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열대야에 취약층 몰려
4일 오후 1시,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4층의 휴식 공간 ‘비선루’. 폭염을 피해 공항을 찾은 6080 피서객 30여 명으로 꽉 차 있었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가져온 간식을 함께 먹으며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73)씨는 “요즘 폭염 때문에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며 “다행히 (경로우대 덕분에) 지하철을 타면 공짜로 시원하고 볼거리가 많은 공항까지 올 수 있어서 요즘 매일 오고 있다”고 했다.
같은 날 제2터미널도 상황이 비슷했다. 오전부터 터미널 안에 있는 교통센터(실내 버스대기 공간)에 하나둘씩 피서객이 도착하더니, 점심쯤엔 5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자리를 잡은 뒤 가방에서 각자 챙겨온 베개와 돗자리, 부채, 도시락을 꺼냈다. 먼저 와 있던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인천국제공항이 취약 계층의 ‘무더위 쉼터’처럼 되고 있다. 낮에는 고령층 피서객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노숙인과 에어컨을 켤 형편이 안 되는 취약 계층이 찾아와 잠을 청하고 있다. 냉방 시설이 24시간 운영될 뿐 아니라, 특히 65세 이상은 지하철과 공항철도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교통비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매일 출퇴근하듯 공항을 방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왔다는 금모(84)씨는 “전기 요금이 걱정돼 요즘 같은 날씨에도 집에선 에어컨을 켜지 못한다”며 “은행은 오래 머물면 눈치가 보이고, 집 근처에는 무더위 쉼터도 없어 이곳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서울·인천 등 인근 지역은 물론, 경기 의정부 등 대중교통으로 1시간 이상 걸리는 지역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다. 또 바둑판이나 장기판을 가져와 친목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강모(80)씨는 “날씨가 덥더라도 집 안에만 있으면 답답한데, 공항은 탁 트여 있는 데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도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밤이 되자 공항의 풍경에 변화가 생겼다. 밤 8시쯤 다시 찾은 제1터미널 비선루에는 낮 동안 자리를 채웠던 피서객 대신 노숙인 4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인을 알 수 없는 짐들도 무더기로 놓여 있었다. 비슷한 시간 제1터미널 교통센터에서도 노숙인 7명이 누워 자고 있었다. 6개월 전부터 이곳을 찾고 있는 한 노숙인은 “공항은 24시간 열려 있고 별다른 소란만 일으키지 않으면 쫓아내지도 않는다”며 “서울역과 달리 노숙인끼리 싸우는 일도 거의 없고, 더 시원하고 쾌적해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공항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은 오전 9시쯤 일어나 공항 곳곳을 돌아다니다 다시 오후 6시쯤 각자의 자리로 돌아온다고 한다.
열대야 때문에 공항을 밤에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천에 사는 이모(70)씨는 복지관 동료들에게 “공항에 가면 시원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날 처음 공항을 찾았다고 한다. 이씨는 “요즘엔 에어컨이 없으면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는데, 복지관도 저녁이면 문을 닫는다”며 “오늘은 공항에서 자고 아침 첫차를 타고 돌아갈 생각”이라고 했다.
인천공항공사는 늘어난 피서객과 노숙인 때문에 난감해하고 있다. 휴게 공간 부족 등으로 공항 이용객들의 불편이 발생하고 있지만, 공공 시설인 만큼 단지 오래 머문다는 이유로 공항 피서객과 노숙인을 내보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2터미널 교통센터는 피서객들로 꽉 차 공항 이용객들과 상주 직원들이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빈번해졌다고 한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현재로선 퇴거를 요청할 수도 없고, 실제 공항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시설 관리에 더 신경 쓰는 것 말고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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