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반전 45분이 지나 경기장 시계는 멈췄고, 전광판은 여전히 0-0이었다.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스타디움에서 열린 북중미 월드컵 32강전 첫 경기. 캐나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90분 넘도록 일진일퇴를 거듭했지만, 기다리던 골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후반 추가 시간, 캐나다 공격수 제이콥 샤펠버그가 오른쪽 측면을 파고들어 크로스를 올렸다. 남아공 수비진이 황급히 걷어낸 공이 캐나다 스테픈 유스타키오 앞으로 흘렀다. 유스타키오는 침착하게 가슴으로 공을 받아낸 뒤 오른발로 낮고 빠르게 슈팅했다. 이 공은 남아공 수비수들 사이를 절묘하게 뚫고서 그대로 골대 왼쪽 구석에 꽂혔다. 캐나다를 사상 첫 월드컵 16강으로 이끈 ‘극장골’이었다.
캐나다에 월드컵 토너먼트 첫 승을 안긴 유스타키오는 포르투갈 이중 국적자다. 포르투갈 출신 부모가 캐나다 온타리오주로 이주해 3년 뒤 그를 낳았다. 이들 가족은 유스타키오가 일곱 살이 되던 해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갔다. 축구에 재능을 보인 유스타키오는 포르투갈 U-21 대표에 뽑히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2019년 “우리 가족을 키워준 캐나다에 보답해야 할 때”라며 캐나다 국가대표를 선택했다. 그는 7년 만에 캐나다에 값진 승리를 안기며 약속을 지켰다.
유스타키오는 한국 대표팀 주장 손흥민의 LA FC 팀 동료이기도 하다. FC포르투에서 뛰다가 임대로 합류했다. 이날 경기에서 결승골의 기점이 된 크로스를 올린 샤펠버그도 마찬가지로 LA FC 소속이다. 홈구장은 아니지만, 연고지인 LA에서 월드컵 득점을 합작한 것이다.
미국·멕시코와 이번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 캐나다에서 축구는 인기 스포츠가 아니다. 캐나다의 국기(國技)는 누가 뭐래도 아이스하키이고, 축구는 라크로스보다도 팬이 적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날 LA 스타디움엔 빨간색 대표팀 유니폼을 맞춰 입은 캐나다 축구 팬들이 6만석을 가득 메우며 열띤 응원을 보냈다. 캐나다 골키퍼 막심 크레포는 “2018년 북중미 네이션스리그 예선까지만 해도 관중석에 다섯 명밖에 없었던 게 기억난다”고 했다.
제시 마치 캐나다 감독은 한국 팬들에게도 익숙한 얼굴이다. 마치 감독은 2024년 캐나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 전 대한축구협회에서 감독 영입 제안을 받았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마치가 강한 압박과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한국 팬들의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세금과 연봉 문제로 협상이 늘어진 끝에 최종 결렬됐다. 이후 축구협회의 선택이 바로 홍명보 감독이었다.
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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