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때 시작해 3년 만에 완성
기억·정체성·치유에 관한 이야기
기억·정체성·치유에 관한 이야기
밴쿠버 포인트 그레이 세컨더리 스쿨(Point Grey Secondary School)에 재학 중인 13세 한인 청소년 하리 전(Hari Jeon) 양이 첫 장편소설 <Find Me in Your Memory>를 출간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글을 쓰기 시작해 약 3년 만에 완성한 640쪽 분량의 소설로, 기억과 정체성,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섯 청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 양은 책 판매 순수익 2000달러를 목표로 BC아동병원 기부금을 모으고 있다. 현재까지 목표액의 약 70%에 해당하는 1400달러를 모았으며, 모금한 금액은 병원 측과 협의해 오는 11월 말 전달할 예정이다. 다음은 전 양과의 일문일답.
Q.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와 작품에 담고 싶었던 이야기는.
캐나다에서 생활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으로 옮겨 프랑스 국제학교에 다니면서 언어와 정체성,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언어가 다르면 서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기억이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면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기억과 간직하고 싶지만 붙잡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내가 어떤 기억을 잃고 지키며 소중히 여길지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구상했어요.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다섯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기억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을 담고 싶었어요.
Q. 640쪽에 달하는 소설을 완성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글을 쓰는 일은 자유롭기도 하지만 불안과 의심을 안겨주기도 했어요. 내 이야기에 가치가 있을지,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이 이야기에 공감할지, 글을 잘 쓰고 있는지 고민했어요.
글쓰기는 단순히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완전히 새로운 감정이나 경험은 없을지도 몰라요. 작가는 사람들이 이미 경험한 감정과 경험을 새로운 관점과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제 글을 읽고 보내준 반응과 격려는 제 이야기를 믿고 출간할 용기를 주었어요.
Q. 한국계 캐나다인으로서의 경험도 작품에 담겼나요.
캐나다에서 자라면서 내가 어디에 속하는 사람인지 혼란스러웠고, 그 불확실함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한국어가 서툴러 표현이나 발음이 걱정됐지만, 한국 문화와 가족을 더 잘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한국에서 생활한 경험은 제 마음과 생각에도 큰 영향을 줬어요.
한때는 두 문화 사이에 있는 내가 누구인지 고민했지만, 지금은 그 ‘사이’에 여러 세계가 담겨 있다는 점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한국의 ‘인연’, ‘정’, ‘한’ 같은 정서도 영어로 쓴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담았어요.
Q. 책 판매 수익금을 BC아동병원에 기부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시절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할로윈에 사탕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Boograms’ 행사를 기획했어요. 당시 BC아동병원에 500달러를 기부하고, 소아병동 어린이들을 위해 200개가 넘는 Boograms를 만들어 전달했어요.
병원에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애쓰는 아이들과 의료진을 보면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어요. 가족의 경험을 통해 몸의 아픔과 마음의 아픔이 서로 영향을 준다는 것도 배웠어요. 제 소설을 병원에 헌정하고 판매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려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예요.
Q.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과 앞으로의 계획은.
한 문장에도 수많은 사람과 관계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별들이 모여 별자리를 이루듯, 글쓰기도 온전히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에요. 제게 말을 건네고 힘을 준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이야기를 쓸 수 있었어요.
글쓰기를 통해 희망을 발견했던 저처럼, 독자들도 이 소설에서 희망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첫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 나지 않지만, 앞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소설을 쓰면서 부족한 점을 배우고 계속 성장하고 싶어요.
■ Find Me in Your Memory는∙∙∙
기억이 상품처럼 거래되는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지난 5년의 기억을 잃은 기억 추적자 로아 윤(Ro-A Yoon)이 실종된 정로한(Rohan Jung)을 찾아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각기 다른 그리움과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다섯 청소년의 여정을 통해 기억의 불완전함과 인간관계의 의미를 탐색한다.
최희수 기자 chs@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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