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기자 르포
네팔 북부 바그마티주(州) 라수와 지역에서 대홍수가 발생한 지 엿새째를 맞은 31일(현지 시각), 이번 홍수로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이 57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참사 속에서도 생환(生還) 소식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8일에는 홍수가 휩쓸고 간 라수와의 건물 잔해 밑에서 다섯 살배기 여자아이 마니샤 우차이 마가르(5)가 구조됐다. 급류에 쓸려간 지 60시간 만이었다. 마니샤를 포함해 지금까지 홍수 현장에서 구조된 사람은 8000명이 넘는다.
지난 26일 아침, 라수와 티무레에 사는 마니샤는 집 안에서 놀고 있었다. 엄마는 마니샤에게 비스킷을 쥐여준 뒤 집 뒤편 밭으로 시금치와 파를 뜯으러 갔다. 이들이 10년째 살아온 강변 마을은 이날 아침도 평온했다.
그런데 갑자기 굉음이 들렸다.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높은 곳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마니샤 엄마가 뒤를 돌아보자 거대한 물이 마을을 향해 덮치듯 밀려오고 있었다. 그는 집을 향해 “내 아이! 내 아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딸이 있던 집도 순식간에 급류에 휩쓸렸다.
마니샤 엄마는 이후 딸을 찾아 사람들이 떠내려 간 트리슐리강(江) 일대를 헤맸다. 사흘 가까이 아무런 소식이 없자 “아이 시신조차 찾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홍수가 난 지 약 60시간 만에 구조대가 무너진 건물 잔해 밑에서 마니샤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조대는 잔해 속에서 들려온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희미한 소리에 돌과 진흙, 부서진 목재를 걷어낸 끝에 아이를 구조했다.
31일 카트만두 트리부반교육대병원 소아과 병동에서 만난 마니샤는 침대에 누워 머리맡의 흰 곰 인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쪽 이마와 왼쪽 눈두덩이, 코와 뺨에 앉은 딱지가 수마가 할퀴고 갔음을 떠올리게 했다. 마니샤는 코에 관을 꽂고 왼팔에는 깁스를 한 채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구조된 지 이틀 만에 엄마를 만난 마니샤는 엉엉 울기만 할 뿐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아이가 이날 처음 입을 열어 “엄마, 곰 인형을 주세요”라고 했다. 모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내 가족도 살아 있었으면...” 하며 울먹였다.
◇“발전소 한국 직원들, 호각 불며 잠자던 야간 근무조 대피시켜”
지난 26일(현지 시각) 네팔 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대홍수는 한국인 직원들이 근무하던 ‘어퍼 트리슐리 1’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도 덮쳤다. 보테코시강(江) 상류에 있는 발전소 건설 현장엔 두산에너빌리티(16명)와 한국남동발전(3명) 소속 한국인 직원 19명이 있었다. 이 가운데 두산에너빌리티 직원 10명은 구조됐지만 나머지 9명(두산 6명, 남동발전 3명)은 실종 상태다. 구조된 두산에너빌리티 직원 10명 중 현장소장 A씨를 제외한 9명은 31일 귀국했다.
A씨는 홍수가 덮쳤을 때 파워하우스에서 발전 설비로 들어가는 터널 안에 있었다고 했다. 지난 30일 카트만두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난 A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사방에 물보라가 쳐 앞이 보이지 않았다”며 “강 건너편에 한국인들이 근무하던 캠프 사무동과 숙소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홍수가 지나간 뒤 3~4시간이 지나서야 현장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A씨 등 구조된 직원들이 주로 머물던 파워하우스는 비교적 지대가 높아 급류를 피한 것으로 보인다. A씨는 다른 한국인 직원 9명과 함께 지대가 높은 발전 시설로 대피했다가 구조됐다. 이곳에는 한국인 10명과 네팔 현지 근로자 등 450명 이상이 함께 머물렀다고 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사무동과 직원 숙소 등은 급류에 휩쓸렸다. 실종 상태인 한국인들이 사고 당시 정확히 어느 지점에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AFP 통신에 따르면, 어퍼 트리슐리 1 터널에서 31일 시신 한 구가 발견됐지만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본지가 만난 생존자들은 몰아닥친 물이 “검은 벽 같았다”고 했다. 31일 카트만두 트리부반교육대병원에서 만난 니마 도르제 타망(25)씨는 “마을 전체가 먼지로 뒤덮이더니 굉음과 함께 검은 구름 같은 것이 강 위로 밀려왔다”고 했다. 그는 “강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시멘트를 섞은 물 같았고 냄새도 고약했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실종된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타망씨는 홍수가 들이닥쳤을 때 근처 마을에 있었다. 강 수위를 살펴보러 가다가 급류에 떠밀려온 돌에 맞아 다리가 부러졌다. 걸을 수 없었던 그는 강가에서 2시간가량 버텼다. 이후 아버지와 형이 찾아왔지만 도로가 끊겨 빠져나오지 못했고, 그 자리에서 하루를 더 보낸 뒤에야 네팔 당국에 구조됐다. 타망씨 친척 누나들도 발전소 현장 식당 주방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는 “홍수 당시 한국인들이 호각을 불고 깃발을 흔들며 야간 근무 직후 자고 있던 직원들을 대피시켰다고 누나에게 들었다”고 했다.
함께 있다가 생사가 갈린 가족도 있었다. 리뚜 덩골(32)씨 세 자매와 어머니, 사촌 동생 등 6명은 홍수가 닥쳤을 때 네팔·중국 국경 지역에 있는 가건물 카페에 있었다. 덩골씨는 “밖으로 나가 보니 이미 물살이 거셌다”며 “가족들에게 도망치라고 외치는 사이 건물이 통째로 휩쓸렸다”고 했다. 언니는 먼저 몸을 피했지만 덩골씨와 동생은 각각 다리와 눈을 다쳤다. 사촌 동생은 강 하류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어머니는 실종 상태다.
생사를 가른 건 신이었을까. 중국계 수력발전 회사에서 목수로 일하는 람 프라사드 타루(35)씨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기숙사로 향하던 중 거대한 물길에 휘말렸다. 타루씨는 “1.5㎞쯤 떠내려갔다”며 “물살 속에서 발버둥 치다가 나무뿌리를 붙잡고 가까스로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했다. 라즈 미서카르마(28)씨도 급류에 휩쓸려 내려가다 함께 떠내려오던 나무를 붙잡았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발버둥 치던 그가 정신을 차려 보니 아내와 아기가 보이지 않았다. 미서카르마씨는 아직 두 사람을 찾지 못했다.
정부와 두산에너빌리티는 31일 헬기와 육상 수색팀을 투입해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두산에너빌리티 측은 이날 오후 2시쯤 헬기를 띄워 실종자들이 근무했던 사무동과 인근 댐 일대를 살폈다. 당초 헬기 2대를 투입하려 했지만 네팔 당국으로부터 1대만 이륙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소방청 인원 9명으로 구성된 육상 수색팀도 이날 현장으로 출발했다.
네팔 당국은 이번 홍수로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이 31일 기준 4247명(외국인 592명), 사망자는 최소 903명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집계한 티베트 지역 사망자 16명, 실종자 546명(외국인 261명)과 합치면 전체 사망자는 최소 919명, 실종자는 4793명으로 집계됐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
네팔 대홍수서 60시간 버틴 다섯살 마니샤 “곰인형 주세요”
2026.08.31 (월)
김명진 기자 르포
▲31일 카트만두 트리부반교육대병원 소아과 병동에서 홍수 발생 엿새만에 구조된 마니샤 우차이 마가르가 병상에 누워있다. /김명진 기자네팔 북부 바그마티주(州) 라수와 지역에서...
|
|
프레시슬라이스 CEO, 인종차별 발언으로 벌금형 받아
2026.08.31 (월)
8만5000불과 이자 지급해야
피해자·가해자 모두 이란 출신 무슬림
▲ Freshslice PizzaBC 인권재판소(BCHRT)는 캐나다의 한 유명 피자 체인 CEO에게 8만5000달러와 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해당 CEO는 무슬림과 이란인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으로 유해한 근무...
|
|
BC주 임대 시장, 유학생 감소로 직격탄 맞아
2026.08.31 (월)
유학생 등록률, 24% 감소··· 임대료 지속해서 하락할 듯
올가을 국제 학생 등록률 감소가 BC주 임대 시장에 더 큰 압박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통계청(CS)에 따르면, 캐나다의 유학생 등록률은 2024-25학년도의 4% 감소에 이어 2025-...
|
|
캐나다 임시체류자 관리 ‘구멍’··· “출국 여부도 추적해야”
2026.08.31 (월)
전문가 “전체 인구의 3~4%까지 낮춰야”
캐나다가 임시체류자 수를 추가로 줄이는 동시에, 이들의 출국 여부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추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나왔다.C.D. 하우 연구소(C.D. Howe...
|
|
140년 가까운 랭리 ‘리틀 레드 하우스’, 화재로 전소
2026.08.31 (월)
예술가들이 가장 사랑한 주택으로 알려져
▲ 전소 전 주택 모습. /Township of Langley Civic Facility랭리 타운십에 140년 가까이 자리하고 있던 주택인 ‘리틀 레드 하우스(Little Red House)’가 전소되는 안타까운 화재 발생했다.해당 지역 기록...
|
|
구글, ‘온타리오 호수’ 명칭 논쟁 뛰어들어
2026.08.31 (월)
두 국가별로 다르게 표시 ··· 호수 개명은 명백한 정치 행위
▲ 지난달 27일 백악관 X(구 트위터)에 게시된 온타리오호 개명 관련 게시물. /The White House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온타리오 호수(Lake Ontario)’의 이름을 ‘아메리카 호수(Lake...
|
|
차세대가 배우고 체험하며 되새긴 한국 역사·문화
2026.08.31 (월)
제2기 캐나다 한인 역사문화 아카데미 수료식 성료
▲수강생들이 한복을 착용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를 차세대에 이어가기 위한 ‘제2기 캐나다 한인 역사문화 아카데미’가 지난 28일 수료식을...
|
|
‘美 관세 대응’ BC 기업에 1천만 달러 푼다
2026.08.31 (월)
연 매출 100만 달러 등 기준 높아
정작 소기업은 지원받기 어려워
미국과 캐나다 간 무역전쟁으로 관세와 보복관세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연방정부가 BC 기업 지원에 나섰다.연방정부는 지난 28일 BC주 로어메인랜드 지역 기업을 대상으로 총 1000만 달러...
|
|
BC 주민, ‘PST 확대’ 강력 반대한다
2026.08.31 (월)
응답자 66%, 계획 취소해야
여성·노년층, 강력 반대
캐나다 납세자 연맹(CTF)이 여론조사 기관인 레저(Leger)에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BC 주민 대다수가 오는 10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주정부의 주 판매세(PST) 확대 계획에 반대하는 것으로...
|
|
이창섭 “독기로 만든 복근” 한 번에 사라지게 한 음식··· 뭘까?
2026.08.31 (월)
선명한 복근을 만들기 위해 혹독한 식단 관리를 이어가다가도, 단 한 끼의 외식으로 복근 윤곽이 흐려져 허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과식 직후 복근이 사라져 보이는 것은...
|
|
“자기 전 먹으면 혈당 폭발”… 살 찌우고 피로 유발하는 ‘최악의 야식’은?
2026.08.31 (월)
야식은 늦은 시간의 과도한 열량 섭취로 체중 증가나 수면의 질 저하 등을 유발할 수 있어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밤늦게 배가 고파 꼭 먹어야 한다면 무작정 참기보다 혈당을...
|
|
캐나다 총리, ‘중견국 연대' 외쳤지만··· “대부분 국가 외면”
2026.08.31 (월)
캐나다 중견국 연대 호소, 국제적 지지 부재
준비 부족 속 무역 전쟁 조기 발발로 연대 실패 캐나다 76% 지지 속 40% 일자리 위협 우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를 상대로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 전쟁에 돌입한 가운데, “카니가 트럼프의 ‘경제적 강압’에 맞서 중견국들이 단결할 것을...
|
|
역전 만루 홈런처럼 예순 넘어 뒤집힌 인생···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
2026.08.28 (금)
▲지난 10일 만난 정일영 인하대 영미유럽인문융합학부 초빙교수가 모교인 인하대 강의실에서 ‘역전 만루 홈런’을 치듯 바게트를 들어 보이고 있다. 강의실 조명은 프랑스 국기 색을...
|
|
히말라야에 200개 시한폭탄 더 있다··· 제2·3의 네팔 참사 올 수도
2026.08.28 (금)
온난화에 빙하호 2만5000개 넘어
200개는 붕괴 고위험 호수로 추산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와 유엔개발계획(UNDP)이 네팔과 연결된 코시·간다키·카르날리 3개 유역의 빙하 호수 3624개를 표본 조사한 결과, 47개가 범람 가능성이 큰 ‘고위험 빙하...
|
|
9월 버나비 노스로드, K-푸드로 물든다
2026.08.28 (금)
로히드 역 인근서 9월 5~6일 개최
150개 부스에 30개 이상 공연 진행
BC 밴쿠버 한인회와 버나비 노스로드 BIA가 공동 주최하는 ‘2026 North Road K-Food Festival’이 오는 9월 5일과 6일 버나비 ‘The City of Lougheed’ 주차장에서 열린다. 행사는 양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
|
10대 소녀 음주 운전, 2명 사망 참사 불러
2026.08.28 (금)
가해자는 가벼운 부상··· 목격자 찾고 있어
▲ /BCHP27일 새벽 랜츠빌(Lantzville) 인근에서 발생한 정면충돌 사고로 2명이 사망한 후, 16세 소녀가 음주 운전 혐의로 체포됐다.BC 고속도로 순찰대(BCHP)는 당일 오전 3시 경, 웨어 로드(Ware Rd.)...
|
|
한-캐 금융포럼··· 에너지·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강화 모색
2026.08.28 (금)
정부·기업·금융·법조계 70여 명 참석
▲이광석 주밴쿠버 총영사가 환영사를 전하고 있다. 한국과 서부 캐나다 간 에너지 및 핵심광물 분야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밴쿠버에서 마련됐다.주밴쿠버 대한민국...
|
|
백신 관련 허위 정보, 홍역 공포 부추긴다
2026.08.28 (금)
접종 적은 지역 일수록 감염률 높아
개학 전, 예방접종해야
BC 보건 당국(BCHO)은 미국 당국자들이 퍼뜨리는 백신 관련 허위 정보가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된 백신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앨버타주 보건 책임자인 보니 헨리...
|
|
BC주 거주 부부, 네팔 대홍수에 실종
2026.08.28 (금)
당일 아침 8시 30분경 이후 연락 두절
산사태에 휩쓸린 듯
▲ /XBC주에 거주하는 한 부부가 네팔-티베트 국경 지역의 홍수와 산사태로 실종됐다. 다발과 메가 샤는 티무레(Timure) 지역을 여행하던 중 산간 계곡에서 얼음과 진흙, 바위가 무너져...
|
|
캐나다 경제, 경기 침체 우려 벗었다
2026.08.28 (금)
2분기 GDP 3.3% 성장··· 1분기도 플러스 수정
수출·기업 투자 증가가 견인··· “관세가 변수”
캐나다 경제가 올해 2분기 예상보다 강한 성장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도 기존 발표보다 상향 조정되면서 올해 초 불거졌던 ‘기술적 경기 침체’ 논란도 사실상...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