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란/(사)한국문협 벤쿠버지부 회원
한 알의 씨앗이 흙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에게는 추락처럼 보일
그순간을
씨앗은 조용히 받아 들이고 있었다.
스며드는 어둠은
그에게 처음 머무를 자리였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씨앗은 묵묵히 숨을 고른다.
누구의 설명도, 어떤 손길도 없이
그 고요 속에서 제 얼굴을
잃지 않는다.
나는 그 침묵의 단단함 앞에서
오래 멈춰 섰다.
그러던 어느 날 ,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틈에서
작은 떨림이 흙을 밀어
올린다.
선언도 , 장면도 없다.
잃지 않으려는 마음 하나가
새 계절을 열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시작을 밝은
자리에서 찾는다.
빛이 있어야 길을 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씨앗은 말한다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 ,
조용한 결심 하나가
새로운 시간을 연다고.
그 가르침을 마음에 새긴다.
시작이란 빛을 향해
뛰어오르는 일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겠다는
한 줄기 결심이라는 것을.
그 결심이야말로
삶을 다시 여는 가장 깊은
힘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흙 속을
지나고 있다.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형태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
누군가는 작은 떨림을 품은 채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씨앗은 묵묵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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