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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작가 "떠나보낸 엄마 느끼려 한국어 배워요"

정시행 기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8-09 16:48

[정시행 기자의 드라이브]
어머니 나라에서 1년 살기 하는
'H마트에서 울다' 작가 미셸 자우너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어떤 문장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설명할 필요 없는 압도적 감정에 사람들을 몰아넣는다. 문학이, 모든 예술이 꿈꾸는 경지다.

이 단순하고 강렬한 문장은 한국계 미국 가수 겸 작가 미셸 자우너(35)의 밀리언셀러 ‘H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의 첫 구절이다. 이 책은 한국인 어머니(고 이정미씨)를 췌장암으로 떠나보내기까지 6개월간 간병한 딸의 분투를 담은 사모곡(思母曲)이다. 엄마 손맛이 담긴 한국 음식에 대한 눈부신 찬가이자, 한 젊은이가 깊은 슬픔을 딛고 예술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성장기이기도 하다.

‘H마트에서 울다’는 2018년 미 최고 지성의 문예지 뉴요커에 동명의 단편 수필로 발표되자마자 미국 문단에 파란을 일으켰다. 2021년 정식 회고록으로 출간된 뒤엔 뉴욕타임스와 아마존 ‘올해의 책’으로 선정돼 60주 넘게 베스트셀러를 지켰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천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22년 자우너를 ‘세계의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올렸다. 미국 등에서 100만부 이상, 국내 번역본은 8만부 넘게 팔렸다.

자우너는 본업인 뮤지션으로도 대성했다. 그가 이끄는 인디록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가 낸 세 개의 앨범은 미 음악 전문지 롤링스톤과 빌보드 최고 앨범에 꼽혔고, 권위 있는 음악상인 그래미상 두 부문 후보에 올랐다.

미 유력 매체들의 인터뷰와 북 토크, 영화 제작, 공연, 협업 요청이 밀려들었다. 젊은 아시아계 여성의 날카로운 감수성, 장르를 넘나드는 지치지 않는 영감. 자우너는 21세기 뉴욕이 열광하는 문화의 총아였다.

그런 그는 올 초 돌연 화려한 무대 위 조명을 모두 껐다. 그리고 남편(피터 브래들리)과 함께 조용히 한국으로 들어와 서울 마포의 작은 빌라에 전세를 얻었다. 어머니 10주기를 맞아, 어머니의 나라에서 1년을 살아보기 위해서다. 자우너는 왜 스타덤에서 잠시 물러나고 싶었을까. 한여름 저녁 신촌의 어둑한 카페에서, 그리고 이태원의 칼국수 집에서 마주앉았다.

영원한 나의 모국어, 슬픈 한국어

-한국에서 뭘 하고 지내요?

“한국어 공부를 해요. 연세대 다니다 요즘은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서 매일 4시간씩 수업 들어요. 휴, 이 나이에 외국어를 배우려니 어렵네요. 제가 최고령이에요.”

-다른 수강생들은 미셸씨가 세계적인 작가인 걸 알아요?

“신경 안 쓰던데요(웃음). 다들 공부하고 시험 치느라 정신없어요.”

-어머니께 한국말을 배우지 못했나요?

“제 모국어는 분명 한국어였어요. 한국에 자동차 팔러 왔던 미국인 아버지(유대계 백인)가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고, 1989년 엄마가 서울서 절 낳고 1년간 저를 외할머니·이모들과 함께 키웠죠. ‘미셸아, 아이고 예뻐’ ‘자장자장’ 하는 말을 듣고 자랐을 거예요. 제가 처음 한 말도 ‘엄마’였대요. 돌잔치 후 미 오리건주 유진(Eugene)으로 건너갔고, 아버지를 소외시키지 않으려 영어만 썼지요. 유진에 동양인은 드물었어요. 금요일마다 한글학교에 다녔지만 한국어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죠. 그때 제대로 안 배운 게 후회돼요.”

-2014년 어머니가 임종 전 고통 속에 혼절하며 하신 마지막 말씀이 ‘아퍼, 아퍼’였다고 책에 썼지요. 미셸씨는 ‘엄마, 엄마’밖엔 못 했고요. 모녀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는 짧지만 한국어였네요.

“제 한국어 수준이 지금 정도만 됐어도 ‘엄마, 걱정하지 마’라고 해드렸을 텐데…. 엄마는 생전 ‘네가 한국에서 1년만 살면 한국어가 금세 늘고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게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인가요.

“엄마의 언어로 엄마를 계속 느끼고, 연결고리를 잃지 않으려고요. 내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죠. 이제 한국에 혈육은 큰이모(성우 이나미씨)만 남아 있어요. 통역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그간 소통이 안 됐어요. 내가 얼마나 바보같이 느껴졌는지….”

-한국어는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워요?

“영어와 어순이 다른 거요. 그리고 같은 표현도 남자와 여자가 할 때 다르게 들리더군요. 잘하려고 급하게 말하면 아는 말도 뒤죽박죽돼 버려요. 밤마다 단어 공부와 듣기 연습을 하고, 한국어 일기도 써요. 개인 교습도 받고요. 두 번째 책을 준비 중인데, 한국어 배우기에 대해 쓸 거예요.”

벗어나고 싶던 엄마의 사랑, 이제 보이네

-뉴욕의 핫한 예술가가 한국에 틀어박히러 간다니, 뭐라고들 하던가요?

“지난 몇 년 너무 바빴어요. 2016년 엄마께 헌정한 첫 앨범이 히트해 세계 순회공연을 했어요. 2017년, 2021년 앨범도 그랬고요. 첫 앨범은 대박이 났죠. 쉴 새 없이 화장하고 무대에 오르고 뮤직비디오 찍고 인터뷰했어요. 마치 포커 게임을 하는데 내는 패마다 싹쓸이 패가 나오는 느낌이랄까. ‘이럴 리가 없어, 다음 판은 질 것 같아’ 불안해졌죠. 소속사에 ‘나 1년만 내버려두라’ 하고 떠났어요.”

-엄마의 나라에 오니 마음 편해요?

“한국어 공부 외엔 딴생각을 안 하니 명상하는 기분이죠. 그렇다고 내 집처럼 편한 건 아니에요. 어릴 때 여름방학마다 엄마 손잡고 올 땐 천국이었지만, 이젠 엄마도 외할머니도 없죠. 한국은 ‘빨리빨리’ 사회라 혼자 느리게 살기가 쉽지 않아요.”

-올림픽 열기도 미국과는 다르죠?

“미국은 풋볼, 야구, 농구 같은 국내 인기 스포츠가 있어 국가 대항전인 올림픽에는 관심이 적어요. 한국에서 올림픽을 보니 재미있더군요. 그런데 한국은 사격과 양궁 같은 걸 왜 그리 잘해요? 집중력이 강한가요?”

-그 비결은 우리도 궁금하네요. 그런 한국, 외국인이 살기엔 어떤가요.

“서울은 제게 익숙하고 재미있고 편리하고 안전한 도시예요.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하지만 뭐랄까, 개성을 감추고 무언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 분위기가 있죠. 한국말로 ‘눈치 본다’고 하죠? 각자의 꿈을 좇아 자기 세일즈만 하면 되는 미국하곤 달라요. 그래도 괜찮아요, 난 어차피 절반은 한국인이니까.”

그는 모녀 관계에서도 한국과 미국의 경계를 건너야 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모든 걸 내어주는 전형적인 한국 엄마였다. 딸 입맛에 꼭 맞게 사이다를 넣어 갈비를 재우고, 딸의 겨울 부츠를 미리 신어 길들여놓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누구 엄마’로 불리는.

그러나 그 특유의 사랑법은 사춘기 시절 갈등도 낳았다.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다루는 미국 엄마들과 달리, 그의 엄마는 간섭과 독설의 화신처럼 보였다. 넘어져 다치면 “흉 남으면 어쩔 거야?”, 서러워 울면 “나중에 엄마 죽으면 울어!” 야단쳤다. 살쪘다고, 화장 진하다고, 선크림 안 바른다고 잔소리했다.

고교생 딸이 밴드 음악을 하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굶어죽기 딱 좋은 직업”이라며 대학부터 가라고 했다. 자신은 전업주부로 집 안을 쓸고 닦으면서도 딸은 완벽한 엘리트 여성으로 만들려고 했다. 갈등은 극에 달했다. 자우너는 “내 경험이 다른 한국계 자녀도 겪은 일이란 걸, 책을 낸 뒤 독자들을 만나며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 어머니가 이해되나요?

“아시아계 부모들은 다정한 말보다는 지극한 보살핌과 희생으로 사랑을 표현하더군요. 우리 엄마는 내향적인 사람이라 외부 활동이 쉽지 않았던 데다, 소수 이민자 여성으로서 경계인일 수밖에 없는 혼혈 자식을 실수 없이 키워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을 거예요. 어릴 땐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죠.”

-부모를 객관적으로 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죠.

“이번에 한국 오기 직전, 집 금고에서 엄마의 처녀 적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했어요. 한국 분에게 번역을 부탁해 읽어봤는데, 내가 몰랐던 엄마의 모습이 담겨 있었어요. 20대의 엄마는 ‘파티걸’이었더군요! 이 술집 저 술집에서 놀고, 남자도 여럿 만나보고…. 제일 재미있는 건 엄마가 예술가를 꿈꿨다는 거예요. 나더러 하지 말라는 건 사실 본인이 다 해봤던 거예요(웃음).”

해일 같은 슬픔을 다루는 법

자우너는 부모에게서 벗어나려 18세에 서부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부 펜실베이니아주의 명문 브린모어대에 진학했다. 이어 뉴욕에서 식당일로 돈을 벌며 밴드를 시작한 스물다섯의 봄, 56세인 어머니가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그는 모든 계획을 접고 7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어머니 간호에 전념한다.

항암 부작용으로 뭉텅뭉텅 빠지는 엄마의 머리칼을 아무렇지 않은 척 치우고, 땀과 구토로 젖은 시트를 갈고, 먹지 못하는 엄마에게 하루 2000칼로리를 섭취시키려 사투를 벌이고, 엄마 옆에서 자며 썩은 입 안을 닦아내고 숨소리를 확인한다. 반년 만에 엄마가 끝내 하늘로 떠난 가을날, 딸은 그의 바싹 마르고 멍든 팔다리를 가릴 옷을 골라 입힌다.

-요즘 한국에선 그렇게 중환자를 집에서 가족이 끝까지 돌보는 경우가 드물어요.

“그래요? 왜요? 저흰 복지 시설에서 보내준 병원용 침대에 엄마를 눕히는 것도 비인간적으로 보여서 안 썼는데요.”

-그렇게 헌신적으로 돌보고도 후회가 남던가요?

“모든 게 후회되죠. 두 번의 항암치료에 실패하고 나니 딸로서 실패자처럼 느껴졌어요. 왜 진작 검진 못 받았을까, 더 좋은 병원에 갔으면 신약이 있지 않았을까, 남들은 무슨 대체의학이나 식이요법으로도 나았다던데, 발이라도 더 주물러 드렸으면, 내가 직접 죽이나 누룽지를 만들어 먹여드렸다면….”

-장례식에선 담담하다가, 나중에야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꿈을 꾸고 ‘엄마 죽은 줄 알았잖아!’라며 안겨서 울다가, 깨서 또 엉엉 울곤 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요.

“(목이 멘 듯 침묵) 아직도 가끔 슬픔이 해일처럼 덮쳐와요. 예전처럼 오래가진 않지만요. 그런데 요즘은 슬픔을 느끼는 그 순간도 약간 행복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상하게 들리죠? 자식인 내가 살아서 이런 사랑과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엄마가 여기(가슴께를 톡톡 치며) 머무른다는 건 행복한 거예요. 슬픔이 밀려올 땐, 그 감정을 그저 느끼며 기다리는 것(just feel and wait)도 방법이죠.”

-언제 어머니가 가장 그리워요?

“내가 성공할 때요. 모두가 칭찬해도, 내가 달려가 마음껏 자랑하고 칭찬받고 싶은 단 한 사람은 엄마죠. 아마 그래서 내가 잘나갈 때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겁이 나나 봐요.”

-어머니 임종을 2주 앞두고 당시 남자 친구와 서둘러 결혼했죠. 이제 남편은 밴드·집필 활동까지 함께하는 동지인데요.

“남편은 절 사랑하지만 듣기 좋은 소리만 해주죠. 엄마처럼 대놓고 정직한 쓴소리는 못 해요. 내가 오만해질 때, 실수할 때, 화장 번졌을 때, 날카롭게 지적하고 옷매무새 바로잡아주고 등짝 때려주는 건 오직 엄마만 할 수 있죠.”

돌이킬 수 없이 각인된 엄마의 맛

-딸이 굶어 죽기는커녕 성공한 예술가가 된 걸 보셨으면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을까요?

“‘얘, 인세 받았는데 내 샤넬백 하나 안 사왔니?(자우너가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 샤넬백 가품을 발견하는 장면이 책에 나온다)’ ‘그래미 후보에 올랐다 떨어졌다고? 다음엔 꼭 진짜 상을 타라’ 그랬겠죠. 그래야 우리 엄마지(웃음).”

H마트는 미국의 40여 년 된 한국 식료품 체인점이다. 한국산 배추, 배, 과자, 요쿠르트와 홍어회까지 수입하고 김밥·반찬·육개장·자장면도 만들어 판다. 자우너는 뉴욕의 H마트에서 팥빙수 재료를 고르는 한국인 부부를 보고 엄마 생각이 나 무너지듯 울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엄마의 쿠쿠 밥솥으로 밥을 짓고, 엄마 슬리퍼를 신고 장을 봐 된장찌개를 끓여 한국서 온 친척을 대접하고, 엄마가 투병 중 먹던 잣죽을 혼자 끓여 먹으며 속을 달래고, 통배추와 총각무를 사다 절여 김치를 담근다. 그렇게 몸에 각인된 엄마의 손맛을 홀로 구현해내는 일은 엄숙한 심리 치료의 과정처럼 그려진다.

-요즘도 직접 김치 담가 먹어요?

“아뇨. 한국 시장 할머니들이 만드는 김치랑 반찬이 얼마나 싸고 맛있는데요. 하지만 뉴욕 돌아가면 또 만들 것 같아요. 저 배추김치, 총각김치, 오이소박이, 파김치 만들 줄 알아요. 동치미는 매번 망하지만.”

-한국 음식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내 생에 아주 큰 부분이죠. 제 부모님은 대학을 못 나왔고 문화적 소양도 없었지만, 미각엔 뛰어났어요. 새로운 맛난 음식을 제게 맛보여주는 데 아낌 없었죠. 엄마 영향이 절대적이었어요. 전 한국 음식을 일정 기간 못 먹으면 속이 안 좋아요. 제 남편이 마늘 팍 들어간 김치에 갈비를 잘 먹어 결혼했는데, 이젠 저도 못 먹는 곱창, 멍게까지 먹어요.”

-새우깡, 냉면, 전, 삼겹살, 산낙지, 미역국, 콩국수, 소보로빵, 치맥 같은 생생한 한국 음식 묘사가 세계 독자들에게 매력적이었다던데요.

“음식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흥미롭지요.”

-’H마트에서 울다’가 히트한 때는 코로나 이후 미국에서 아시아계 대상 증오 범죄가 급증해 아시아계가 결집하던 시기였죠. 영화 ‘기생충’ ‘미나리’가 오스카상을 받고 K푸드·K드라마 인기가 높아지던 때이기도 했고요. 그런 분위기의 덕을 봤다고 보나요?

“제가 고등학생 때(2000년대 초반)까지도 친구들은 한국이 뭔지도 몰랐어요. 저더러 ‘너 중국인이야? 일본인이야? 그럼 뭐야?’ 했죠. 주눅들었죠. 그랬던 한국 문화가 최근 접근성이 높아졌어요. 하지만 전 아시아계로선 잘했다는 말을 듣는 작가가 아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경험과 감성을 그리는 작가로 평가받고 싶어요.”

-부모는 우리의 영웅이었다가, 넘지 못할 산이었다가, 절망과 수치와 미움이 되기도 하죠. 그리고 그 사랑을 너무 늦게 깨달아 평생 후회하고 아프게 합니다. 그런 부모 자식의 요동치는(turbulent) 관계가 우리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든다면, 그건 왜일까요.

“그게 바로 인생의 진정한 모습이기 때문이죠. 부모 자식이라는, 거짓이 끼어들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관계가 모든 인간관계의 원형이니까요. 그걸 빼고 우리가 인생을,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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