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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난 가족에 보내는 사연

우정식 기자 jswo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6-01 15:58

'사랑하는 아들 새한아, 며칠 동안 여름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구나. 얼마 전 대전에 큰비가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네가 있는 곳은 괜찮을까 걱정했다. 그동안 아빠가 소식 전하는 것이 뜸했지? 새 일자리를 얻느라 바빴기 때문이란다'(1996년 6월24일)

경북 경산시에 사는 전태웅(70)씨 부부는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 매달 3~4통의 편지를 보낸다. 수취인은 21년 전 숨진 아들 고(故) 전새한 이병이다. 전 이병(당시 21세)은 군 복무 중이던 1991년 12월 사고로 순직해 1992년 2월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아버지와 엄마, 누나, 동생, 조카 등 가족 모두가 지금까지 700여통의 편지를 썼다. 가족이 보낸 편지는 지금까지 대전현충원 서류철에 묶여 있었다. 이 편지들이 이제 안식처를 찾게 됐다.

대전현충원이 1일 개설한 '하늘나라 우체통'은 국가를 지키다 먼저 떠난 사람들과 이 땅에 남은 가족들을 이어주는 통로다.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축하 소식을 전하고 싶은 부모, 남동생에게 보내는 누나의 애틋한 사랑이 이 우체통을 통해 전달된다.

동생아, 꿈에 한번이라도 꼭 나와주렴
◇"꿈에라도 나와주지…"

이날 우체통 개통식에서는 작년 경기도 용인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다 급류에 휩쓸려 순직, 집배원 최초로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고 차선우 집배원의 유족들도 참석했다. 4년차 집배원인 차씨는 작년 7월 용인시 포곡읍 금어리에서 동료 집배원과 함께 우편물을 배달하다 불어난 급류에 휩쓸렸다.

차씨의 누나는 우체통에 넣은 편지에 "꿈에라도 나와주지, 어떻게 나타나질 않니.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어. 우리 가족 다 같이 만날 때까지…"라며 떠난 동생을 그리워했다.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사후 현충원에 안장된 할아버지를 위해 고사리손으로 적은 편지도 있었다. 그 편지에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몸속에 총알이 박힌 채 사셨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났어요. 다음에 제가 모은 용돈으로 예쁜 꽃을 사서 찾아뵐게요. 손녀 채린이가"라고 적혀 있었다.

대전현충원이 보관 중인 파일 속에서는 지난 2003년 12월 유족이 보낸 크리스마스카드도 발견됐다. 알록달록한 카드에는 "엄마 아빠 너무 보고 싶어요. 갑자기 준비 없이 떠나버려 너무 가슴 아프고 허망해요. 하늘나라는 어떤가요. 엄마 아빠, 우리를 지켜주세요. 용인에서 딸 현정이가"라고 적혀 있었다.

가슴에 묻은 아들아!
◇"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를 잃은 딸들의 편지도 마음을 흔든다. 미국에 사는 딸이 1997년 1월 장교묘역에 안장된 아빠에게 보낸 편지에는 애절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 "마지막으로 아빠가 입었던 정복이 정말 멋졌어요. 나중에 나 결혼하게 되면 그 옷 입은 아빠 손잡고 들어가려 했는데…. 문득문득 아빠가 새벽에 전화를 걸 것 같아 지금도 잠 못 이룬답니다."

아빠를 잃은 또 다른 딸은 1999년 크리스마스카드를 전했다.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 늘 먼저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주셨죠. 아빠가 눈물 나게 그립습니다. 며칠 전 아빠 묘비 앞에 크리스마스 화분을 만들어 놓았는데 마음에 드세요?" 1990년 4월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아빠에게 딸 '지영'이 보낸 편지에는 "아빠가 대문을 두드리고 지영아 하고 부르며 들어오실 것 같은데 너무 보고 싶어요. 아빠에게 쓰는 편지는 이 세상 종이를 모두 다 써도 모자랄 것 같아요. 꿈에서라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금방 문 열고 들어오실 것 같은 아버지…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20년 전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는 '가슴 시리도록 보고 싶은 당신께'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냈다. "하늘나라 우체통이 생겨 처음으로 편지를 써 봅니다. 우리는 당신이 지켜봐 주시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만나셨는지요. 나중에 먼 훗날에 당신 곁에 가거든 늙었다고 몰라보지 마세요."

경기도 양주시에 사는 전순영씨는 지난 3월 현충원에 안장된 아들 남병훈 상병에게 '15번째 편지'라는 분홍색 봉투를 보냈다. "너의 4촌 동생을 훈련소에서 면회하는 날, 우리 아들이었으면 하는 생각에 가슴이 싸늘하게 멍들었단다.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 하는지 헤아릴 수 있었는데… 울다가 편지를 쓴다."

군 복무 중인 동기가 사병묘역에 안장된 친구에게 2009년 보낸 편지에는 "이강일 잘 지내냐? 네 생일이 벌써 17일이나 지났네. 왜 먼저 갔냐 이놈아. 너무 보고 싶다 친구야"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휴가 나가면 꼭 찾아갈게…. 날 잊지 않도록 편지 써주마"라고 적었다.

이날 명예원장으로 나서 행사를 진행한 아나운서 왕종근씨는 중령으로 군생활을 마치고 대전현충원 장교묘역에 안장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남겼다. 왕씨는 "아버지를 현충원에 모신지 6년이 됐지만 늘 저를 뒤에서 부르실 것 같고, 금방 문을 열고 들어오실 것 같은 마음은 여전합니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사랑합니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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