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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딸 교과서만 봐도 가슴이 먹먹했는데…”

권승준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2-21 13:41

아파트 관리소 서기·축구스타 아버지·구두닦이·중졸 주부·중국집 주방장… 
그들이 고교 졸업장 받던 날

[남인천고교 성인반 졸업식]
축구스타 김남일 부친 - 돈버느라 아들 경기 제대로 못봐, 초등학교 졸업 恨 이제야 풀어
간암 수술 받고도 수석졸업 - 공부 못한 恨 품고는 못 죽어 휴학 권유도 뿌리쳐… 졸업연설
두 다리 불편한 어머니 - 체육대회·수학여행 안 빠져… 동료 피해 안주려 승용차로 소풍

"영원히 학창시절이란 게 없을 것 같았는데, 이제 내게도 '동창생'이라는 게 생겨서 너무 기쁩니다."(54세 김기복씨)

"이전에는 딸 교과서만 봐도 가슴이 먹먹했는데, 몇 십 년간 묵은 응어리가 없어졌어요."(55세 문현숙씨)

21일 오후 2시 인천 남구 남인천고등학교 성인반 졸업식장. 식장 앞쪽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서 졸업 소감을 말하는 학생들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이날 182명의 고교 졸업생은 모두 50~60대 만학도(晩學徒)였다. 가난 때문에, 병 때문에, 또 다른 사정 때문에 학업의 꿈을 접어야 했던 이들이 수십 년 만에 '고교 졸업장'을 손에 쥐는 순간이었다. 일반반과 달리 성인반은 2년을 다니면 졸업장을 준다.

 21일 오후 인천시 남구 남인천고 성인반 졸업식에 참석한 (왼쪽부터) 김재기씨, 김영옥씨, 문현숙씨, 한철원씨, 김순자씨, 박춘옥씨, 신육자씨. 이 학교 성인반은 졸업식에서 남학생은 양복을, 여학생은 한복을 차려입는 전통이 있다. /이태경 기자
"위 사람은 본교 고등학교 전 과정을 마쳤으므로 이 졸업장을 줌."

윤국진 교장이 졸업생 대표 박춘옥씨에게 졸업장을 건넸다. 양복과 한복을 차려입은 남학생과 여학생들은 요즘 졸업식에서 보기 드문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고교 졸업장이 필요하면 검정고시를 쳐도 된다. 하지만 이들은 2년 동안 실제로 학교에 등교해 교실에서 수업을 받으면서 학업을 마쳤다. "어릴 적 다른 친구들이 가방 메고 등교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에 쌓인 한을 풀면서 잃어버린 시절을 한껏 보상받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졸업식 내내 흘러나온 영상에는 전남 곡성의 한 기차역에서 찍은 수학여행 단체 사진, 색깔을 맞춘 체육복을 입고 줄다리기를 하는 체육대회 사진 등 '추억'들이 이어졌다.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나오자 졸업생 김재기(63)씨는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나이 먹고 주책이네요. 이럴까봐 아들보고 오지 말라고 했어요."

김재기씨는 2002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주전이었던 김남일 선수의 아버지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던 그는 어릴 때 고향을 떠나 서울과 경기, 충북 등을 돌아다니며 구두닦이, 일용직 노동, 창고 짐꾼, 선원 등의 일을 했다. 그렇게 돈을 버느라 아들 경기를 제대로 본 적도 없었다.

 21일 오후 인천시 남구 남인천고에서 열린 성인반 졸업식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졸업생들이 눈물을 훔치며 재학생 송사(送辭)를 듣고 있다. /뉴스1
2002년 아들이 월드컵 스타가 되면서 집안이 안정을 찾자, 김씨도 자신의 삶을 되찾았다. 2007년부터는 인천 중구 구의회 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아들이 스타가 되고 나도 덩달아 유명해졌지만 이력에 '초등학교 졸업'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면 바늘로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근 4년간 이 학교를 다니며 중·고 과정을 모두 마쳤던 것이다.

이날 성인반 졸업식엔 김씨 말고도 사연 많은 만학도들로 가득했다. 중국집 주방장, 철물점 주인, 택시 기사 등 갖가지 직업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김순자(57)씨는 간암 수술을 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후 "어려서 공부하지 못한 한을 품고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성인반에 입학했다. 남편은 "건강 생각해서 검정고시를 보라"고 만류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은 학교생활에 체중이 감소하고 감기에 걸리는 등 건강이 악화되기도 했다. 주치의는 휴학을 권했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수석졸업의 영예까지 안게 됐다. 그는 졸업 후 방송통신대에 진학한다.

두 다리에 장애가 있는 김영옥(57)씨는 체육대회와 수학여행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는 "전교생이 기차를 타고 소풍을 갈 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따로 승용차를 타고 소풍에 참석했던 일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인천의 한 아파트 주민회에서 서기 일을 하고 있는 박춘옥씨는 "학교에서 회계원리, 세무회계, 엑셀을 배워서 이제는 관리소장, 회계, 총무까지 도맡아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날 182명의 졸업생을 대표해 답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올랐다. 답사를 읽는 박씨의 목소리가 울음으로 잠겨들자 181명의 동창들이 박수를 치며 격려했다.

"먹고살기도 바빴던 어린 시절 진학이란 꿈도 꾸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한을 가슴 깊이 묻어둔 채 자식들 뒷바라지에 정신없이 세월은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반백년이 훨씬 지나서야 이 나이에도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쁨과 설렘으로 온몸에 전율을 느꼈던 그때 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들 그 전율을 잊지 말고 남은 생을 힘차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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