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국가 이미지 ‘흔들’
캐나다를 대표해온 ‘다문화 성공 국가’라는 이미지가 최근 들어 현실과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최근 입국한 신규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차별이 예외가 아닌 ‘일상적인 경험’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WPP 캐나다가 발표한 ‘Canada’s New Voices’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이후 캐나다에 입국한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150건 이상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약 87%가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기업들이 급증하는 이민자 인구를 보다 깊이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실시됐다.
차별의 주요 요인으로는 인종, 언어 및 억양, 그리고 해외 경력이나 학력에 대한 저평가가 꼽혔다. 특히 언어와 억양은 전체 사례의 31%에서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됐으며, 간접적으로는 최대 80%의 차별 상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또 이민자들 사이에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응답자들이 ‘캐나다인’의 의미를 역사나 상징이 아닌 친절, 공정성, 포용성과 같은 가치에서 찾고 있었다.
WPP 캐나다 케빈 존슨 사장은 “이번 조사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이민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과 경험이 드러났다. 정성적·정량적 분석이 모두 담긴 결과”라고 설명했다.
다만 응답자의 16%는 “캐나다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진정한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다”고 답해, 이른바 ‘출생 기반 장벽(birthright barrier)’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WPP 전략 부문 알렉세이 로가틴스키 부사장은 “광고나 콘텐츠가 캐나다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제작돼 이민자들이 소외감을 느낀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소속감 결여는 사회적 분리로 이어지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약 4분의 1의 이민자들이 자신의 커뮤니티 안에 머무르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기회와 사회적 연결을 제한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약 3분의 1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통합을 시도하면서 정체성의 일부를 희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영역 사이에서 균형을 찾았다고 답한 비율은 46%에 그쳤다.
존슨 사장은 “이번 조사가 사회 전반의 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일상 속에서 이민자들이 보다 포용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소속감 부족이 심화되면서 캐나다 정착을 재고하는 이민자들도 늘고 있다. 실제로 영구 정착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희수 기자 chs@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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