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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정도전, 권율, 허균, 궁예··· 그의 붓끝에서 되살아났다

이옥진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6-07-17 15:54

정부표준영정 최다 제작한
전통 초상화가 권오창 화백


▲ 전통 초상화가 권오창 화백은 2시간여의 인터뷰 동안고증이라는 말을 거듭했다. 지난 50 동안 선현의 흔적이 있는 곳이라면 박물관과 유적지, 학술 발표회를 가리지 않고 전국을 누볐다. “실체에 걸음이라도 가까이 가는 일이지요.” 화백 뒤로 보이는 작품은 윗줄 왼쪽부터 단종·서희·허균·정희계·정효상의 표준영정이다. 아래는 조선 건국 당시 태조의 모습을 그린 어진이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반듯한 눈매와 곧은 콧날, 다부지게 다문 입술. 익선관을 쓰고 홍색 곤룡포를 입은 조선 6 임금 단종의 얼굴은 앳되지만 유약하지 않다. 어진(御眞) 단종에게서는 비운의 그림자가 아닌, 어린 군주가 지녔던 정연한 기품이 보인다.

 

전통 초상화가 권오창(78) 생전의 어진이 전해지지 않는 단종의 얼굴을 붓으로 되살려냈다. 단종 어진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 6개월. 조선왕조실록과 행장 사료를 살피고, 단종의 고조부인 태조의 어진과 숙부인 세조의 어진 초본을 분석했다. 전주 이씨 후손들의 얼굴에서는 왕실 혈통의 골상을 추적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아니라, 공백을 고증으로 메워가는 시간이었다. 화백은단종을 화폭 위에 세우는 일은 사료를 통해 실체에 가까이 다가가는 복원에 가까웠다 했다. 그의 단종 어진은 2021 문화체육관광부 영정·동상심의위원회 전문가들의 만장일치로 정부표준영정 100호로 지정됐다.

 

정부표준영정은 선현의 초상이 난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지정하는 공적 초상이다. 현재 104() 지정돼 있는데, 화백은 17위를 그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그린 화가다. 단종을 비롯해 설총, 김부식, 정도전, 맹사성, 이사부, 허균, 서희, 궁예, 권율 등이 그의 붓끝에서 모습을 되찾았다.

 

그는 반세기 동안 역사 인물의 모습을 되살리는 일에 매진했다. 단순히 얼굴을 재현하는 그치지 않고, 복식에도 각별한 공을 들였다. 옷은 인물의 신분과 시대상을 드러내는 하나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화백은 흩어진 유물과 기록 속에 남은 , 장신구 등을 사람의 온전한 모습으로 되살리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렇게 쌓인 복식인물화 168점을 지난해 국립대구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은 지난 7일부터 화백 기증 작품을 중심으로 특별전을 열고 있다.

 

14 서울 종로의 화실에서 만난 ()화백은 하나의 사라진 얼굴을 되살리고 있었다. 한쪽 벽에 임진왜란 경북 영천에서 활약한 의병장 정대임의 표준영정 밑그림이 걸려 있었다. 지우고 다시 긋기를 거듭한 연필 자국이 눈에 띄었다. 그는 선을 긋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의뢰를 받고 달은 연필을 잡지 않습니다. 사료를 찾고, 공부하고, 문중 사람들을 만난 뒤에야 초안을 그리기 시작하지요.”

 

사료와 후손의 얼굴에서 단서를 찾다

-스케치를 시작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리네요.

 

그분을 알아야 그릴 있지 않겠습니까. 우선 묘소를 찾아 예의를 갖추고, 관련 유적을 답사하고, 연구 자료들을 샅샅이 뒤져 공부합니다. 문인인지 무인인지, 실용에 밝은 인물인지 사변적 학문에 천착한 인물인지, 공과(功過)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사람을 사출(寫出), 화폭 위로 불러낼 있으니까요. 사학자·복식학자 전문가들의 자문을 많이 받습니다. 선현과 마음으로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작업을 시작합니다.”

 

-후손들의 골상(骨相) 살핀다고요.

 

후손들은 조상의 얼굴을 가장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니, 그분들과 교감하는 자체가 중요한 일입니다. 동시에 유전적으로 이어진 골상을 확인합니다. 직접 만나기 어려우면 사진을 수십, 수백 장씩 받아 공통된 특징을 찾습니다. 이마가 넓은지, 광대가 도드라지는지, 턱선은 어떤지 살피는 거죠. 집안에 이어져 얼굴의 흔적을 좇는 과정입니다. (2024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권율 장군은 조상이기도 한데, 집안(안동 권씨) 내려오는 얼굴의 특징은 두둑하면서도 각진 데가 없다는 점이지요.”

 

-완성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빠르면 1. 오래 걸리면 3년도 훌쩍 넘깁니다. (2024 지정된) 궁예는 자료가 워낙 희귀하고 연구마저 부족해 고증 과정이 무척 고됐지요. 전문가들조차 의견을 모으기 어려울 만큼 난해한 작업이었기에, 의뢰부터 표준영정 지정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권오창 화백 화실에 걸려 있는 그의 작품들. 윗줄은 그가 그린 정부표준영정들이고, 아랫줄은 그가 그린 태조의 어진이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작업 방식이 궁금합니다.

 

먼저 구도를 정합니다. 좌안(左顔)으로 할지, 우안(右顔)으로 할지, 정면상으로 할지 판단하지요. 뒤엔 찾아낸 기록들을 바탕으로 추사(追寫) 얼굴을 종이에 옮깁니다. 의복은 직접 제작해 인물의 체구와 분위기가 비슷한 모델에게 입히고, 이를 사진 찍어 참고합니다. 밑그림을 그리면서도 고증 작업은 계속되는데, 끊임없이 고치고 다듬지요. 단종은 밑그림만 수십 장을 그렸습니다. 초안이 완성되면 1 심의를 받는데, 심의 위원들이 지적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고증해 반영합니다. 과정을 통과하면 비단에 그림을 옮겨 먹과 석채, 토채 전통 안료로 채색을 시작합니다.”

 

-‘결국 상상으로 그리는 아니냐 시선도 있습니다.

 

“‘작가의 상상화일 실물이 아닌데, 표준영정이 필요한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한계는 있습니다. 실제 얼굴과 완전히 같다고 수는 없지요. 과거의 표준영정 중에는 지금 보면 고증이 맞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시대의 연구가 거기까지였기 때문입니다. 50, 100 유물이나 연구가 나오면 지금의 영정도 다시 검토될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당대에 가능한 최고의 고증을 거쳐 역사적 사실에 보다 가까이 가려는 노력입니다. 추정의 영역이 남아 있을수록, 치의 잘못 없이, 작은 오류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흐트러짐 없이 제대로 해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일이지요.”

 

고증의 뼈대 위에 정신을 세우다

국립민속박물관장과 한국미술사학회장을 지낸 맹인재 선생은 화백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화백은 역사상 불후의 명성을 남긴 여러 인물의 초상을 제작하는 다양한 인물상을 그려내는 일에 전념해 왔으며, 이러한 역사적 영정 제작은 이제 그의 인생 전부인 느껴지기도 한다.”

 

-표준영정을 그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고증이 가장 어렵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형식만 맞는다고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 초상화에는전신사조(傳神寫照)’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모습을 닮게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행적과 사상, 정신까지 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재 작업 중인) 정대임 의병장이 평범한 선비처럼 보여서는 되지요. 나라가 위태로울 사람들을 이끌고 나선 애국심과 구국의 정신이 눈빛과 표정, 자세에 함께 담겨야 합니다. 고증이 뼈대라면, 전신사조는 인물의 정신을 세우는 일입니다.”

 

-가장 아끼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단종 어진입니다. 표준영정으로 그리는 선현들은 대개 나이가 있고, 공적과 행적도 비교적 많이 남아 있어요. 그런데 단종은 달랐습니다. 어린 왕의 얼굴을 그리는 일은 제게도 처음이어서, 쉽지 않았습니다. 2019년에 시작해 2021년까지 이어진 작업인데, 개인적으로는 작가로서 가장 힘이 좋았던 시기에 힘을 다해 그린 작품입니다.”



 2021 정부표준영정 100호로 공식 지정된 조선 6 단종의 어진. 가로 1.2m, 세로 2m 크기로, 전통 장황 기법의 족자 형태로 제작됐다. 원본은 영월군 단종역사관에 봉안돼 있다. /강원도 영월군
 


-단종의 얼굴에서 당당함이 느껴지더군요.

 

우리가 기억하는 단종은 대개 생의 끝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모습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애사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어리지만 영특하고 왕다운 기품이 느껴지는 모습이 맞겠다고 봤습니다. 실제 실록에도덕이 온화하고 천자가 총명하다’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게 총명하다등의 표현이 남아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슬픈 단종이 아닌, 단종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했지요.”

 

-단종의 얼굴을 찾는 왕위를 빼앗은 숙부 세조가 단서가 됐다는 점이 묘합니다.

 

“2018 세조 어진 초본이 공개됐을 놀랐습니다. 우리가 떠올리는 세조의 이미지와 달리, 온순하고 둥근 인상이었습니다. 단종의 얼굴도 저런 계통일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조와 세조의 얼굴에서 왕실 혈통의 공통점이 보였고, 단종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역사적 인물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글과 문헌으로도 인물을 기릴 있지만, () 있으면 훨씬 직접적으로 느낄 있습니다. 옛날에도 임금의 얼굴을 직접 보고 그리는 도사(圖寫), 기존 초상을 베끼는 모사(模寫), 기록과 행적을 바탕으로 사후에 그리는 추사가 있었습니다. 영정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인물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매개체입니다. 영정의 밑그림만 보고도 후손들이 놀라며 넙죽 절을 하는 경우를 더러 봅니다. 위패와 문헌으로만 모시던 선조의 얼굴을 처음 마주하는 일이니까요. 얼굴이 있어야 추모와 선양도 힘을 얻고, 후대의 기억도 구체적인 모습을 얻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제대로 고증하고 경험을 쌓은 사람이 책임 있게 해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흩어진 옛옷과 장신구를 화폭으로

화백을 표준영정의 길로 이끈 인물은 우리나라 복식사 연구의 기틀을 마련한 () 석주선 박사였다. 시작은 1986 아시안게임이었다. 당시조선왕조 500 복식전 열렸는데, 화백은 조선 시대 왕과 왕비, 상궁 등의 옷을 입은 마네킹에 얼굴을 그려 넣는 일을 맡았다. ‘왕의 옷을 입었으니 얼굴도 왕답게 보여야 한다 생각으로 얼굴을 그리다 보니, 자연스레 궁중 복식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후 그는 구한말 흑백 사진 전통 복식을 되살리는 작업에 매달렸다. 1990 서울 롯데미술관에서조선조 말기 복식과 초상전이란 전시를 그는 도록을 들고 박사를 찾아갔다. 대뜸 그의 손을 잡은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복식계에 그림으로 일이 많은데, 돈이 된다고 아무도 하려 하지 않더군요. 선생이 그걸 한다니 너무 반갑습니다.” 박사는 화백을 표준영정 작가로 추천했고, 화백은 설총(1992 지정) 영정을 그리게 됐다.

 

-복식에 대한 관심이 먼저였군요.

 

사람의 모습에는 반드시 옷이 있지 않습니까. 옷을 보면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신분이 보입니다. 초상을 그리면서 복식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구한말 흑백사진 전국 박물관과 수많은 역사책에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하나둘 모아 들여다보다 보니 복식 재현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특히 어린이 복식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박물관을 다니며 복식 유물을 보다 보니 어린이 옷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무 예뻤어요. 그런데 옷과 신발, 머리 장식, 장신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원삼(圓衫·부녀 예복) 하나 남아 있다고 해서 그걸 입던 아이의 모습이 온전히 보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머리는 어떻게 했는지, 신발은 무엇을 신었는지, 장식은 어떻게 갖췄는지까지 보여줘야 합니다. 흩어진 유물을 사람의 온전한 모습으로 맞춰 보여주는 데는 그림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구박물관에서 전시 중인백진복도’(2021) 어린이 복식인물화를 화면에 모아 완성한 가로 4m짜리 병풍 대작. 69명의 아이들이 100 가지 옷과 장신구를 착용하고, 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으로 등장한다.



 권오창 화백이 2021 완성한 4m 길이의 병풍 대작백진복도(百珍服圖)’. 왕실 복식을 차려입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69명의 아이가 저마다 다른 옷차림과 자세, 표정으로 화면에 어우러져 있다. /국립대구박물관
 


-아이들을 그릴 특별한 즐거움이 있으십니까.

 

표준영정이 책임감으로 하는 일이라면, 어린이 복식화는 그리면서 저도 신이 나는 작업입니다. 여러 박물관에 흩어져 있는 어린이 옷과 장신구를 때마다, 옷을 입고 신을 신고 장식을 아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했습니다. 땅의 어머니들은 아이의 앞날이 밝게 열리기를 바라며 색을 고르고, ‘수복강녕(壽福康寧)’ ‘인의예지(仁義禮智)’ 같은 글자와 무늬를 수놓았습니다.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개성이 있지요. 그런 우리 옷을 입은 어린이의 밝고 귀여운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명절 고궁에 찾아가 한복 입은 아이들을 보며 자세와 표정을 공부하곤 합니다.”

 

-대구박물관에 복식인물화 168점을 기증하셨습니다.

 

작년에 집에 보관하던 그림들을 오랜만에 꺼내 보니 너무 생생했습니다. 공적인 장소에 후학들이 보고 연구할 있게 하는 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구를 택한 것은 섬유의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복식문화관도 들어선다고 들었습니다. 그림들이 유물과 기록만으로는 전하지 못하는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관객들에게 전해준다면 바랄 없겠습니다.”

 

한길 묵묵히 걸은 화가로 기억되길

1948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화백은 때까지 산골 마을에 살다 시내 학교로 전학했다. 미술 시간, 선생님은 그의 그림을 보고전학생이 그림에 재주가 있다 칭찬했다. 그림은 좋았지만 미술 시간은 싫었다. 준비물을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아홉에 상경했지만 미술대학 문턱을 밟지도, 이름난 스승을 모시지도 못했다. 잡지에 실린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그려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초상화가의 길로 들어선 결정적 계기였다. 종로 새문안교회 허름한 구석방에서 독학으로 인물화를 공부했다. 미군 상대 초상화가 성행하던 용산에 어깨너머로 화법을 익혔다. 서민들의 제사용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갔다. 넉넉지 않은 살림은 아내 박순희(73)씨가 공부방을 운영하며 꾸려나갔다.

 

-타고난 재주가 있었네요.

 

돌이켜보면 선천적인 재질이 있었던 같습니다. 서양화나 동양화를 제대로 배울 형편이 됐는데, 사람 얼굴을 그려주면 다들 좋아했습니다. 밥이나 술을 사주는 이들도 있었지요. 당시 제게 초상화는 생활 수단이자, 하고 싶은 그림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리다 보니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가난한 화가로 사는 고됐을 같습니다.

 

힘들었지요. 그래도 좋아서 했습니다. 배고파도 그림을 그리면 잊어버렸어요. 가족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도 제가 해온 일이 공적인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당시에는 어려웠지만, 언젠간 하나의 족적으로 남고 사회에 기여할 있기를 바랐습니다.”




 


-미국에서 전시를 적도 있더군요.

 

“1998 미국 오하이오주에서인물화로 보는 조선시대의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현지 교육 재단이 한국 관련 행사를 준비하면서 연락해 왔습니다. 그림이 한국의 특징을 드러낸다고 같습니다. (작품) 30점을 가지고 갔는데, 항공료와 체재비, 작품 보험료까지 지원해 줘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대우를 받아본 것이 처음이었으니까요. 이듬해 한미문화재단에서 하는 5 도시 순회 전시도 다녀왔지요. 동양에 이런 그림이 있다는 것을 놀라워하더군요.”

 

- 세월 한길을 걸어오셨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백의 시에천생아재필유용(天生我材必有用)’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하늘이 내게 재주를 주었다면 반드시 쓰일 데가 있다는 뜻이지요. 저는 그게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것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계발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오래 쌓아가야 자기만의 것이 되고, 세상에 필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붓을 쉬지 않는다. 앞으로 그려보고 싶은 선현이 있느냐고 묻자, “잘못된 영정을 바로잡고, 왕실의 여인들도 그려보고 싶다 답이 돌아왔다. “충무공 표준영정처럼 고증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표준영정에 여성 선현은 많지 않은데,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단종비 정순왕후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당신을 어떻게 기억해주길 바라십니까.

 

전통 초상화와 복식화 한길을 묵묵히 걸어온 화가로 기억된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라진 얼굴을 되살리고, 흩어진 복식의 기억을 그림으로 남기는 일이 제가 평생 붙들어온 일이었습니다. 그림이 훗날 옛사람의 얼굴과 , 시대의 삶을 이해하는 작은 길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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