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관리 등 직군별 직무능력 테스트

그는 2013년 서울지적공사에서 인턴을 하고 대한지적공사가 주최한 공모전에서 동상도 탔지만 또 낙방했다. 김씨는 “그땐 좀 억울했다”며 “입사 지원서에 직무 경력을 쓰는 칸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한지적공사가 직원 채용 방식을 ‘직무 능력’중심으로 바꾸면서 김씨는 합격 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입사 지원서에 학점, 연수 경험 등 이른바 ‘스펙’을 쓰는 칸을 없애고 직군별로 필요한 자격증과 경력, 이수한 과목을 쓰도록 했다. 필기시험도 경영관리·지적측량 등 분야별로 필요한 직무 지식을 테스트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영어·상식 시험은 없애고 영어는 토익 기준 500점만 넘기면 되도록 했다.
이렇게 채용 방식을 바꾸니 직무와 상관없이 공공 기관이면 전부 지원서를 내는 ‘묻지 마’지원자가 크게 줄었고, 중간에 퇴사하는 신입사원도 사라졌다. 대한지적공사 인사처 홍지영 과장은 “스펙을 잔뜩 쌓아 들어 온 신입사원들은 ‘내가 이렇게 많이 준비했는데 이런 일만 하고 있어야 하느냐’면서 조금 더 대우가 좋은 기관에 합격하면 바로 이직한다”며 “반면 이번에 뽑은 신입사원들은 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높고 현장에 빨리 적응한다”고 말했다. 대한지적공사는 올해도 이런 방식으로 신입 사원을 뽑을 계획이다.
◇올해 직무 능력 중심으로 3000명 신규 채용
정부는 24일 대한지적공사를 포함해 130개 공공 기관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직무 능력 중심의 채용 방식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스펙 대신 직무 능력을 우선하는 채용 방식을 공공 기관이 선도해 나가려는 것이다. 정부는 천편일률적인 스펙 쌓기로 취업 준비생은 시간을 낭비하고 기업은 정작 직무 능력을 갖춘 인재를 뽑지 못하는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는 지난해 대학생들의 스펙 쌓기 실태를 조사한 결과 “요즘엔 취업을 위해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경력, 인턴 경력, 사회봉사, 성형수술 등 9종류의 스펙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올해 상반기에는 한국도로공사(147명), 한국전기안전공사(133명), 근로복지공단(132명), 한국산업인력공단(101명), 한국남동발전(100명),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96명), 건강보험심사평가원(90명) 등이 직무 중심으로 신입사원을 채용한다. 하반기에는 한국전력공사(304명), 한국수력원자력(280명), 국민건강보험공단(237명), 한국농어촌공사(150명), 한국가스공사(107명), 신용보증기금(100명), 한국석유공사(100명) 등이 채용 방식을 바꿀 계획이다. 올해 320개 공공 기관 전체 신규 채용 인원 1만7000명 가운데 3000명을 직무 능력 중심으로 뽑는 것이다.
◇대학 교육도 직무 중심으로 바뀌어야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취업 준비생 박준모(25)씨는 “예
전엔 한 스터디 모임에서 모든 공공기관 시험을 준비했는데 요즘은 금융 스터디, 발전 스터디 등 공공 기관별로 모임을 만들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선 “또 다른 스펙이 생겼다”는 불만도 나온다. 김수현(26)씨는 “예전엔 여러 공공 기관에 지원할 수 있었는데 이젠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아예 지원할 수 없는 곳도 있어 취업 준비생 입장에선 지원 기회가 줄어드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동 전문가들은 “채용방식을 직무 중심으로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 교육을 먼저 직무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며 “직무 중심으로 교육받지 않은 취업 준비생입장에선 갑작스러운 변화가 또 다른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미 상당수 민간 기업 사이에선 직무 능력 중심의 다양한 채용 방식이 퍼져 있어 큰 충격은 없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박종길 직업능력정책국장은 “새 채용 방식이 새로운 스펙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며 “학점을 보더라도 직무와 관련 있는 과목의 학점을 중점적으로 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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