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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속 8000 비구니, 야칭 불학원을 가다

김동기 본지 발행인 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1-28 17:41

東티베트 캄(Kham) 사진기행

1만 승려 가운데 8천이 비구니다. 이들은 해발 4000m 고원 깊숙한 곳에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티베트 불학과 수도에 정진하고 있다. 워낙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보니 비밀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중국과 티베트 오지 여행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던 중, 우연히 한 장의 집단촌 전경사진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강렬한 인상이 담박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인터넷을 뒤져 그 곳이 불(佛)학원 야칭쓰(亞靑寺)라는 것을 알아 냈지만, 정확한 위치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었다. 어림잡아 티베트와 사천성 접경 어디쯤일 거란 추측뿐 어느 지도에도 야칭쓰는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여행 목적지를 야칭쓰로 정하고 나서 구체적인 지역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한 한국인 사내가 운남성 리장에서부터 티베트 라싸까지 1400km를 걸어서 갔다는 것이었다. 해발고도 5000m를 넘나드는, 그것도 겨울철 단독 도보여행이었다. 6년 전 스페인 순례자의 길 800km를 걸었던 아내와 나는, 의지와 용기, 그리고 체력 없이는 불가능한 이 무모한 도보여행에 경악했다. 그는 누구일까? 야칭쓰에 이어 나의 호기심에 또 하나가 추가되었다.

그는 운남성 리장에서 오지탐험과 산악 트레킹 가이드를 업으로 삼고 있는 40대 후반의 제이라는 사내였다. 제이는 1923년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라싸까지 걸어간 프랑스 여자 알렉산드라 다비드넬의 루트를 따라 갔다고 했다. 그는 87년이 지나 이 길을 걸은 두 번째 외국인이 된 셈이다.

당초 계획에는 아내와 둘이서 기차와 버스를 이용하고, 대중교통수단이 없는 지역에서는 전세차량을 수배해 이동하려 했으나, 여행 방법을 대폭 수정해 모든 일정을 제이에게 맡기기로 했다. 동티베트 지역은 열악한 도로사정과 미비한 대중교통망으로 차량대절이 가장 효율적인 여행수단이다.

그러나 동티베트를 자기집 마당처럼 헤집고 다니는 제이조차도 야칭쓰에 대해서는 정보가 전무했다. 우리는 일단 아는 데까지 간 다음 물어물어 가기로 했다.

 

동티베트 캄(Kham)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려 있는 틈을 타 중국은 티베트를 무력 침공했다. 그리고 캄(Kham)으로 불리는 티베트 동부 지방을 사천성과 청해성 등에 강제 병합시키고 말았다. 이 지역은 세계의 지붕 티베트 고원의 시작점이어서 골이 깊고 산이 높았다.

외부로부터 접근이 어려운 험준한 지형 탓에, 관광객이 몰려드는 티베트 라싸보다 오히려 장족 문화가 더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캄파족은 장족 가운데서도 성정이 거칠어 예로부터 용맹한 전사로 유명하다. 머리엔 붉은 띠로 치장을 하고 허리에 칼을 차고 다닌다. 초원에서는 죽은 자의 사체를 토막 내 독수리에 먹이는 전통 장례풍습 조장(鳥葬)도 행해지고 있다. 티베트 불교 4대 종파 중 가장 오래된 닝마파의 본 고장이어서 마을마다 곰파(티베트 불교 사원)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사람들은 불심이 깊고 달라이 라마는 그들에게 절대적인 존재다. 캄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 사진을 가슴에 품고 수천 킬로를 오체투지하며 순례길을 간다. 미스틱한 티베트다.

티베트를 향해 북서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져 평균 고도가 해발 4000m를 훌쩍 넘었다. 아스라한 벼랑길이 산기슭을 가로질러 실핏줄처럼 퍼져 나갔다. 이른바 새와 쥐만 다닐 수 있다는 조로서도(鳥路鼠道). 고대로부터 운남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역했던 차마고도(茶馬古道)가 이렇게 캄 지역을 통과했다. 중국이 오지 중의 오지인 캄 지역을 외국인에게 개방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 4800m 고개마루에서 타르초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

가는 길

6년 전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대륙을 횡단한 이래 두 번째 중국 방문이다. 지난 해 9월 중순, 운남성 곤명에 도착한 아내와 나는 대리석 산지로 유명한 따리를 거쳐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위해 리장(2600m)에 사나흘 머물렀다. 인근의 원하이 호수(3200m)에 올라 트레킹을 하면서 고소적응 훈련도 했다. 이번 여행길은 주로 해발 4000m에서 5000m의 고도를 오르내리게 되므로 고소적응은 필수였다.

제이는 자신의 SUV(중국제 2륜 구동/2700cc)를 정비하는 한편 이동 중에 필요한 식량과 텐트 등 야영장비를 챙겼다. 마침 송이버섯 시즌의 끝 무렵 이어서 자연송이도 한 보따리 샀다.(리장 주변의 산은 온통 소나무 밭이다.)   

이동 중 잠은 주로 지방도시의 빈관에서 잤지만, 마을이 없는 곳에서는 도로변 초지 위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해발 4000m 고원의 밤은 달이 밝았고 날은 찼다. 9월 하순이지만 새벽기온은 영하로 떨어졌다. 마른 잔가지들을 모아 불을 피웠다.

목적지 야칭쓰를 돌아 나오는데 약 2500km를 운행했다. 밴쿠버 같으면 이삼일 정도의 운행 거리겠지만, 우리는 열흘이 넘게 걸렸다. 벼랑을 낀 위험하고 거친 도로사정 때문이었다. 안전 장치 없는 벼랑길에 곳곳이 파이고 때로는 진창 이어서 시속 20~40km의 속도로 운행해야 했다. 4800m 고개를 두 번 넘고 5050m 고개까지 올랐다. 아래를 내려다 보고 싶지 않은,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그런 길이었다. 왕복 하는 동안 낭떠러지 밑으로 곤두박질한 화물 트럭을 두 번이나 목도했다.

평생 마셔도 남을 흙먼지에다 고소로 인한 가쁜 호흡 그리고 두통이 육신을 불편하게 했지만, 고원에 펼쳐진 광대한 초원과 설산을 품은 대자연은 또 다른 행성이었다.

리장-중띠엔

리장을 떠난 우리는 호도협에서 이틀간 트레킹을 마친 후 다음 목적지 중띠엔을 향해 일로 북상했다. 이제부터는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면서 본격적인 장족 문화권으로 접어들었다.

<▲ 전형적인 장족 마을 모습 >

 

중띠엔(3400m)은 13년 전 중국정부에 의해 지명이 샹그릴라(香格里拉)로 공식 개명된바 있다. 샹그릴라의 말뜻은 티베트어로 '마음 속의 해와 달'이라는 의미다. 보통 이상향 또는 유토피아의 대체어로 쓰이고 있는데, 중국은 그 이상향이 바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땅에 있다고 선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결론은 "이상향? 택도 없다!" 였다. 샹그릴라는 도시미학과 디자인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여느 중국의 지방도시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 사실 진정한 샹그릴라는 생로병사 인간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 속에 그리는 추상적 개념일 뿐이다. 나는 중국의 이 같은 황당한 사기공작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 옛 명칭 중띠엔으로 부른다.(샹그릴라는 1933년 영국소설가 제임스 힐튼의 소설 Lost Horizon 에서 유토피아로 묘사되었다.)

중띠엔-샹청

중띠엔에서 샹청 구간은 아슬아슬한 벼랑길이 온종일 계속되었다. 산에서 흘러내린 물로 인해 운행이 불가능 할 것 같았던 진창길을 제이는 노련한 운전솜씨로 거뜬히 지났다. 만능 스포츠맨인 그는 젊어서 산악 모토바이크 선수를 지내기도 했다.

<▲ 샹청의 티베트 사원 >

날이 저물어 저녁식사를 위해 풀밭에 차를 세웠다. 마침 추석전야여서 초원을 비추는 교교한 달빛이 가히 환상적이다. 마른 나무로 불을 피워 월하의 삼겹살 파티를 벌였다. 자정을 넘긴 늦은 시간에 오래 전 폐업한 빈관에 도착, 하루를 묵었다. 폐가에 가까운 분위기가 귀곡산장이 따로 없다.

샹청-리탕

샹청에 들어서면 산 중턱에 커다란 티베트 절 하나가 위압적으로 아래를 굽어 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호화로운 이 절은 중국 정부에서 달라이 라마를 견제하기 위해 내세운 꼭두각시 달라이 라마 계열이라 해서 현지 장족들에게 외면 받는 듯 했다. 만두와 국수로 점심을 때운 후 시장에 들려 부족한 식량을 보충했다.

샹청에서 리탕으로 가는 길은 4800m 고개를 넘어야 했다. 고개 마루에는 타르초가 세찬 바람에 펄럭였다. 시야는 전형적인 고원의 풍광으로 바뀌었다. 숲 대신 초원이 펼쳐지고 3000m 이상에서만 살 수 있는 야크(소)가 떼지어 방목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 리탕(4100m)까지는 갈 길이 멀어 도중에 야영을 했다. 야크 똥을 걷어내고 텐트를 쳤다. 장작을 모으고 개울물을 길어 나르면서 힘을 썼더니 가벼운 고소증세가 나타났다. 아침에 인근 야크 목동이 놀러 와 송이라면을 나누어 먹었다. 그도 장족들의 유행을 따라 앞니 한 개를 금(오른쪽 사진)으로 덮었다.

리탕-신롱-깐즈

리탕의 운전기사들에게 야칭쓰의 위치를 수소문해 방향을 대충 파악했다. 그러나 경유지 마을인 바아위로 가는 도로가 막혀 신롱과 깐즈로 멀리 우회하기로 했다. 신롱을 거쳐 깐즈로 가는 길은 초원을 가로 지르고, 강을 낀 계곡 길이 번갈아 이어졌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도로변 산기슭을 올려다 보니 몇 해 전 사천성 지진 재해가 새삼스러웠다.

강을 낀 계곡에 자리잡은 신롱에는 장발에 붉은 댕기를 묶은 장족 사내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얼굴이 우리 모습과 흡사해 친근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살벌한 것 같기도 하다. 이들은 한족에 대해 증오심이 강하기 때문에 장족과 대면할 때는 우선 한국인이란 것을 밝히곤 했다. 빈관 아래층에 있는 가라오케에서 새벽까지 떠드는 바람에 밤잠을 설쳤다. 건물들이 날림이다.
 
깐즈-야칭쓰

주변의 빼어난 풍광에 비해 깐즈 시내는 도로공사를 하느라 무질서하고 어수선했다. 경제성장의 호황을 맞은 중국은 어디를 가던 공사판이 벌어져 부산스럽다. 사천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 옆 테이블의 라마승으로부터 야칭쓰 가는 길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만두와 죽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주 도로를 벗어나 야칭쓰로 가는 깊은 산길로 접어 들었다. 고도가 점점 높아져 4500m를 넘어섰다. 무인지경의 비포장 산길은 골짜기를 지나고 고개를 넘어 끝없는 초원을 관통했다. 제이의 낡은 중국산 SUV는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그 초원길을 질주했다. 골짜기 아래로 추락해 산산조각 난 트럭 주위에서 라마승들이 제를 올리고 있다.

고원 깊숙이 들어와서야 야칭쓰와 떠거 갈림길이 나타났다. 마침 검문소에는 공안이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기회였다. 우리는 아무런 제재 없이 금단의 땅에 들어섰다.    

초원의 언덕을 넘어서니 한편에서 장족의 전통적 장례방식인 조장이 행해지고 있었다. 라마승의 장례의식이 끝나자 집도자가 도끼로 시신을 찍어 독수리가 먹기 좋게 토막 냈다. 상을 당한 가족이 멀찍이 떨어져 앉아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고, 하늘에는 피 냄새를 맡은 독수리들이 날아들었다. 이들은 독수리가 사자의 영혼을 하늘로 데리고 간다고 믿는다. 얼어붙은 땅, 그리고 땔감도 부족한 자연환경에서는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기란 쉽지 않다.

<▲ 집도자가 도끼로 시신을 토막내고 있다 >

야칭쓰

오후 2시경, 마침내 목적지 야칭쓰에 도착했다. 리장을 떠난 지 7일째였다.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마니차가 있어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주를 상징하는 만다라를 본떠 설계했다는 승려들의 집단 거주촌이 한눈에 들어왔다. 특이하고 기이하기까지 한 그 광경에 전율이 일었다. 큰 개울이 멀리서 내려와 이 집단촌을 휘감고 흘러갔다.

<▲ 마니차 >

수업을 마치고 나온 듯한 일단의 승려들과 마주쳤다. 붉은 티베트 승복을 입은 이들은 대부분 20대 전후의 젊은 비구니였다. 마침 돌풍이 일어 이들의 자취는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우리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듯이.....

주거지의 환경과 위생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상하수도 시설이 없어 길옆 작은 도랑에는 오물이 흐르고 죽은 개가 길가에 방치되어 말라가고 있었다. 태양열을 이용한 전기는 하루 두 시간 공급된다고 했다. 거리 곳곳에는 사납기로 소문난 티베트 견 짱아오가 떼지어 몰려있다. 이 녀석들은 먹을게 없으면 사람까지 공격하기도 한다. 만일을 대비해 나는 Dog Spray를 준비해 갔지만 다행히 쓸 일을 만나지 않았다.

<▲ 이 소녀 비구니는 사천성 신롱이란 지방에서 온 자매로서 이곳에서 6년간 공부를 한다고 했다. 언니(왼쪽, 21)는 이제 2년을 남겨놓고 있다. 동생(18)은 야칭쓰에 들어온 지 2년이 되었다. 이 자매는 두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최소한의 소유로 살고 있다. 공부를 마치면 비구니로 남을 지 또는 환속하게 될 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했다.(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으로 이들의 방에 들어가 취재하기란 쉽지 않았다.)>

야칭쓰는 1985년 한 고승 린포체(윤회에 의한 활불)에 의해 창건된 이래 많은 장족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불학에 정진하고 있는 곳이다. 수가 많을 때는 1만 여명의 승려 가운데 8천명 정도가 비구니라고 한다. 티베트 불교는 이들에게 있어 역사, 철학, 예술, 언어 등 지식과 신앙을 아우르는 최고의 가치이며 불학원은 장족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유일한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티베트와 대립각인 중국 정부는 야칭쓰 승려의 수를 제한하고, 외부인의 출입도 통제하고 있다.

<▲ 언덕 위에 세워진 작은 상자들은 승려들이 기도와 명상을 하는 수행공간이다 >

내일 아침 한번 더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오늘 밤은 강의 상류로 이동해 야영을 했다. 텐트를 친 개울 가에 땔감이 없어 불을 피울 수가 없었다. 초원 너머로 해가 지자 기온이 떨어졌다. 저녁을 먹자마자 있는 옷이란 옷은 모두 껴 입고 텐트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자고 또 자도 새벽이 멀다.

야칭쓰-떠거

사천성 성도와 티베트 라싸를 잇는 도로가 천장공로다. 우리는 떠거로 가기 위해 천장공로에 들어섰다. 이 길에서 깐수성이나 사천성으로부터 라싸로 순례를 가는 장족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삼삼오오 배낭을 메고 걸어가거나 오체투지로 그들의 성지 라싸를 향해 한발한발 다가가고 있었다. 오체투지에는 수레에 텐트와 식량을 실은 지원팀이 반드시 뒤따랐다. 

<▲ 오체투지>

<▲ 오체투지에는 수레에 텐트와 식량을 실은 지원팀이 반드시 뒤따른다 >

삼보를 걸은 다음 온 몸을 땅에 던져 석존 앞에 자신을 가장 낮추는 행위인 오체투지. 보통 7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리는 이 힘든 순례의 현장을 목도하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하면서도 한편 숙연한 감정이 복받쳐 목이 메인다.

떠거에는 티베트 전통방식으로 불경을 목판 인쇄하는 인경원이 있다. 인쇄의 모든 과정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며 인쇄된 불경은 각 사원으로 보내진다.

<▲ 인경원 목판 인쇄 >

떠거-깐즈

떠거를 떠나온 지 두어 시간이 지나자 취얼산 고개(5050m)가 길을 가로 막아 섰다. 이번 여행의 전 구간을 통해 가장 고도가 높은 고개길이다.

<▲ 초겨울에 접어든 고원의 들판>

아찔한 벼랑길을 구비구비 돌고 돌아 고개 정상에 올라서니 차갑고 매서운 강풍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떠거에서 구해온 타르초를 고개마루에 있는 초르텐에 묶었다. 타르초에는 불경이 인쇄되어 있어 부처님 말씀이 바람에 실려 온 세상 중생에 퍼져나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취얼산에서 깐즈까지는 계속 내리막 길이다. 이미 초겨울에 접어들고 있는 황금색 들판이 석양에 물들어 고원은 황홀하다.

깐즈-리장

깐즈를 지나 한 유목민 텐트를 방문했다. 텐트 안에는 간단한 취사도구와 연료로 쓰이는 마른 야크똥, 보리가루, 침구 등이 아무렇게 놓여 있는데 이것이 이들 살림의 전부다. 애기엄마로부터 주식인 마른 보리가루 짬빠와 야크젖으로 빚은 요구르트를 대접받았다. 장족 유목민들은 야크 떼와 함께 초지를 따라 이동한다. 이들은 문맹에 중국말은 전혀 못한다.

<▲ 유목민 가족>

깐즈서부터는 왔던 길을 역순으로 내달려 3일만에 리장에 도착했다. 이제 옷이며 배낭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낼 일만 남았다. 그러나 가슴 속에 각인 된 동티베트의 단상들은 시간이 지나도 털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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