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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고] 가슴 따뜻하게 하는 만남으로

이상현 (목사, 밴쿠버밀알선교단 단장)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1-01 01:00

2015년 마음에 품으면 좋을 말
크리스토퍼 놀란 (Christopher Nolan) 감독이 만든 영화 <인터스텔라> (Interstellar)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영화에서 감독은 인류가 처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거대한 황사 바람이 수시로 일어나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 병해충이 농사를 망쳐버리기 일쑤다.” 자연 현상을 통해 묘사한, 머지 않아 인류가 마주할 현실에 대한 감독의 상상은 도무지 머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마치 지금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 특히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을 묘사한 것 같은 느낌이 영화를 보면서 들었다. 영화에서 탈출구는 다른 행성을 찾아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그것은 부성 (父性)의 발로로 그려진다.

제레미 리프킨 (Jeremy Rifkin)은 1996년에 <노동의 종말> (End of Work)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리프킨은 그 때 벌써 “일은 있지만, 일자리는 없다. 노동자 없는 세계가 도래하고 있다” 라고 썼다. 정보화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digital) 시대는 신(新)경제를 낳았지만, 첨단 기술정보 사회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유토피아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고용 없는 성장을 가져왔다는 것을 지난 30여 년의 세월은 보여주고 있다.

국가 경제가 회복 되고 성장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실업률은 증가하고, 그 결과 해고와 대량실업, 대규모 취업난 사태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타인을 사물화, 대상화하는 정도를 넘어서 서로 경쟁자와 적으로 돌리고, 그를 밟고 서야만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강요하는 시대적 정신 사조와 사회 구조 속에서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막막할 수밖에 없다. 개인은 점점 더 파편화 되고, 점점 더 고독해지고, 점점 더 무기력함을 절감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인류는 존재와 삶의 새로운 돌파구, 즉 “구원”을 찾아 다른 행성을 향하여 떠날 만큼 과학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그리하여 이제는 달은 물론, 화성과 금성에도 탐사선을 보내고, 우주 여행뿐 아니라, 아예 지구 밖 행성에 정착촌을 건설하고 이주하는 것을 계획할 수 있을 만큼 거리와 간격을 좁히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캐나다에 살고 있으면서도 한국에 있는 지인이나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또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 가깝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인근에 있는 시설이나 경관은 물론 아주 멀리에 있는 것들까지도 앉은 자리에서 접할 수 있을 만큼 거리를 좁혀 버렸다. 이렇게 지리적, 역사적, 정보적, 공간적 거리를 좁힌 가까워진 세계를 살면서 우리는 매우 편리해졌고,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었고, 더 좋은 세상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나”와 “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리적 거리는 태평양을 사이에 둔 밴쿠버와 서울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남편과 아내의 사이가 그렇고, 부모와 자녀 사이가 그렇고, 직장인처럼 매일 만나는 사이인 경우에도 그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어떤 형편을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꿈꾸는지를 서로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 그래서, 분명히 매우 편리해지고,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고, 더 좋은 세상을 살면서도 더 외롭고, 더 힘들고, 행복하지도 않고, 또한 의미를 찾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거리”를 좁히는 데 구원의 길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가 “네트워크 (network) 시대”라는 말은 단순히 일과 정보의 네트워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연결 되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나”와 “너”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또 서로 긴밀하게 연결 짓는다는 의미에서의 네트워크를 뜻하는 말일 것이다.  아날로그 (Analog) 같은 생각이라고 할 지 모르지만, 지금은 피상적 만남의 한계를 넘어서는 깊이 있는 진정한 만남,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만남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존재의 의미, 그리고 삶에 대한 용기와 지혜는 그런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감독이 죽음의 현실을 타파하려는 주인공의 행동을 “부성”(父性)의 발로로 표현한 데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진실로 사람의 구원은 ‘함께 하고 서로 나누는’ 진정한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이리라.

가까이하고 서로 나누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지난 2014년 12월 14일, 한국 SBS 8시 뉴스는 <생생 리포트> 코너에서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라는 멘트와 함께 박동기씨 이야기를 소개했다.

“박동기 할아버지는 서울 종로구에서 산다. 그의 거처는 가파른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지하에 난방도 되지 않는 한 평 남짓한 공간이다. 박동기 할아버지는 (당시로부터) 11년 전,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던 할아버지 한 분을 알게 되었다. 그 해 추석 때였다. 그 할아버지가 국을 끓였는데 보니까 그냥 아무 것도 없는 맹물이었다. 박동기씨는 자기가 먹으려고 끓인 국을 그 분에게 드리고, ‘앞으로 밥을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했다. 지체장애 2급이던 그 할아버지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의 손에 이끌려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공원으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유일한 벗이자 보호자였던 박씨의 손을 꼭 잡은 채 지난 해 1월, 편안히 눈을 감았다.”

“박동기 할아버지는 기초생활 수급자다. 정부에서 주는 48만원에서 방 월세를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건 21만원뿐이다. 당뇨병과 대장암은 10년 넘게 그를 괴롭히고 있다. 그런데도 그의 마음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향해 있다.” 이 분이 지체장애 2급 할아버지를 가까이하자, 그 분이 병원으로, 세상으로, 공원으로 나올 수 있었고, 외로움이 덜어졌고, 친구가 생겼고, 그 친구 손을 잡고 죽음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경험한 “구원”은 할아버지를 찾아와 그와 가까이한 분을 통해서 왔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구원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온다.

내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이웃을 깊이 있게 만나고, 세심하게 따뜻하게 돌아보는 일은 아주 작은 일이지만, 치유와 회복은 거기서부터 찾아올 것이고, 우리 사회는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예수께서는 천국을 사람에게 주시려고 사람과의 거리, 그 간격을 좁히고 좁혀서 아예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이 되어 오셨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극히 작은 자 (아주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 이런 삶이 천국을 이루는 삶의 방식임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2015년 새해에는 “더” 높은 곳을 향하기 보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지향성을 가지고, 일이든 사람이든, 그 동안 소홀히 했던 아주 작은 데에 눈길을 주고 살피는 데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나”의 따뜻한 가슴이 “너”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구석구석 우리 사회가 따뜻해지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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