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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흥행 타고 깨어난 3000년 전 고전··· ‘21세기 오뒷세이아’로 다시 태어났다

백수진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6-08-21 15:20

22년 걸려 오뒷세이아 원전 완역
김헌 교수가 본 영화 '오디세이'

▲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가 22년에 걸쳐 완역한 '오뒷세이아' 들고 덕수궁 석조전 앞에 섰다. 그는 기존 번역본과의 차별점을 "얌전하지 않은 번역"이라고 표현했다. /이태경 기자



오디세우스는 고향을 떠난 20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트로이 전쟁에서 10년을 보냈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바다를 떠돌며 10년을 헤맨 끝에 고향 이타카에 닿았다. 그에 못지않게 길을 돌아온 사람이 있다. 2004 을유문화사와오뒷세이아번역 계약을 맺고, 희랍어 원전을 우리말로 옮겨 세상에 내놓기까지 22년이 걸린 김헌(61)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다.

 

교수는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30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웃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일리아스부터 내야 했는데, 놀런이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듣고오뒷세이아부터 먼저 끝내기로 했죠. 영화 개봉 전에는 어떻게든 책을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데이먼 주연의 영화오디세이 개봉 17일째인 21 누적 관객 600만을 돌파했다. 흥행 열기는 3000 가까이 고전을 다시 깨웠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달오디세이관련 도서 판매량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600% 늘었고, 2000년대 인기를 끌었던 그리스·로마 신화 만화책까지 덩달아 역주행하며오디세이 열풍 불고 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오뒷세이아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가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겪는 10년의 모험을 그렸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사람을 돼지로 만들어버리는 마녀 키르케, 노래로 뱃사람을 유혹하는 세이렌 수많은 콘텐츠의 원형이 작품 안에 들어 있다. 30 넘게 그리스 문학을 읽고 연구해 김헌 교수에게 영화오디세이 관람하기 알아두면 좋고, 보고 나면 궁금해질오뒷세이아 세계에 대해 물었다.

 


놀런, ‘21세기의 오뒷세이아 썼다

 

-고전학자로서 놀런의 각색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저는 100 만점에 95 이상 주고 싶습니다. 방대한 이야기를 3시간에 녹여내려면 무언가를 빼고, 고치고, 합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원작과 크게 달라진 부분도 있지만, 놀런은 호메로스가 던진 여러 질문에 자신의 문제의식을 더해 나름의 답을 내놨습니다. 아마 호메로스가 영화를 보더라도내가 던진 질문에 아름다운 답을 내놨구나!’ 하고 칭찬할 같습니다.”

 

-원작과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무엇입니까.

 

오디세우스라는 인간 자체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는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에요. 어디를 가든내가 트로이 목마 작전을 이끈 이타카의 오디세우스라고 자랑스럽게 밝히죠. 10년에 걸친 귀향길에서 부하도, 배도 모두 잃고 몸뚱이 하나만 남지만, 결국 자신의 지략과 , 속임수를 총동원해 잃어버린 자리를 되찾습니다. 자기 장점을 누구보다 알고 그것을 활용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사람이죠. 반면 놀런의 오디세우스는 파괴된 트로이를 보며내가 무슨 짓을 것인가돌아봅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반성하고, 적의 죽음에도 책임감을 느끼죠. 원작의 모험담이 온갖 시련을 겪고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아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선언하는 이야기라면, 영화는내가 짊어져야 책임과 의무는 무엇인가 되묻는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원작의 오디세우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나요.

 

적을 죽이고 죽음에 책임감을 느낀다는 호메로스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 영웅의 미덕이지, ‘내가 죽인 사람이 얼마나 괴로웠을까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죠. 원작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모험담을 들려줄 때도, 스스로 고통스럽다고는 하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결국 자기 자랑인 경우가 많아요. 부하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자책하기보다는 그들이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탓으로 돌립니다. 반면 영화 오디세우스는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훨씬 도덕적 감수성이 뛰어나고, 정의롭고 선량한 인물이에요. 저는 놀런이 ‘21세기의 오뒷세이아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 제공=유니버설 픽쳐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영화 '오디세이'에서 트로이 목마의 해석을 달리했다. 영화에서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목마로 사람들을 속여 트로이를 멸망시킨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유니버설 픽쳐스

개인의 복수에서 공동체의 정의로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감탄한 부분이 있다면요.

 

영화 초반 트로이 전쟁에 징집되는 병사 시논(엘리엇 페이지) 캐릭터는 정말 천재적인 각색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20 만에 이타카로 돌아왔을 , 그의 집은 아내 페넬로페에게 청혼하며 재산과 권력을 노리는 108명의 구혼자가 들끓고 있었죠. 원작에서 오디세우스의 복수는 자기 집과 왕위를 되찾기 위한 개인적인 복수 성격이 강합니다. 그런데 놀런은 시논이라는 인물을 이용해 그것을 사회적인 복수로 확장해요. 구혼자들의 우두머리 격인 안티노오스(로버트 패틴슨) 원래 전쟁에 나가야 했지만 가난한 집안의 시논과 제비를 바꿔 징집을 피합니다. 그런데다 남아서 나라를 지킬 의무마저 방기하고 왕위를 찬탈하려고 하죠. 그러니 오디세우스의 복수도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저버린 사람들을 응징하고, 사회적인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됩니다.”

 

-시논은 원작에도 등장합니까. 아니면 놀런이 창조해낸 인물인가요.

 

“‘오뒷세이아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훗날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이스 등장합니다. 일개 병사지만 트로이 사람들을 속여 목마를 안으로 들이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죠. 놀런은 인물을 가져오는 그치지 않고, 시논에게 과거 사연을 만들어줬습니다. 사람을 통해 전쟁과 귀환, 복수를 연결하고, 정의와 평화라는 주제까지 하나로 묶어내는 보면서 놀랍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5점은 깎으셨습니다.

 

뒤로 갈수록 오디세우스가 말을 너무 많이 해요. 서양 최초의 문학이론서라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에서도 시인이 너무 많은 말을 해서는 된다고 합니다. 시인은 최대한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나, 캐릭터와 플롯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놀런 감독 자신이 보이기 시작해요. 오디세우스의 입을 통해 문명이 무너졌다는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직접 설명해요. 특히 최악은청동의 시대가 무너진다 대사였어요. 청동기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 본인이청동기 시대사람인 어떻게 알겠어요. 대목 때문에 5점을 뺐습니다.”

 


그의 승리 뒤엔 108명의 죽음이

 

그럼에도 그는 영화를 보며 번쯤 울었다 했다. 20 만에 이타카로 돌아온 주인을 늙은 아르고스가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는 장면, 오랜 세월 기다린 아내 페넬로페와 재회하는 순간, 처절한 복수를 끝낸 오디세우스가 쓰러지는 장면에서였다. 나머지 하나는 영화의 엔딩이었다. “오디세우스가 석양을 바라보며 죽은 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서쪽으로 향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있겠죠. 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어쩌면 스스로를 용서하고, 자신과 함께했던 부하들의 넋을 찾아가는 겁니다. 아주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죽을 있다면 저렇게 죽고 싶다 생각이 들면서,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작도 그렇게 아름답게 끝납니까.

 

아내와 재회하고 구혼자들을 처단하는 전체 24 가운데 23권입니다. 독자로서는이제 끝났구나싶은데 권이 남아 있는 겁니다. 24권을 펼치면, 오디세우스에게 살해당한 구혼자들의 넋이 저승으로 내려가는 장면부터 나옵니다. 어두컴컴하고 곰팡내 나는 저승으로 구혼자 108명의 영혼이 줄지어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앞서 23권까지 찬란하게 빛났던 오디세우스의 승리 뒤에 생긴 거대한 그늘을 보여주는 것이죠. 심지어 이승에서는 죽은 구혼자들의 가족이 분노해 무기를 들고 오디세우스에게 맞서려 합니다. 무언가를 성취하면 이면에는 반드시 그늘이 생기고, 그늘이 다른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김헌 교수는 "원작의 오디세우스에게 트로이 목마는 죄책감의 상징이 아니라 위기를 돌파하는 자신만의 무기"라면서 "고향에 돌아간 뒤에도 정체를 숨긴 왕궁에 숨어들어 번의 트로이 목마 작전을 펼친다" 했다. /임지훈 기자 
 


교사 그만두고 35세에 유학

 

1995 교수가 서양고전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처음 읽은 작품도오뒷세이아였다. 그로부터 30여년, 역시 오디세우스 못지않게 망망대해를 헤매다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서울대 사범대에 진학해 불어 교육을 전공했다. 졸업 10 가까이 불어 교사로 일하면서 철학 공부를 병행했다. 대학원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다가, 언어와 사상의 뿌리를 찾아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갔다. 끝에 그리스·로마 고전의 매력에 빠졌고, 35세의 나이에 사표를 던지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는 쉽지는 않았겠습니다.

 

주변에서 걱정도 많이 했고, 저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도 많았죠. ‘대체 먹고살려고 그러느냐고요. 심지어 저희 지도교수님도 처음에는 가야 해요?’라고 하셨어요. 공부가 좋아서 가는 좋지만, 돌아왔을 자리를 잡을 있을지 확신할 없으셨던 거죠. 인생에서 가장 고민이 많았던 때였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공부를 완성하기 위해 인생을 던져볼 것인가, 아니면 정도에서 만족하고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족과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갈 것인가. 결국 무모하게 그냥 떠났죠. 그리고 도착한 다음 날부터 바로 후회했습니다.(웃음)”

 

-어떻게 철학에서 출발해 그리스 고전에 빠지게 됐습니까.

 

그전까지는 철학 공부를 하느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치밀하고 정제된 글을 주로 읽었죠. 그러다 호메로스를 만나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어요. 투박하고 거칠지만, 씩씩한 기운이 있었어요. 원래 사람들 앞에서 운율에 맞춰 낭송하던 서사시이기 때문에, 구술 문학 특유의 현장감이 살아있죠. 이번에 번역하면서도 호메로스만의 독특한 운율과 리듬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횡격막으로 궁리? 낯섦까지 번역하고 싶었다

 

-고대 그리스어의 낯선 표현도 그대로 살리셨습니다. 예를 들면횡격막 깊이 궁리하라’ ‘횡격막을 설득하지 못했지같은 표현이요.

 

호메로스의 인간들은 생각하고 궁리하고 고심하는 장소가 심장이나 뇌가 아니라, 횡격막이었어요. 지금 사람들에겐 이상하게 들리니까, 외국 번역에서도 대개정신(mind)’이나영혼(soul)’처럼 자연스럽게 옮깁니다. 그런데 저는 독자가어떻게 횡격막으로 생각해?’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그러한 낯섦 속에 호메로스 시대의 인간이 우리와 얼마나 달랐는지,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담겨 있으니까요. 편안하게 읽히는 번역은 이미 많이 나와 있으니, 권쯤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멈춰 고민하게 하는 번역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출간까지 22년이나 걸린 이유는 뭔가요.

 

“‘이거 괜히 냈다가 욕먹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횡격막으로 번역했다가 욕먹으면 어쩌나 싶고.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고 계속 읽어보면서그래도 횡격막으로 해야 같은데’, ‘횡격막으로 하면 어때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제 후면 은퇴인데, 누가 뭐라고 하면 얼마든지 답해주겠다는 심정으로 내놨어요.”

 

-영화 편으로 평생 연구해온 작품이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운이 좋았죠. 고전을 공부하면서 어떤 일이 성공하려면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젊었을 때는 무엇을 이뤄내겠다는 의지와, 그것을 실현할 있는 노력, 가지만 있으면 같았죠. 그런데 살다 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저와 비슷하게 의지를 갖고 다른 영역에서 오랫동안 공부하신 분들도 많은데, 여러모로 저에게 운이 많이 따라줘서 이런 기회까지 오는구나 싶습니다.”

 

쉰이 돼서 얻은 정규 직장

 

-한국에서 그리스·로마 고전 연구자로 살아가는 어떤가요.

 

저야 그저 고전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지만, 여전히 연구 환경은 열악합니다. 국내에는 그리스·로마 고전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연구자를 길러내는 서양고전학과가 곳도 없습니다. 저도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에 전임 교원으로 자리를 잡은 때였어요. 친구들은 은퇴를 준비하기 시작할 나이에 저는 그제야 취직을 셈이죠. 저처럼 운에 기대지 않아도, 좋은 인재가 의지와 노력만 갖고도 마음껏 공부하고 연구를 이어 나갈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합니다.”

 

-인공지능(AI) 무엇이든 만에 대답해 주는 시대에, 3000 고전을 공부하는 일이 여전히 필요할까요.

 

고전의 힘은 답을 주는 있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새로운 답을 찾아가도록 질문을 던지는 있죠. AI 우리에게 답을 내놓지만, 스스로 질문하지 않습니다. 질문은 우리가 던져야죠. AI 활용하는 방법 역시 결국 얼마나 좋은 질문을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고전을 읽으면 깊이 있고 치밀한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울 있습니다. 시간 때마다 고전을 읽으면서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를 고민하고, 질문하는 습관을 기른다면, AI 훨씬 활용할 있겠죠. AI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오히려 고전은 우리에게 더욱 필요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전은 질문을 던지는 힘을 키워주니까요.”

 

오뒷세이아

 

오뒷세이아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그린 호메로스의 장편 서사시로, 고대 그리스어 발음에 가깝게 옮긴 표기다. ‘오디세이 영어식 표기이자 크리스토퍼 놀런 영화의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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