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유해발굴 작전 이끈
이상철 예비역 육군 중장
이상철 예비역 육군 중장

전쟁기념관 6·25전쟁실에서 만난 이상철 장군은 34년 군 생활 동안 가장 보람된 임무로 DMZ 유해 발굴 작전을 이끈 5사단장 시절을 꼽았다.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2018년 개시해 2021년 작전 종료까지 유해 3092구를 찾아냈는데, 이 중 국군 용사 10명이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쌍방은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시범적 남북 공동 유해 발굴을 진행하기로 하였다.”(9·19 남북 군사 합의 2조 3항)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 관계가 롤러코스터를 타던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은 2018년 4월 27일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그해 9월 평양에서 우리 측 국방장관과 북측 인민무력상이 서명한 군사 합의서를 채택했다. 그렇게 휴전 65년 만에 처음으로 DMZ에 묻혀 있던 용사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갈 길이 열렸다.
6·25전쟁 중 전국적 범위의 전쟁은 1950년 6월부터 1951년 3월까지 10개월 정도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까지 2년 남짓한 기간은 38선 인근에 형성된 전선에서 봉우리 몇 곳을 더 얻느냐 잃느냐를 두고 길고 괴로운 공방이 이어졌다. 그래서 휴전 이후 봉인된 이 지역에 6·25전쟁 희생자 상당수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첫 삽을 뜬 이상철(58) 예비역 육군 중장을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앞두고 전쟁기념관에서 만났다. 그는 휴전선 철원·연천 지역 철책 23㎞를 책임지는 5사단장을 지내면서 DMZ 유해 발굴 TF장을 맡았다.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2018년 개시해 2021년 작전 종료까지 유해 3092구를 찾아냈는데, ‘완전 유해’ 형태로 발굴한 전사자는 424구였다. 이 중 용사 10명이 우리 국군으로 확인돼 유족에게 인계됐다. 이상철 장군은 “우리가 찾은 것은 그저 뼛조각 하나가 아니었다”며 “그곳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웠다”고 말했다.

화살머리고지 발굴 현장에서 한 병사가 수습한 뼛조각을 맞추고 있다. /이상철 장군 제공
◇“19-17번 확인됐습니다!”
“사단장님, 찾았습니다! 19-17번 유해,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평소 답답하다 싶을 만큼 성격이 차분한 전속 부관이 속사포 같은 보고를 해왔다. 이 장군은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관리 번호 19-17번. 2019년에 17번째 발굴한 유해라는 뜻이다. 한 달 전 기초 발굴팀이 뼛조각 일부를 발견했고, 파헤치다 보니 형태가 비교적 완전한 유해라 정밀 발굴팀이 투입됐다. 붓을 이용해 세심한 발굴 작업을 이어가던 참이었다. 신원이 확인됐다는 것은 국군의 유해이고 기다리는 유족도 찾았다는 뜻이다.
-발굴 당시 상황은 어땠습니까.
“한 달가량 발굴 작업을 거쳐 두개골, 팔다리, 가슴뼈까지 어느 정도 사람 형태를 갖춘 유해를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민간인도 조금만 참여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뼛조각 양태만 봐도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 구별할 수 있어요. 19-17번은 동양인이었습니다. 국군이거나 인민군 또는 중공군.”
-백골로 그걸 확인할 수 있다고요?
“동양인의 뼈는 쉽게 부스러지는데, 서양인의 뼈는 60년 넘게 지나도 단단합니다. 아마 영양 상태 등의 차이겠지요. 그분은 주위에 신분을 추정할 만한 피복류나 계급장, 무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유족을 찾았나요.
“정부는 6·25전쟁 전사자·실종자 유족의 DNA 시료(10만여 명)를 채취해 데이터베이스에 관리해 왔어요. 19-17번도 아들이 2008년 등록해 둔 DNA 대조로 확인됐습니다. 육군 제2사단 32연대 이등중사 남궁선.”
남궁선 중사의 유해는 2019년 4월 12일 화살머리고지 무너진 대피호에서 발견됐다. 땅속에 묻힌 지 66년 만에 대피호를 빠져나온 셈이다. 1952년 4월 30일 입대할 당시 그는 슬하에 1남 1녀를 둔 스물세 살 젊은 아빠였다. “다녀오세요.” 전장으로 나가는 그에게 했을 아내의 인사. 이 말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기록이 남아 있나요.
“1953년 7월 9일 전사하셨습니다. 정전협정 18일 전이죠. 보름만 무사했더라면, 아니 이틀만 더 버텼어도 아들을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화살머리고지 전투는 7월 11일에 끝났거든요.”
-그즈음이면 휴전이 코앞이라는 걸 다 알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왜 막판까지 무모한 전투를 했느냐고요? 답은 자명합니다. 질문 그대로예요. 정전이 코앞이니까요. ‘동작 그만!’ 하는 순간 국경이 정해지니 최후 순간까지 한 뼘이라도 영토를 더 차지하려고 몸부림을 친 거죠.”
남궁선씨가 군대에 갈 때 세 살 꼬마였던 아들 남궁왕우씨는 70세가 돼 있었다. 칠순이 돼서야 마침내 아버지를 어루만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습된 유해 중 국군으로 추정되거나 확신하는 경우는 관 위에 태극기를 씌웠다. /이상철 장군 제공
◇시신 위로 시신이 쌓였다
남북이 최초로 ‘공동’ 유해 발굴 작전을 펼치기로 한 곳은 강원도 철원의 화살머리고지. 이 지역은 38선을 따라 총부리를 마주하고 있는 남북의 부대명이 ‘5사단’으로 유일하게 같다. 화살머리고지 최대 격전은 1952년 10월의 3차 전투, 정전협정 직전의 4차 전투다. 프랑스군과 중공군의 혈투였던 3차 전투에서 프랑스군 51명, 적군 1518명이 전사했다. 국군 2사단이 전면에 나선 4차 전투 때는 아군 212명, 적군 1418명이 전사했다.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주의, 각자 진영을 지키느라 한 시대의 거대한 무덤으로 남은 고지다.
-뼈로 동양인과 서양인을 구별하기 수월한 이유가 있군요.
“고지전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참호를 많이 만드는데, 화살머리고지는 ‘참호의 전시장’이라 할 정도예요. 참호마다 유해가 수두룩했습니다. 아군의 시신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그 위로 적군의 시신이 쌓이고요.”
-화살머리고지는 어떤 곳입니까.
“희생자가 많이 나온 곳이라고 하면 산세가 험하고 웅장한 고지일 것 같죠? 해발 281m, 야트막한 언덕이에요.”
-어떤 전략적 가치가 있는 곳이길래.
“정상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면 땅끝이 안 보입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지평선이 펼쳐진 곡창 지대가 별로 없어요. 만약 그곳을 뺏겼다면 넓은 철원 평야를 모두 잃었을 겁니다. ‘김일성이 사흘간 곡기를 끊고 씩씩거렸다’는 얘기가 이해가 되죠.”

기초발굴팀이 호미와 야전삽으로 초벌 작업을 수행해 뼛조각을 발견하면, 정밀발굴팀이 투입돼 붓으로 세심한 발굴 작업을 이어간다. /이상철 장군 제공
화살머리고지 동쪽에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배경이 된 ‘백마고지’가 있다. 열흘 동안 주인이 12번이나 바뀌었다는 치열한 전장. 지금은 숲이 울창하지만 전쟁 중엔 포탄 30만발이 비처럼 쏟아졌다. 수목이 모두 타버려 하늘에서 보면 흰 말처럼 보였다고 해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장군은 “만약 백마고지를 뺏겼다면 철원 평야 전체(약 650㎢)를 북한이 가져갔을 것”이라며 “백마고지에는 화살머리고지의 10배가 넘는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화살머리고지에는 공식적인 전투 기록만으로 최소 수백 명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3000구 넘는 유해가 나왔다. 기록에 없는 죽음 또한 셀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죽음이라면.
“동양인의 뼈는 분명한데, 강도가 유난히 약하고 양쪽 끝이 부스러져 짧은 겁니다. 감식 요원은 ‘성장판이 닫히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어요. 10대 소년·소녀들의 유해였습니다.”
-포탄이 날아드는 고지에 어린애들이요?
“18세 미만은 징집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병적(兵籍) 기록이 없는 데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위반이죠. 최전선에서 총을 쏘기도 했고, 탄약통을 나르거나 망을 보는 일을 한 아이들이 있었다는 게 2000년대에 들어서야 확인됐습니다.”
-아이들은 유족을 찾기도 어렵겠네요.
“군인은 전투 상보나 사망 확인서 등을 통해 흔적이라도 남는데, 아이들은 ‘기록에 없는 죽음’이죠. 그래서 전쟁이 나면 가장 약한 자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는다고 하는 겁니다.”

DMZ에서 이뤄진 유해 발굴은 날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병사들의 찰과상 하나 없이 ‘완전 작전’을 이뤄냈다. “묻혀 있는 선배 용사들, 발굴 작업에 함께하는 젊은 병사들이 비로소 전우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피아도, 국적도, 인종도 없는 곳
9·19 남북 군사 합의 직후 우리 측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곧장 지뢰 제거 작업에 들어갔고, 한 달여 만에 군사분계선까지 도로를 잇는 공사가 시작됐다. 북한도 처음엔 성의를 보이는 것 같았다. 양쪽이 함께 북으로 남으로 도로를 놓아 DMZ 안에 남북 3㎞를 잇는 도로가 생겼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북한은 작업이 진행되는 3년간 화살머리고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단독’ DMZ 유해 발굴 작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발굴한 모든 유해를 수습했나요.
“나중에 적군의 유해로 밝혀진다 해도 정성을 다해 수습하는 게 제1 원칙이었습니다. 유해의 약 70%는 중공군이었습니다.”
-발굴이 끝나면 어떻게 합니까.
“모든 유해 조각을 일일이 한지로 감싸 차곡차곡 오동나무 관에 넣었습니다. 조각을 채우면 관보(관의 뚜껑)를 덮고, 그 위에 붉은 천에 흰 글씨를 쓴 명정에 ‘6·25 전사자의 관’이라는 글귀를 적었습니다.”
-적군의 유해일 수도 있는데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닙니다. 추구하는 가치는 달랐지만 ‘군인’이라는 사실에서, 전선(戰線)에서 일종의 전우애로 뭉쳤다는 면에서는 서로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아군이 분명한 경우엔 사단장인 그가 손수 주관해 약식 제례를 치렀다. 제례를 마치면 복장을 단정히 갖춘 병사가 관을 목에 걸고 차량으로 이동했다. “유해가 발견된 자리에는 이름이 적히지 않은 작은 비석을 세웠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인간으로, 전우로, 핏줄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신원이 확인된 군인은 모두 열 분이다. 박재권 이등중사, 남궁선 이등중사, 김기봉 이등중사, 정영진 하사, 김진구 하사, 서영석 이등중사, 송해경 이등중사, 배석례 이등중사, 임병호 일등중사, 오문교 이등중사.
-70년 만의 귀가네요.
“산야에서 흙을 파헤쳐 유해를 찾고, 국군을 가려내고, 거기서 다시 가족을 찾는 건 백사장에서 바늘 하나 찾는 일과 같았죠. 유족은 고인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이미 70년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이고요.”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습니까.
“그 힘든 일에 자원한 장병 중엔 이중 국적 등을 이유로 꼭 징집에 응하지 않아도 되는 청년들이 있었어요. 우리가 DMZ에서 가장 많이 주고받은 말은 ‘감사합니다’였습니다. 세대를 넘나드는 고마움이 하나로 포개졌어요. 묻혀 있는 선배 용사들, 발굴 작업에 함께하는 젊은 병사들과 제가 비로소 전우가 됐구나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요즘 젊은 병사들은 어떤가요.
“아침마다 발굴 작전에 투입되기 전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고 씩씩하게 외쳤어요. 평소에는 자유분방해 보여도 일단 작전에 투입되면 자기 역할을 책임 있게 완수했습니다.”
2021년 6월 5일 화살머리고지에서는 그때까지 신원이 확인된 아홉 분의 유족을 모시고 추모 행사가 열렸다. 고(故) 송해경 이등중사의 아들이 아버지가 마지막 전투를 치른 지점이 어딘지, 방향이라도 알 수 있는지 물었다. 머리가 허연 칠순 아들과 며느리가 간단한 음식과 소주를 차려놓고 아버지가 묻혀 있던 방향으로 큰절을 올렸다.

아군의 유해가 분명한 경우에는 사단장인 이 장군이 직접 제례를 주관했다. 간소한 제사상에 술을 올리는 모습. /이상철 장군 제공
◇찰과상도 없던 ‘완전 작전’
유해 발굴은 날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작업이었다. 새벽 4시 수색대가 특이 동향을 점검하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된다(밤에 남겨두고 오는 병력도 있었다). 매일 500~600명이 버스·트럭 25~30대로 DMZ를 오갔다. 작전은 지뢰 제거로 시작됐다. 장전한 소총, 총알이 가득 든 탄통, 수류탄 수십 발이 발견되기도. DMZ 안에서 벌이는 작전이다 보니 모든 병력은 방탄복에 방탄 헬멧, 개인 화기와 장비 등 20㎏이나 되는 것을 이고지고 고지에 올랐다.
-해마다 연말에 ‘완전 작전 기념식’을 열었다고요.
“‘완전 작전’은 아군의 희생을 최소화하며 적에게 치명적 타격을 입힌 작전을 말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간에서, 모든 병과의 땀방울이 모여, 3년여간 안전사고 한 건도 없이 해냈습니다. 제가 가장 감사하는 점이에요.”
-화살머리고지 전투에 실제로 참여한 분도 만나셨나요.
“소대장을 하신 분이 살아 계시는데, ‘뼛조각 하나하나 소중하게 대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수족처럼 자신을 도운 병사가 지금도 꿈에 나타난다 하시면서요. 옆 분대에 전달하라고 쪽지를 적어 보냈는데, 그 병사가 참호 밖으로 나가는 순간 박격포탄에 맞고 몸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목격하셨대요.”
이 장군은 최근 우리 안보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했다. 목적지도 모르는 젊은 군인들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한 북한 김정은의 몰인간적 처사는 차치하고, 그 전쟁을 깊이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생산한, 유럽이 가진 모든 신형 전투 장비의 실험장이 됐잖아요. 북한은 2만명 가까운 인원이 드론이 투입된 현대전을 경험한 겁니다. 물론 많은 피해를 봤지만 그 실전 경험은 어마어마할 거예요. 북·러 관계가 동맹 수준으로 격상된 만큼 한미 동맹도 더 견고해져야 하고요.”
이 장군은 2023년 10월, 34년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DMZ 유해 발굴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고 군사안보지원사령관과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을 지냈다. 따지자면 문재인 정부 때 군인으로 가장 출세했다. 전역 이후 여야 모두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자신의 안보관을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국민의힘에 합류해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작년 말 계엄 사태 직후 탈당했다. 그는 “군인의 냉철함은 무작정 받아들이는 단순함에 있는 게 아니라 반복해 훈련한 질문 속에 있다”면서도 “우리가 공기처럼 누리는 평화는 군인의 수고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DMZ 땅속에 뒤엉킨 아군과 적군 수천 명의 유해를 보면서 든 생각이라면.
“군인은 자신이 가장 유용하게 쓰일 순간(전쟁)을 대비해야 합니다. 그런 순간이 오지 않도록 막는 것이 임무고요. 자신은 낯선 곳에 계속 내던져지면서 다른 이들의 익숙한 일상을 지켜줘야 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군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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