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북미 요새’의 꿈
지난 21일 밤 10시 30분쯤 캐나다 오타와.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워싱턴에서 미국과 막판 무역 협상을 벌이던 협상단에 전화를 걸어 “돌아오라”고 지시했다. 미국의 새 관세 발효까지 불과 1시간 30분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한 달간 이어진 협상이 결렬되는 순간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 양국 협상에 직접 관여하거나 보고받은 당국자와 기업인 등 14명을 인터뷰해 막판 협상 과정을 재구성했다.
협상 초기만 해도 분위기는 달랐다. 캐나다 측이 내세운 구상은 이른바 ‘북미 요새(Fortress North America)’였다. 미국과 캐나다 사이 관세는 거의 없애는 대신, 중국 등 역외 국가에 대해서는 관세 장벽을 함께 높여 거대한 북미 경제권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지난 18일 밤에는 양측이 합의의 큰 틀까지 마련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를 21일 자정까지 미루며 합의가 임박했음을 알렸다. 미국은 캐나다산 철강·알루미늄·자동차 관세를 낮추고 목재 관세는 없애겠다는 안을 내놨다. 미국 측은 “어느 나라보다 좋은 조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세부 협상에 들어가자 양측의 간극이 드러났다. 결정적인 쟁점 가운데 하나가 자동차였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자동차 관세를 캐나다가 요구하는 수준까지 낮추는 데 반대했고, 대형 트럭에 대해서는 관세 인하 자체를 거부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GM 실버라도와 포드 F-350·F-450 등이 생산된다. 캐나다는 이를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으로 봤다.
철강·알루미늄도 충돌했다. 미국 기업들이 캐나다산 제품의 관세 인하에 반발하자 러트닉은 낮은 관세를 적용받는 캐나다산 알루미늄 물량을 제한하는 방안까지 제시했다. 캐나다 협상단은 급히 워싱턴으로 돌아와 재협상에 나섰다.
더 큰 문제는 ‘주권’이었다. 미국은 캐나다가 제3국과 체결하는 무역협정을 검토하고 사실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장치를 요구했다고 NYT는 전했다. 특히 미국이 어느 나라의 철강 등에 관세를 높이면 캐나다도 같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하기를 원했다. 캐나다가 이미 해당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중국산 등 값싼 철강이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우회 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는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중남미 등과 새 무역협정을 추진하던 카니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미국은 캐나다 정부가 자국 기업과 제품을 우대하기 위해 도입한 ‘바이 캐나디안(Buy Canadian)’ 정책을 신속히 철회하라는 요구도 했다.
프랑스어 콘텐츠 보호 정책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미국은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업체가 캐나다산 영화·드라마 등을 더 잘 보이도록 배치하도록 한 법을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측은 플랫폼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제라고 봤지만, 캐나다에서는 프랑스어와 자국 문화를 보호하는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다만 미국 측 관계자는 프랑스어 자체를 겨냥한 요구는 아니었다고 NYT에 말했다.
협상 카드로 거론됐던 키스톤 XL 송유관 부활도 막판에 사라졌다. 카니는 관세에서 충분한 양보를 얻는다면 캐나다산 원유를 미 걸프 연안으로 보내는 송유관 사업을 되살리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트럼프에게 전달했다. 트럼프도 반색했다. 그러나 미국이 내놓은 최종안이 기대에 못 미치자 캐나다는 협조 의사를 거둬들였다.
마지막 날에는 이미 합의된 것으로 여겼던 사안까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다. 한 캐나다 협상 관계자는 NYT에 “갑자기 방 안에 그림자 같은 인물들이 나타나 이미 해결됐다고 생각한 문제들을 다시 꺼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오타와에서는 더그 포드 온타리오주 총리가 카니 총리에게 “합의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포드 총리는 미국산 주류 판매를 재개하라는 미국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자동차와 철강 산업이 생존하기에는 미국이 제시한 관세가 여전히 너무 높다고 판단했다. 카니는 워싱턴 협상단의 마지막 보고를 받은 뒤 협상 중단을 결정했다.
캐나다가 마지막까지 요구한 것은 합의의 ‘확실성’이었다. 협정을 맺은 뒤 미국이 다시 일방적으로 관세를 바꾸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합의와 관계없이 언제든 캐나다에 대한 관세 정책을 변경할 권한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카니 총리는 협상 결렬 뒤 이를 두고 미국의 서명은 때때로 “연필로 쓰인 것”이라고 했다.
결국 ‘북미 요새’를 만들자는 협상은 전면적인 무역 전쟁으로 귀결됐다. 카니는 “협상 테이블에서 캐나다를 미국의 자회사처럼 대하는 태도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그들이 제안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들이 요구한 것을 내줄 수도 없다”고 했다.
뉴욕=김성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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