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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백서]심리상담 서비스-1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려면”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3-29 16:53

석세스 상담서비스 •다문화 초기아동발달팀
김은주, 최현미씨


 


매사에 무덤덤한, 그런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민은 저절로 가슴 떨리는 변화다. 문제는 그 결과가 모두에게 유쾌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낯선 것들이 순식간에 일상을 점거하는 순간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거나 아예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면, 이민자의 마음은 떠나온 곳과 살아가야 할 곳의 경계를 표류하기 십상이다. 

정박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처받기 쉬운 것이 바로 마음이다. 닻을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항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낄 때, 평범한 이민자는 한국에서 누렸던 권리나 지위 따위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태도는 지금, 여기로의 정착을 방해하는 높은 파도이기도 하거니와 때로는 우울증을 비롯한 마음의 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민자 봉사단체 석세스의 ‘심리상담 서비스’는 마음을 다친 이들을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다문화 초기아동발달팀’(Multicultural Early Childhood Development Team: MECD)이란 것도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0세에서 6세 사이 아이를 둔 가족들을 생각해 만들어졌다. 한인 담당자는 최현미(심리상담 서비스), 김은주씨(MECD)다. 두 사람을 코퀴틀람 핸더슨몰에 위치한 석세스 트라이시티 센터에서 만났다.


 
‘나만 힘들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아이가 끊임없이 울어댄다.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벌이는 신통치 않다. 곶감 빼먹듯 한국에서 가져온 돈을 축내는 삶을 반복하다 보니 의지와 상관없이 불안감과 동거하게 됐다. 밴쿠버에 살면서 영어 한마디 사용하지 않고(혹은 못하고) 사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를 바보라며 책망하고 싶어진다. 결국에 만나게 되는 것이 무기력감, 그 뒤를 후회가 쫓아온다. 도대체 뭐하자고 이민을 결심했을까?>

최현미, 김은주씨가 전한 몇몇 이민자들의 자화상이다. 두 사람과 함께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들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민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요?
김은주(이하 김): ‘나만 힘들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합니다. 낯선 환경에 정착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여러운 숙제 같은 거에요. 그런데 이걸 부정하고 ‘다들 행복한데, 나만 불행한거야’라는 생각에 빠지면 현실에 압도당하게 되고, 결국엔 무기력해지는 겁니다.

최현미(이하 최): 사람들은 대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질 때 주저앉게 돼요. 지금은 힘들지만 앞으로는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 이게 없으면 지금 겪는 어려움이 영원할 것 같아 좌절하고 무력해지거든요.

-기대감이 없으니까 현실에 대한 불만 같은 게 쌓이게 되는 거군요.
최: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사람들은 자기가 제일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해요. 그때와 지금을 계속해서 비교하고,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과거에 연연할 수록 현재 내게 놓여진 상황을 받아드리고 극복하려는 의지가 약해집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것도, 아이들이 말을 잘 안 듣게 된 것도 마치 모두 이민 탓인 것 처럼 ‘이민만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내겐 없었을 거야”라고 스스로 믿어버리는 겁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듣는 이유는 이민만이 아닌 사춘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문제에 대한 해답은 결국 ‘자신’이 찾는 것

-어떻게 하면 이민 탓을 안 하게 될까요?
김: 살아가는 것은 변화의 연속입니다. 중요한 건  변화, ‘이민이라는 매우 큰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입니다. 일단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지금’ ‘여기’ ‘지금 이순간’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겠지만 포기할 일도 아니지요.

최: 그런데 문제는 힘들어지면 자기가 아는 것, 익숙한 것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무언가를 배우려 하는, 오픈 마인드를 갖는 것을 방해하지요. 많은 사람들이 즐거웠던 자신의 과거와  현실을 비교하면서 절망을 느끼는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내가 갖고 있었던 것, 내가 쓰던 방법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오픈 마인드를 키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정착에 실패한 사람들, 그래서 마음의 병과 씨름하는 사람들이 주로, 그리고 기꺼이 상담을 받으러 오나요?
최:한인사회에서는 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세요. 상담을 받는다고 하면 정신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문제가 정말 심각해지면 그제서야 상담을 고려해 보세요. 상담이란 건 삶의 어려움을 같이 풀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과외교사의 도움을 받는 것 처럼요. 단, 상담자가 해결책을 100% 찾아서 제시해 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김: 맞습니다. 상담을 통해 해결책을 얻기보다는 상담이 여러 해결책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최:좋은 상담이 되기 위해서는 내담자의 노력도 반드시 필요해요. 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상담을 통해 큰 도움을 받기 어렵습니다. 내가 해결책을 찾아, 내가 변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교사’가 아니라 힘이 되는 동행

-이민 1세대에게는 자녀의 캐나다 생활 적응도 큰 고민거리인 것 같습니다.
최:물론 중요한 문제이긴 한데 부모가 먼저 적응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몇몇 부모들은 자신들은 아이들의 보호자일 뿐, 적응해야 하는 사람은 자신들이 아니라 아이들이라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아이들도 마음의 안정을 찾고 온전히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한인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항상 뭔가를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부모 노릇이 부담스러워지고, 아이의 모든 것이 걱정스러워지는 겁니다. 부모는 교사가 아니에요. 아이 옆에서 같이 걸어가 주는 사람, 그 아이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죠. 아이가 ‘나는 참 가치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부모 노릇은 충분한 거에요.

최: 맞아요. 앞에서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동행해 주면서 함께 기뻐하고, 같이 즐기고, 넘어지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고, 힘들어하면 격려해 주는 것, 그렇게 해서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독립적인 인격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역활인 것 같아요.

-동행을 하려면 일단 ‘소통’이 중요할텐데, 이게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
최: 많은 부모들이 소통이 힘들다고 느끼시는데요 그건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거나 잘못 된 것을 지적할 때 이외에는 보통때 대화를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이의 생각과 마음이 알고 싶으시면 아이와 시간을 같이 보내세요.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생산적일지 고민하고 계획하실 필요도 없어요. 그냥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하면서 시간을 보내시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예상치 못 한 때에 아이는 마음에 있던 말을 툭 내던집니다. 그 때 잘 공감만 해주시면 돼요. 그러면 부모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아이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기 시작할 것 입니다.

김:대화를 나눌 때 질문은 피해야 해요. 아이들은 질문 자체를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거든요. 엄마, 아빠에게는 뭔가 정답을 말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이런 말이 있어요. “아이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세요. 그런데 물어보지는 마세요.” 예를 들어 텔레비전을 같이 보면서 ‘저게 왜 재밌어?”라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답을 말해야 하니까요.
 
-자녀와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지금 소위 말하는 ‘스펙’을 잘 쌓아두어야 아이의 미래가 행복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김:어떤 부모들은 한국사회에서 교육이, 학벌이,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 겪어봐서, 그 프레임 그대로 아이들을 키웁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작 두려워할 점은 아이들이 성장해서 활동할 시대, 그 세대를 부모들은 100% 알 수 없다는 거에요. 지금 아이들에게 쏟아붓는 정력이, 아이들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얘기죠.

최:정답이에요. 지금 ‘네모’가 좋다고 아이를 네모나게 키웠는데, 나중의 세대가 ‘동그라미’를 원한다면 어쩌겠어요. 한국에서는 스펙이 좋아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기업에 취직한다고 하지만 캐나다 사회는 스펙보다는 스킬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심리 상담자인 저에게 스펙과 스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한 자존감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들이 아이의 미래를 미리 앞서 나가서 생각하는, 그런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는 얘기군요.
김: 조급해 지면 옆집 아이와 우리 아이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만약 비교를 하고 싶다면 ‘잘나가는’ 옆집 아이가 아니라 ‘어제의 내 아이’와 ‘오늘의 내 아이’를 비교하는 게 옳은 태도인 것 같습니다.  


<4월 6일자 지면에서 석세스의 상담서비스와 다문화 초기아동발달팀과 관련된 자세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김은주씨(사진 오른쪽)와 최현미씨는 자녀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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