 전 집 앞을 막 나가려는데 앞집 사시는 이탈리안 할머니 수잔(susan)이 손짓을 하며 나를 부르시기에 갔더니 우리 옆집 할머니께서 돌아 가셨다고 말하시며 눈물이 글썽이신다.
나는 오랫동안 지병으로 고생하는 부인을 지성으로 간호하던 빌 할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고 싶어 좀 일찍 장례 미사가 있는 성당으로 갔다. 성당으로 막 들어가는데 입구쪽에서 할아버지 사진이 보였다. 갑자기 가슴이 쿵 하며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성당으로 들어가 중간 정도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동양인은 나 하나뿐이고 검정 옷을 입은 많은 이탈리안 교우들이 성당 안을 꽉 메우고 있었다.
조금 후 신부님이 들어 오시고 돌아가신 분을 모신 관이 들어 오는데 보니 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너무 당황이 되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착하고 그렇게 건강해 보이던 부지런 하신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갑자기 돌아 가시다니...
미사를 드리는 동안 난 멍청히 앉아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와서 영어를 잘하는 어떤 분에게 사연을 물어보니 이랬다. 빌 할아버지는 건강하셨는데 두 달 전쯤 갑자기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간암 진단이 나왔고 수술 받았으나 온 몸으로 암세포가 펴졌고 이 주일 만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일 주일 전에 마지막으로 빌 할아버지를 뵈었을 때도 본인은 얼마 못사신다는 것을 아셨을 텐데 아무일 없다는 듯이 정원 일을 하고 계셨다. 죽음을 얼마 앞두고도 항상 해오던 일을 태연히 하시던 할아버지. 마지막까지도 웃음을 잃지 않으신 그분 생각을 하니 평범한 삶을 사시며 소리없이 많은 교훈을 주신분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 다시 뵐 수는 없지만 굳은 살 베긴 일꾼 같은 손으로 악수를 청하시며 밝게 웃으시던 부지런한 빌 할아버지를 난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빌 할아버지 부디 천국 영광 누리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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