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투자 베테랑 데이비드 다비
생활비 6~12개월치는 현금으로
“美 주식 고평가··· 韓·日로 분산”
생활비 6~12개월치는 현금으로
“美 주식 고평가··· 韓·日로 분산”
“주가가 높았을 때 일부라도 팔 걸.”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하지 말 걸.”
“현금을 더 많이 남겨둘 걸.”
미국 은퇴자들이 자주 털어놓는 투자 후회들이다.
30년 동안 미국의 고액 자산가들의 자산을 관리해 온 투자 베테랑인 데이비드 다비(David Darby)는 은퇴자들의 후회가 자산 규모보다는 잘못된 의사결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은퇴 후에는 현역 시절과 전혀 다른 자산관리 전략이 필요한데도 많은 사람이 옛 투자 습관을 버리지 못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에서 20년 넘게 일했던 그는 현재 미국 자산 관리 플랫폼 기업 파더(Farther)의 투자전략 총괄을 맡고 있다. 조선일보 왕개미연구소가 이달 초 이메일 인터뷰로 그에게 은퇴 전후 투자자들이 유념해야 할 자산 관리 원칙을 물었다.
◇“노후엔 현금이 방패··· 생활비 1년치 마련”
−은퇴 전후 자산 관리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은퇴 전 자산 관리와 은퇴 후 자산 관리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직장에 다닐 때는 월급이 꾸준히 들어오니까 투자 계좌에 돈을 넣지만, 은퇴 후에는 투자 계좌에서 돈을 꺼내 생활비로 써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이 차이를 간과한다.
특히 주식시장이 급락했을 때가 문제다. 현금이 충분하지 않으면 주가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식을 팔아야 한다. 은퇴자에게는 시장 하락기를 버틸 수 있는 현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고객들에게 최소 6~12개월 치 생활비를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하라고 권한다. 가까운 시일 내 큰 지출 계획이 있다면 그보다 더 많은 현금을 확보해 두는 것이 좋다.”
−은퇴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소비 관련 실수는?
“내가 본 은퇴자들의 흔한 실수 중 하나는 과도한 지출이다. 은퇴 후에는 소득이 제한되기 때문에 투자 수익률만큼이나 지출 관리가 중요하다.
한번 불어난 씀씀이는 쉽게 줄어들지 않는데, 직장을 다닐 때 몸에 밴 소비 습관은 바꾸기 어렵다. 은퇴하면 생활비가 적게 들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제 현실은 다를 수 있다. 여행이나 취미 활동에 돈을 쓰고,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 부담도 커지므로 예상보다 지출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은퇴 직후 퇴직금 등 모아둔 자산만 믿고 소비를 늘리는 것은 위험하다. 실제로 은퇴 초반에 돈을 많이 쓰다가 몇 년 뒤 뒤늦게 허리띠를 졸라매며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많이 봤다. 은퇴 초기에 잘못된 소비 습관을 들이면 나중에 바로잡기가 어렵다.”
◇“실탄 마련해야··· 급락 때 좋은 자산 사라”
−지금 왜 현금을 늘려야 하는가.
“은퇴 후에는 일반적으로 투자 자산에서 돈을 인출해 생활비로 써야 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공격적인 자산 배분은 적절하지 않다. 더구나 지금은 저평가됐다고 볼 만한 자산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때는 실탄을 쥐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 자산 가격이 왜곡되면서 시장이 크게 흔들릴 때 좋은 자산을 빠르게 추가 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한국에서 AI 관련 주식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레버리지 ETF나 마진을 이용한 투자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드러났다. 레버리지는 상승장에서는 수익을 키우지만 하락장에서는 재앙이 될 수 있다. 레버리지를 사용하면 투자 결과가 내 손을 떠나게 된다. 다른 레버리지 투자자들이 강제 청산에 몰리면 시장의 매도 압력이 커지고, 그 여파가 다른 투자자에게까지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은퇴 전후 투자자일수록 수익률보다 생존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미국 은퇴자들에게 어떤 자산 배분을 권하나.
“10년 넘게 증시가 강세를 이어오면서 미국 은퇴자들 사이에서는 ‘자국 시장 편향’이 강해지고 있다. 은퇴자들 역시 주식 비율을 과도하게 높게 유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국 주식 시장은 훌륭하지만 현재는 고평가된 측면이 있다. 그래서 고객들에게 미국 주식 일부를 차익 실현해 현금을 확보하거나 채권이나 해외 주식, 대체 투자 등으로 분산할 것을 권하고 있다.”
◇“美 주식 편중 줄이고 한국·일본으로 분산”
−향후 5년간 매력적으로 보는 자산군은?
“이 질문에 답하려면, 5년 후 조선일보 1면 헤드라인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웃음). 그만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이는 몇 가지 자산이 있긴 하다.
우선 채권에서는 미국 TIPS(물가연동국채)의 매력을 높게 보고 있다. TIPS는 물가 상승률에 따라 원금과 이자가 조정되는 미국 국채다. 현재 10년 만기 TIPS는 물가 상승률에 연 2.5% 안팎을 더한 수익률을 제공하고 있는데, 역사적으로도 꽤 매력적인 수준이라고 본다.
주식에서는 기업 지배 구조 개혁이라는 순풍을 받고 있는 일본과 한국 비중을 늘리고 있다. 특히 한국 방산주에 주목하고 있다. 신냉전으로 전례 없는 글로벌 방산 수요가 급증했지만, 산업 역량을 보유한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고, 한국이 그중 한 곳이다. 한국 방산주가 저평가됐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구조적인 수요가 뒷받침되고 있는 데 비해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이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한국 시장 투자는 어떻게 하고 있나?
“투자자들은 최근 몇 년간 일본에서 기업 지배 구조 개혁이 어떻게 작동했고, 주가 수익률이 어떻게 개선됐는지 지켜봤다. 한국도 비슷한 방향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상법 개정, 배당소득 분리과세, 외환시장 제도 개선 등 자본시장 친화적 정책은 한국 증시 재평가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인 투자자들이 직접 투자하기 쉽지 않은 시장이었지만, 최근 들어 접근성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 시장에 투자하는 뱅가드 ETF(티커 VEA)를 활용한다. 한국 대표 기업에 투자하는 블랙록 ETF(EWY)와 프랭클린템플턴 ETF(FLKR)도 투자 대상이다. 한화자산운용이 미국에 상장한 테마형 ETF인 한국 방산 ETF(KDEF)와 한국 제조업 ETF(KMCA)에도 투자 중이다.
다만 한국 증시의 가장 큰 리스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이 두 종목이 조정을 받으면 한국 증시 전체가 흔들리면서, 그 안에서 매력적인 기업이나 투자 테마를 골라내기가 어려워진다.”
◇“성공한 투자자는 감정을 분리한다”
−현장에서 만난 성공한 투자자들의 공통점은?
“성공한 투자자들은 감정을 투자 결정에서 분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른 투자자들이 공포에 빠질 때 오히려 매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 워런 버핏이 성공한 이유도 같은 원리인데, 시장이 흔들릴 때 주식을 팔지 않으려면 현금과 채권 비율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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