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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빼고 영어만 쓴 에어캐나다 CEO 불명예 퇴진

유진우 기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6-03-31 09:36

加 정부, 차기 수장 조건 '이중언어' 공식화
세계 7위급 대형 항공사 에어캐나다의 최고경영자(CEO) 마이클 루소가 ‘이중언어’ 논란 끝에 불명예 퇴진한다. 30일(현지시각) 에어캐나다는 루소 CEO가 올해 3분기 말 퇴임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퇴는 22일 발생한 뉴욕 라과디아 공항 사고 직후 루소가 공개한 추모 영상이 도화선이 됐다. 이날 에어캐나다 익스프레스 여객기가 소방차와 충돌해 조종사 두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자, 루소는 이에 대한 사과와 애도를 표하는 4분 분량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에서 루소가 사용한 프랑스어는 봉쥬르(안녕하세요)와 메르시(고맙습니다) 두 마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이번 사고로 숨진 조종사 중 한 명이 퀘벡 출신 프랑스어 사용자였다는 점은 대중의 공분을 키웠다. 캐나다 미디어들은 루소가 2021년 몬트리올 상공회의소 연설 당시 영어 위주 발언으로 비판을 받자 “프랑스어를 배우겠다”고 공개 약속했던 점을 지목했다.

퀘벡 주민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거센 분노가 일자 캐나다 내각까지 전면에 나섰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이날 루소 퇴진 발표 직후 “결정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카니 총리는 또 “차기 CEO는 반드시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이중언어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는 에어캐나다가 지닌 국가적 상징성을 고려할 때 당연한 전제 조건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캐나다 내부에서 확산하는 탈(脫)미국 정서도 루소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선포한 이후 캐나다에서는 미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유난히 거세졌다. 캐나다 정부는 무기 구매 예산 70%가 미국산에 편중된 점을 문제 삼으며 국방 조달 분야에서 미국산 비중을 대폭 줄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카니 총리 역시 캐나다가 더 이상 타국에 의존할 수 없다는 자립 노선을 명확히 했다.

캐나다는 다문화주의와 이중언어 체계를 국가 존립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루소 퇴진은 영어 일변도로 이런 가치를 훼손한 인물에게 공적 영역에 가까운 대기업의 키를 맡길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의 발현이다. 에어캐나다는 공식 언어법을 적용받는 사실상의 공공 서비스 기업이다. 루소의 영어 중심적 태도가 단순한 개인 취향이나 선호도 문제가 아니라 캐나다의 새로운 국가 전략에 역행하는 행보로 비쳤다는 의미다.글로브앤메일은 전문가를 인용해 ‘탈미국 분위기 속에서 영어 중심 미국식 경영 질서에 익숙한 루소 모습이 캐나다 정체성을 수호하려는 국민 정서와 충돌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에어캐나다 본사가 자리잡은 퀘벡주는 올해 10월 5일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프랑스어와 정체성 이슈는 현지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다. 현재 분리독립을 줄곧 주장해 온 파르티 케베쿠아(PQ) 지지율이 급상승하는 상황에서 집권 세력과 야당 모두 표심을 얻기 위해 국가적 자부심을 자극하고 있다.

루소의 경영 실적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그는 팬데믹 기간의 항공업계 위기를 돌파하고 연금 구조조정과 에어로플랜 인수 등 굵직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제임스 맥가라글 RBC 캐피털 마켓 분석가는 "여러 위기 상황에서 루소가 강력한 경영 능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국가적 자부심이 걸린 언어와 정체성 문제 앞에서는 좋은 실적도 힘을 쓰지 못했다. 이는 캐나다 대형 기업을 이끄는 리더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단순히 이윤 창출을 넘어 문화적 존중으로 확장됐음을 시사한다고 캐나다 시사주간지 맥린스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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