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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 갱단의 나라 아이티, 어떻게 월드컵에 돌아왔나

김효선 기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6-06-04 13:57

아이티 남자 축구대표팀이 오는 13일 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열리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 나선다. 2021년 대통령 암살 이후 치안 붕괴와 정치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뤄낸 52년 만의 월드컵 복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아이티 축구가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월드컵 진출에 성공한 과정을 소개했다. 아이티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2021년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암살 이후 사실상 국가 기능이 마비됐고,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상당 지역은 무장 갱단이 장악하고 있다. 주요 도로가 통제되면서 수도는 사실상 고립됐고, 납치와 강도, 갈취가 일상이 됐다. 병원과 학교는 피란민 수용시설로 바뀌었고, 2024년에는 공항 인근에서 항공기를 향한 총격 사건이 잇따르면서 주요 항공사들이 운항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은 축구대표팀 운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이티는 월드컵 예선 기간 홈경기를 자국에서 치르지 못했다. 대표팀은 홈경기 때마다 약 800km 떨어진 카리브해 섬나라 커라소에서 경기를 치렀다. 아이티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프랑스 출신의 세바스티앙 미녜 감독은 아직 아이티를 방문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리그가 치안 문제로 수시로 중단되면서 대표팀도 해외파 중심으로 꾸려졌다. 현재 선수단 대부분은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 해외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디아스포라 출신이다. 일부 선수들은 과거 프랑스 등 다른 국가 연령별 대표팀에서 뛰다가 아이티를 선택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울버햄프턴 소속 미드필더 장리크네르 벨가르드다. 프랑스 태생인 그는 프랑스 연령별 대표팀을 거쳤지만 지난해 아이티 국가대표로 뛰기로 결정했다. 선덜랜드 공격수 윌슨 이시도르 역시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아이티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FT는 아이티 축구협회가 해외에 흩어진 선수들을 설득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고 전했다. 모니크 앙드레 아이티 축구협회장은 FT에 “해외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많지만 그들이 아이티 대표팀을 신뢰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며 “훈련 캠프와 원정, 선수 소집 등 모든 과정에서 추가적인 비용과 행정적 노력이 필요했다”라고 말했다.

아이티 대표팀의 선전은 외교적 효과도 낳고 있다. 영국 주재 아이티 대사관은 영국 내 아이티계 선수들을 발굴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축구협회와 긴밀히 협력했다. 아나이스 마누엘 주영 아이티 대사는 FT에 “사람들이 아이티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월드컵 덕분에 아이티가 직면한 문제를 설명할 기회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월드컵 진출 이후에도 현실적인 어려움은 이어지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아이티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자국에 거주하는 미드필더 우덴스키 피에르는 최근에서야 미국 방문 비자를 발급받아 월드컵 참가가 가능해졌다. 일부 아이티 축구 관계자들도 여전히 미국 입국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해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이티를 포함한 일부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는 포고령에 서명한 바 있다.

FT는 아이티 내부에서 이번 월드컵이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사회 재건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이 25세 이하인 아이티에서 축구는 오랜 기간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갱단 폭력이 확산하면서 거리 축구 문화마저 사라졌다는 것이 현지 체육계의 설명이다. 현지 청소년 축구 클럽을 운영하는 제임스 루이 샤를 감독은 “내가 어릴 때는 골목마다 축구하는 아이들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총성만 들린다”며 “이번 월드컵이 아이티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아이티는 이번 대회에서 스코틀랜드, 브라질 등 강호들과 맞붙는는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열세라는 평가가 많지만 아이티 국민들은 이미 본선 진출 자체를 하나의 기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반세기 넘게 월드컵 무대에서 사라졌던 나라가 다시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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