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자동차 관세는 아직 난항
미국과 캐나다가 미국 기업에 적용되는 프랑스어 콘텐츠 노출·제품 표기 규정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면서 최근 결렬된 무역 갈등이 누그러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철강·알루미늄·자동차 관세를 둘러싼 핵심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27일(현지시각) 도미닉 르블랑 캐나다 대미무역 담당 장관은 미국이 프랑스어와 캐나다 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콘텐츠 노출·제품 표기 규정을 더는 무역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프랑스어 쓰지 말라는 게 아니야··· 美 기업 규제가 쟁점”
캐나다는 1969년 공용어법을 제정한 뒤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공식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어는 퀘벡주의 문화와 정체성에 직결된 문제다. 퀘벡주에서 판매되는 제품에는 원칙적으로 프랑스어 설명을 표시해야 하며, 일반적·설명적 표현이 포함된 상표도 해당 부분을 프랑스어로 표기해야 한다.
온라인 콘텐츠에도 비슷한 취지의 규제가 추진되고 있다. 캐나다와 퀘벡주는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 애플 등 글로벌 미디어 서비스에서 프랑스어·캐나다 콘텐츠를 이용자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노출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캐나다 정부는 미국 스트리밍 업체가 현지에서 거둔 매출 일부를 캐나다 콘텐츠 제작에 기여하도록 한 연방 차원의 의무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지난 6월 밝혔다. 그러나 프랑스어 콘텐츠 노출 규정과 퀘벡주의 제품 표기 규정은 별개의 사안으로 남아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쟁점이 됐다.
협상이 결렬된 뒤 일각에서는 미국이 캐나다에 프랑스어 사용을 제한하라고 요구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은 프랑스어 자체가 아니라 자국 기업에 적용되는 언어·문화 보호 규제를 문제 삼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제품 표기와 콘텐츠 노출 규제가 미국 기업의 서비스 운영과 비용 부담을 키운다는 주장이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4일 CNBC 인터뷰에서 미국이 프랑스어 자체를 문제 삼았다는 해석을 “우스운 가짜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이어 “나는 퀘벡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프랑스어를 쓰는 것도 좋아한다”면서도 “핵심 쟁점은 캐나다가 미국의 스트리밍 대기업들의 수익 일부를 자국 콘텐츠 지원에 사용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같은 날 퀘벡주 레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과의 무역 협상이 결렬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프랑스어로 “미국에게는 프랑스어가 골칫거리일지 모르지만, 퀘벡과 캐나다에게는 권리”라고 못박았다. 미국이 캐나다의 프랑스어 보호 정책을 문제 삼았다는 캐나다 측 주장을 그리어가 “우스운 가짜 이야기”라고 일축한 데 대한 맞대응이다. 영어와 프랑스어의 동등한 지위가 캐나다 헌법에 명시된 만큼 관련 정책을 양보하면 퀘벡주에서 거센 정치적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리어 대표도 이후 캐나다 공영방송 C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프랑스어 콘텐츠 노출 규정을 협상 과정에서 거론한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미국 정부는 캐나다에서 프랑스어가 지닌 중요성과 민감성을 알고 있다”며 “그런 문제 때문에 좋은 협정을 포기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문화 갈등은 봉합 수순··· 핵심 관세 전쟁은 현재진행형
미국의 해명에 캐나다도 협상 재개 가능성을 열어뒀다. 르블랑 장관은 “미국이 콘텐츠 검색과 표기 규정에 관한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프랑스어와 캐나다 문화를 장려하는 조치를 향후 무역 제재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고 확인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어 다른 쟁점에서도 미국이 건설적인 설명을 내놓는다면 캐나다의 주권을 존중하는 무역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협상 타결을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뉴욕타임즈(NYT)는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를 둘러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의 강경한 태도가 협상 결렬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캐나다가 공유하는 온타리오호의 명칭을 '아메리카호'로 바꾸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점도 협상 분위기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캐나다는 대화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 보복관세 대상에 포함했던 미국산 수산물을 제외했다. 당초 관세 목록에는 청어와 조개류, 참치, 가자미류 등 수십 종의 신선·냉동 수산물이 포함됐다. 캐나다 정부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미국의 관세 조치에 정확히 대응하기 위해 관세 목록을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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