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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불의 극적인 만남…새로운 땅을 토해내는구나

김우성 기자 rahar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6-03 16:47

하와이라면 서핑의 고향인 줄만 알았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에메랄드 빛 파도로 충만한 물의 나라인 줄만 알았다. 빅 아일랜드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하와이에선 물과 불이 공존한다.

불의 고리. 환태평양 화산대를 일컫는 말이다. 서핑의 고향 하와이도 이 일대다. 불과 하와이의 조화가 낯설다면 빅 아일랜드에 있는 하와이 화산국립공원(Hawaiian Volcanoes National Park)으로 가야 한다. 거기, 지금도 끊임없이 용암을 쏟아내며 섬의 크기를 키우는 활화산이 있다.

화산국립공원은 넓다. 설악산 국립공원의 네 배다. 구석구석을 다 살피기엔 일주일이 모자란다. 그래도 시작하기 좋은 지점이 세 곳 있다. 시선의 높이와 속도를 달리하며, 원경과 근경 사이를 오가는 곳들이다.

먼저 화산국립공원 여행의 서곡, 중경(中景). 지름 4㎞의 칼데라에 또 다른 분화구를 품은 킬라우에아(Kilauea) 정상을 향한 길이다. 산을 차로 오를 때 다우림(多雨林)이 펼쳐내는 진녹빛 향연은 지상을 배회하는 수증기의 등장으로 모습을 감춘다. 하늘 높이 솟은 야자수 자리를 불모의 까만 흙이 대신한다. 그 끝에 불의 여신 펠레가 머문다는 궁전, 할레마우마우(Halemaumau) 분화구가 있다.

펠레는 불의 여신이되, 고요하다. 할레마우마우에서 용암은 하늘 높이 치솟는 대신 조용히 흘러내렸다. 마지막분출이 1982년이다. 그 이후로 29년간 할레마우마우는 주변으로 숨소리 같은 수증기만 내뱉어 왔다.

분화구에서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마우나 로아(Mauna Loa) 산이 구름을 허리에 걸쳤다. 4039m. 까마득한 높이지만 경사가 완만해 위압적이지는 않다. 가까이 펼쳐진 초원이 분화구와 함께 낯선 대비를 이룬다. 이젠 좀 더 가까워질 차례다. 킬라우에아에 작다는 뜻의 이키(Iki)를 붙인 분화구 트레킹이 기다린다. 1959년 킬라우에아 이키에서 1000번이 넘는 지진이 감지됐다.
끝내 용암이 분출돼 깊이 60~80m의 용암 호수가 형성됐다. 여전히 뜨거운 땅속 바위가 비와 만나 수증기가 곳곳 에서 솟아오르는 이 땅을 직접 걸을 수 있다. 약 6㎞로 두 시간쯤 걸리는 트레킹 코스다. 이 길, 물과 불이 서로 대항하다가 끝내 묘한 조화를 보인다. 분화구 위에서 시작한 길이 아래를 향할 때 밀림 속 오솔길에서는 물이 이겼다. 습하다. 고사리를 닮은 고비과 다년초는 낮게 엎드린 대신 줄기를 여럿 세우며 높게 자랐고, 현무암은 이끼로 푸르게 젖었다.

풍요로운 물의 기운이 사라지는 건분화구 바닥에 닿을 때다. 밀림 끝에 까마득한 넓이의 검은 땅이 펼쳐진다. 달표면을 닮은 모양새다. 간혹 갈라진 땅이 내뱉는 수증기는 열기를 머금었다.
황량하되, 낯선 풍경으로 사람을 매혹한다. 문득 눈을 드는 순간, 대다수 이방인은 탄성을 내뱉는다. 낮은 곳은 적막한데, 이를 둘러싼 사방의 벽은 온통 열대림으로 찬란하다. 불이 낳은 폐허와 물이 낳은 풍요가 극적으로 만난다. 해서 자꾸만 걸음이 멈칫한다.

마지막 원경(遠景)은 헬기 투어로 맛볼 수 있다. 소형 헬리콥터를 타고 화산국립공원 일대를 도는 여정이다. 킬라우에아 이키에서 물과 불의 자식이 서로 만난다면, 상공에선 물과 불이 직접
만나는 풍경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주무대는 푸우 오오(Puu Oo) 분화구.

분화구 중 가장 젊다. 1983년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용암을 쏟아내는 중이다. 2007년엔 건물 189채를 불태웠고 고속도로 14㎞ 구간을 지도에서 지워냈다. 교회도, 상점도, 주택도 같이 사라졌다.

대신 지난 20년간 푸우 오오는 2㎢가 넘는 땅을 하와이에 선물했다. 킬라우에아 정상 드라이브와 킬라우에아 이키 트레킹이 그러했던 것처럼, 헬기 투어는 극과 극의 풍경을 보여준다. 규모는 더 크다. 힐로(Hilo) 공항에서 출발한 헬리콥터가 남진(南進)할 때 정면으로 달려드는 뭉게구름 아래 광활한 마카다미아 농장이 있다. 점점 솟구치는 수증기가 구름과 구별되지 않더니 이윽고 흐릿한 시야 안에 붉은 분화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푸우 오오다. 여기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땅은 기묘한 형태로 끊임없이 흐른다. 땅을 붉게 물들인 용암과 그 위로 섬처럼 고립된 숲이 교차한다. 마침내 바다에 닿은 용암은 한바탕 연기를 쏟아내곤 땅이 된다. 땅 위에 쌓여 갔던 것들이 소멸하는 대신 땅 아래 숨죽였던 용암이 새로운 땅을 토해낸다. 신생과 죽음을 함께 품은 젊은 땅이 자아내는 풍경은 그렇게 사람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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