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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다가도 웃기는 덕구 만나보세요"

한혜성 기자 helen@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1-20 15:09

30년째 한결같은 사랑 받아온 연극 '빈 방 있습니까'

극단 <증언>이 처음으로 밴쿠버를 찾았다. 지난 30년동안 성탄절 즈음만 되면 대학로 무대에서 ‘빈 방’이 있냐고 묻는 극단이다. <증언>은 1981년 12월에 60명 관객을 수용하기도 벅찬 이대 앞 민예소극장에서 연극 ‘빈 방 있습니까(이하 빈 방)’를 처음 공연했다.

한글맞춤법 개정 전이라 직접 손으로 제작한 당시 포스터 제목은 ‘빈 방 있읍니까’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올해, 창단 30주년 미주 특별 순회 공연의 마지막 목적지로 밴쿠버에 왔다. <증언>은 30일까지 메트로 밴쿠버에 있는 10곳의 교회에서 ‘빈 방’을 10차례 공연한다.

그동안 ‘빈 방’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지난 30년째 주인공, '덕구'역을 맡고 있는 박재련 <증언>대표와 최종률 상임연출자를 ‘빈 방 30년 역사’의 원동력이라고 부른다. 박대표는 오랜 연극배우 출신으로 현재 아이돌가수 f(x)의 설리, 미스 A의 수지 등이 재학해 있는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교장이기도 하다. 박대표와  그의 아내이기도 한 김충실 호원대 외래교수를 19일 만나 ‘빈 방’에 대해 들어봤다.

<▲ (왼쪽) 박재련 대표와 김충실 교수가 '빈 방 있습니까'공연을 위해 밴쿠버를 찾았다.>

연극 제목이 흥미롭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빈 방>은 30여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실화에 대한 짧은 글을 읽고 써내려간 창작극이다. 한국 실정에 맞게 성탄극을 준비하는 교회 고등부 연극반을 소재로 했다. 연출교사는 학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신지체아 박덕구에게 여관 주인역을 맡긴다. 말도 더듬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덕구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려는 의도였다. 덕구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지만 정작 연극날  ‘빈 방이 없다’고 해야하는 대사에서 요셉과 만삭의 마리아가 추운 겨울날 베들레헴을 헤메는 모습이 안타까운 나머지 ‘빈 방이 있다’고 말해 연극을 망치고 만다. 왜 덕구는 빈 방이 있다고 했을까?
이 것이 대강의 줄거리이고, 중간중간 재미난 대사나 행동, 그리고 감동이 버무려져 남녀노소 누구나 가슴이 따뜻해지는 공연이다.

‘빈 방’의 30년 역사동안 무대에 오른 배우도, 무대를 지켜본 관객도 많겠다.
감사하게도  1981년  첫 공연 이후 연간 20회 이상의 유료공연이 대부분 매진됐다.  94년에는 예술의 전당이 주최한 <우리 시대의 연극 시리즈> 3번째 순서로 공연되기도 했다. 지난 30년간 유오성, 서태화, 강신일, 박노식, 김미경 등 수많은 연기파  배우가 ‘빈 방’을 거쳐갔다.
아침이슬 작곡가이기도 한 김민기 학전소극장 대표, 중견배우 문성근씨같은 단골 관객들은 매년 직접 표를 사서 ‘빈 방’을 관람한다. 어떤 장면에선 박장대소하고, 주인공 덕구의 독백에선 눈물 짓는다. 감동을 주는 공연이라며  다음해 성탄절이 되면 어김없이 또 ‘빈 방’을 찾는다. 밴쿠버에서도 많은 교민분들이 와서 순진무구한 우리 덕구를 만나셨으면 좋겠다.  

<▲ 외톨이였던 덕구가 교회 성탄절 연극에서 여관주인 역할을 맡는다.>

 

박대표는 지난 30년간 덕구역을 직접 해왔다. 그 동안 질리지 않고 덕구역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
덕구라는 아름답고 순수한 아이를 만나기 때문인 것 같다. 덕구가 하는 말 중에 “선생님, 전 눈이 좋아요”라는 대사가 있다. 그러면 선생님이 “나도 눈 좋아해”라고 말하면,  덕구가 “선생님두요?”라고 의아해하며  되묻는다.  소외되고 혼자임이 익숙했다가 동질감을 느끼고 기뻐하는 덕구의 이 말은 운전을 하다가도 가끔씩 생각나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김교수: 오성이(유오성)는 연기 초년생일 때 ‘남학생 2’역을 맡았다. 극 중에서 덕구가 조는 장면이 있는데 박대표가 침까지 질질 흘리면서  졸고 있는 게 신기했는지 나중에 연극이 끝나고 나서 진짜 침흘리신거냐고 진지하게 묻더라. (웃음) 박대표는 30년동안 덕구로 살아와서 그런지 캐릭터로의 몰입이 대단하다.  덕구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수백번 공연을 봤던 나도 매번 울컥한다.

<▲ 50대가 된 지금에도 박재련 대표는 고등학생 지체장애아 '덕구'역을 맡고 있다.>

연극을 관람한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김민기씨는 연극을 보면서 ‘울다가 웃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꼈다고 했다. 3살짜리 관객도, 나이든 관객도 몰입해서 보고 한바탕 울다 울 수 있는 연극이 바로 ‘빈 방’이라고 생각한다.

김교수: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몇년 전 대학로에서 공연할 때다. 연극 제목만 보고 야한 연극인줄 알고 술에 거나하게 취한 3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내가 표를 팔고 있었는데 나에게 “이거 재밌어요?”라고 묻길래 “네, 여관신도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여관신이 있지않나(웃음). 그렇게 표를 팔고 나중에 해코지 당할까봐 조명실에 올라가 숨어 세사람을 지켜봤다. 처음엔 다리까지 벌리고 무례하게 앉아있던 사람들이 연극이 진행될수록 몰입을 하더니 중간중간 훌쩍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연극이 끝나니까 잘 봤다고 인사를 하면서 당시 지체장애인 돕기용으로 팔고있었던 물품을 모두 사갔다.  

공연 단원들은 전문배우인가?
<증언>의 창단 목적은 ‘기독교 문화의 활성화와 이웃사랑, 그리고 사회 봉사’다. 그래서 단원 모두가 무보수로 봉사를 하고 있다. 단원들은 모두 본 직업이 있다. 나같은 경우에는 공연예술인을 키우는 교장이고 아내는 교수, 그 외에도 목사, 사업가, 회사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연말이 되면 모든 스케줄을 뒤로하고 ‘빈 방’에 참여해 나눔의 기쁨을 느낀다.
 각자 직업이 있고 돈을 위해 연극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추어라고 부르지만, 실력만큼은 송강호같은 진짜 배우들이 벤치마킹할만큼 뛰어나다. 이번 미주 순회 공연은 연극영화과 재학생 등 실력있는 젊은이를 위주로 팀을 따로 꾸렸다. 연극무대에 다수 올랐던 학생들이라 기대하셔도 좋다.   

 

<▲ '빈 방 있습니까'의 한장면. 가장 왼쪽부터 미주 순회 특별 공연팀, 김예은양, 조제호군, 그리고 가장 오른쪽이 '덕구'역의 박재련 대표다.>

 

‘빈 방’은 앞으로도 계속 공연할 예정인지?
계속 할 것이다. 수익도 안 남으니 오로지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지만 ‘빈 방’을 하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은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자 사명같아 놓을 수 없다. 또, 언젠가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한 연극을 선보여 우리 2세들이나 외국인들에게도 덕구의 진실성을 이해시키고 싶다.

글·사진=한혜성 기자 Helen@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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