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장 통번역사 없어진 원년"
통역사, AI 대체 1순위 직종
역설적으로 AI 활용 외국어 학습은 인기
구글도 시장 진입
통역사, AI 대체 1순위 직종
역설적으로 AI 활용 외국어 학습은 인기
구글도 시장 진입

AI를 활용해 외국어를 공부하는 모습. /구글 제미나이 생성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서 많은 산업이 지각 변동하고 있지만, 가장 요동치는 분야가 어학 계열이다.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제미나이, xAI의 그록 등 AI챗봇은 영한 전환, 한영 전환 등을 자연스럽게 실행하며 전 세계 언어 장벽을 허물고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구글 번역, 파파고 번역 등을 활용했고, 이보다 더 낫다는 딥엘이 나오자 환호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문맥에 맞게 자연스럽게 번역해주는 AI 챗봇과 전문 통번역 소프트웨어를 더 활용한다. 한 외국계 AI 기업 임원은 “외신 번역, 본사와의 소통 등이 챗GPT 번역 기능 덕분에 너무 쉬워졌다”고 했다. 이 때문에 외국어 교육 무용론이 고개를 든다. 어차피 AI가 실시간 통·번역을 해주며 소통의 장애물을 없애줄 것이니 어렵게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AI를 활용해 외국어 학습을 돕는 도구도 급증하고 있다. AI를 통해 학습자 수준을 실시간 파악해 알맞은 학습량을 제시하고, 학습자가 자연스럽게 익힐 때까지 무한 반복 학습이 가능한 AI 기반 어학 앱이 많다.
이 부분에서 물음표가 생긴다. AI로 인해 전문 통번역 수요는 줄어드는데, AI를 활용한 어학 교육은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과연 AI는 영어 교육을 없앨까, 아니면 더 늘릴까?
지난 7월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2025 인텔 AI 서밋 서울에서 스크린을 통해 AI 동시 통역이 진행되는 모습. /플리토 블로그 캡처
◇AI에 1순위로 대체되는 통번역사
최근 한 외국계 기업 임원은 “올해가 행사 통번역 직종이 없어진 원년”이라고 했다. 최근 몇 달간 영어로 진행되는 대외 행사 3건에 가보니 모두 통번역사 대신 실시간 AI 통번역 서비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외국인 발표자가 무대에 오르면, 참가자들은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사람 통역사 말을 듣는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헤드폰도 없어졌다. 외국인 발표자가 무대에 오르자 무대 좌우측 대형 모니터에는 실시간 한글 통역 자막이 떴다. 그는 “AI가 일자리를 대체한다고 많이 알려졌지만, 막상 피부에 닿으니 공포감이 있다”며 “통번역사 한 명 키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 AI가 이를 빠르게 대체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테크 업계는 오랫동안 자연스러운 자동 통번역 서비스를 개발해왔다. 하지만 ‘2%’가 부족했고,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는 사람 통번역을 통했다. 7~8년 전만 해도 “원어민이 100점이면 통역사는 90점, AI는 70점”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AI의 발전으로 통번역 시장이 뒤집어지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지난달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진은 ‘AI와 협력하기: 생성형 AI의 직업적 영향 측정’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AI가 적용될 수 있는 직업 40가지를 선정했는데, 1위에 통번역가가 꼽혔다. 연구진은 “이들의 업무 활동 중 98%가 AI로 빈번하게 수행되는 과업과 겹치고, AI가 상당히 높은 과업 완료율을 보인다”고 했다. 2위는 역사학자, 3위는 승무원 및 안내원이었다.
행사장 통번역 외에 외국인과 일대일 대화에서도 AI 통역 기능이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테크 기업들은 이러한 실시간 통번역 기능을 스마트폰 등 기기에 적극 탑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스마트폰에 AI 실시간 통역 기능을 적용했다. 상대방이 영어로 말을 한다면 AI가 자동으로 이를 한국어로 통역해 음성으로 전달한다. 설정을 통해 A에게 걸려온 전화는 항상 영어로, B에게 걸려온 전화는 항상 일본어로 대화할 수도 있다. SK텔레콤의 AI 서비스 ‘에이닷 통역콜’도 비슷한 기능을 제공한다.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 등 4개 언어에 대한 실시간 통역이 제공된다.
테크 업계에선 수많은 직업 중 통번역 직군이 가장 먼저 AI로 대체되는 이유로 표준화된 언어 체계와 반복적인 언어 구조를 꼽는다. 정형화되고 대량의 데이터를 가진 언어가 AI 대규모 언어 모델(LLM) 학습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또 틀렸을 때 윤리적 문제 등이 적어 더 적극적으로 AI 도입이 이뤄지는 측면도 있다. 통번역 기술이 규칙 기반 기계 번역, 통계 기반 기계 번역을 거쳐 문장 단위로 번역하는 NMT(신경망 기계 번역·Neural Machine Translation)가 적용되면서 급속도로 발전한 것도 배경이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AI 통번역 툴을 사용하는 것이 사람 통번역사를 활용하는 것보다 월등히 싸고, 품질도 봐줄 만하다”며 “앞으로 오프라인 행사 등에서 사람 통번역사를 보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삼성 갤럭시 S24에 적용된 실시간 통역 전화 /삼성전자
◇역설적으로 AI 활용한 언어 학습은 인기
AI가 통번역의 기능을 차지하며 외국어 교육 무용론이 언급되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AI를 활용해 외국어를 더 쉽고 효과적으로 배우려는 수요와 관련 서비스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올 2월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작년 11월 기준 국내 영어 교육 상위 5개 앱의 총 월간활성사용자수(MAU)는 156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보다 90.2% 증가한 것이다. 1위 듀오링고는 1년 전 MAU 18만명에서 62만명으로 344% 증가했고, 2위 말해보카도 22만명에서 29만명으로 7만명이 늘었다. 3위 똑똑보카는 MAU 11만명, 4위 스픽은 MAU 10만명이 증가했다.
이 앱들의 MAU가 늘어난 것은 AI를 적극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듀오링고는 2023년 오픈AI의 GPT-4를 앱 내에 도입해 AI와의 회화, 오답 해설 기능을 탑재했다. 스픽도 2022년 오픈AI와 기술 제휴를 맺고 생성형 AI의 언어 학습 활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퓨처마켓인사이츠에 따르면 2025년 18억3500만달러(2조5600억원) 규모였던 세계 AI 언어 튜터 시장은 매년 14.2%씩 성장해 2035년 69억2320만달러(9조6800억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의 AI 기반 언어 학습 기능. /구글 유튜브 캡처
지속 성장이 예상되자 구글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구글은 26일(현지 시각) 번역 앱에 AI 기반 언어 학습 기능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사용자 언어 수준을 반영해 시나리오별 듣기, 말하기 연습을 할 수 있다. AI가 사용자 학습 수준을 판단해 학습 단계를 추천한다.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학습이 제공된다.
AI 언어 학습 서비스가 각광받는 이유는 완벽한 개인 맞춤 교육이 진행되고, 24시간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글로벌 마케팅 업체 차장은 “AI 챗봇으로 중국어 공부를 하는데 예전에는 AI 발음이 조금 이상했다면 요즘은 현지인과 똑같다”며 “특히 아무 때나 언어 공부를 할 수 있고, 실수해도 무한 반복해 교정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공식적이고 기본적인 것은 AI, 복잡한 건 사람
테크 업계에선 어학 학습 시장과 통번역 시장이 AI로 인해 이분화될 것으로 본다. AI는 문장의 맥락과 문화적 배경, 화자의 감정 등 비언어적이고 미묘한 뉘앙스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또 언어는 그 언어가 속한 문화와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AI가 이를 대체할 수 없다. 영어를 더듬거리며 눈을 마주치고 말하는 것과 번역기를 돌려 의사소통하는 것은 상대방과의 감정 교류에 큰 차이를 보인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공식적이거나 기초적인 통번역은 AI가 담당하고, 복잡한 계약이나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며 뉘앙스가 중요한 자리에선 전문적인 사람 통번역이 활용될 것”이라며 “AI로 인해 ‘영어를 못 해도 되는 시대’가 아니라 ‘영어를 더 잘할 수 있는 시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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