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골프산업 영향력 3년 연속 1위
골프존그룹 김영찬 회장
골프존그룹 김영찬 회장
골프를 낮에도 치고, 밤에도 친다. 짜장면 먹으면서도 치고, 치킨 뜯으면서도 친다. 실내에서 골프를 즐기는 ‘스크린 골프장’이 대중화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스크린 골프장에서 연간 9700만회(2024년 골프존 기준) 라운딩을 한다. 하루 평균으로 계산하면 26만5000번이다.
스크린 골프의 종주국은 바로 한국이다. 국내 스크린 골프 1위 업체 ‘골프존’이 한국에서 개발해 키운 스크린 골프는 미국·일본·중국·베트남 등 해외로 뻗어나가고 있다. ‘K골프방’ 수출이다. 세계 곳곳에서 외국인들이 스크린 골프장에 모여 피자와 맥주를 즐기며 골프를 친다.

김영찬 골프존그룹 회장이 대전 유성구 ‘골프존 조이마루’에 있는 퍼팅 연습 그린 위에 누워 있다. 아시아 골프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3년 연속 선정된 그는 스크린 골프장으로 골프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미국 골프 전문지 골프아이엔씨(Golf Inc.)는 올해 5월 ‘아시아 골프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골프존 창립자인 김영찬(79) 골프존그룹 회장을 선정했다. 3년 연속 1위다. 그는 50대 중반 늦깎이 창업에 도전해 매출 1조원대 기업을 키워냈다. 김 회장은 “창업 당시만 해도 100만명 수준이었던 골프 인구가 600만명 이상으로 늘었다”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값비싼 골프채가 없어도 1인당 1만~2만원만 내면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춘 것이 우리의 성과”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 경영이나 골프나 중요한 것은 거리보다 방향성”이라고 강조했다.
◇나이 50 넘어 시작한 두 번째 인생
김 회장은 2000년 5월 대전에 골프존을 세웠다. 시작은 소박했다. 일을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소일거리를 찾아나섰던 것이다. 김 회장의 나이 54세였다.
-50세가 넘는 나이에 창업이라니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197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9시 뉴스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어요. IMF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은퇴하면 뭘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앞으로 3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일을 그만두면 확 늙겠다 싶었거든요.”
-처음부터 스크린 골프라는 아이템을 생각한 건가요?
“처음부터는 아니었죠. 삼성전자에서 시스템사업부장으로 있으면서 팩시밀리와 음성편지시스템(VMS·Voice mailing system) 같은 기계를 팔았어요. 대전 지역에서 팔지 못한 VMS가 있었는데 처남이 돈을 주고 인수했어요. 그러고는 작은 가게를 열었죠. 예전 700전화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돼요. 야구 선수 박찬호 음성 하나로 하루에 100만원씩 벌었어요. 저도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처남과 함께 일에 뛰어들었어요.”

김영찬 골프존그룹 회장이 드라이버를 들고 스크린 골프장에 섰다. 해외에서도 스크린 골프라는 한국 문화를 전파한 덕에 전 세계 64국의 골퍼들은 오늘도 스크린 골프장에서 날씨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골프를 친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휴대전화가 대중화하기 전인 1990년대 등장한 700전화는 유료 ARS 서비스다. 30초당 50~200원의 정보 이용료를 내고 최신 가요나 뉴스 감상, 연예인 목소리나 공포·유머 이야기를 청취하는 것이었다. 김 회장은 “경쟁이 과열되기도 했고, 퇴폐적인 콘텐츠로 흘러가기에 과감히 관두고 다른 사업 아이템을 찾다 골프 시뮬레이터를 새 사업 아이템으로 생각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일하면서 골프 칠 기회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골프에 대한 관심도 컸다. 대학에서 기계공학과를 전공한 만큼 기계도 좋아했다.
-스크린 골프라는 아이템은 어떻게 생각해낸 건가요?
“회사원 때부터 골프는 쳤는데, 연습장에서 백번 연습해도 비싼 돈 주고 필드에 나가는 것과는 다르더라고요. 드라이버 골프채를 파는 사람들이 새 드라이버 성능이 더 좋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미국에서 ‘시뮬레이터’라는 기계를 들여왔어요. 기계 하나당 1억원이 넘는데, 그 기계 1대를 설치한 골프 연습장이 대전에 있었습니다. ‘저것만 있으면 필드에서처럼 연습할 수 있겠다’ 싶어서 프로한테 사정사정해서 연습장 문 닫는 밤에 찾아가 기계를 분해했어요. 밤새 어떻게 생겼나 들여다보고, 다시 조립해 놓고 돌아오는 나날이 반복됐죠.”
2000년 5월, 직원 5명으로 골프존을 창업했고, 같은 해 12월 첫 번째 시제품을 내놓았다. 골퍼들을 초청해 시연하게 하고, 언론에서도 취재를 왔다. 첫 시연회는 그야말로 ‘우당탕탕’ ‘와장창’이었다. 시연하던 사람들이 기껏 개발해 낸 센서를 박살 내고, 공이 인식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첫해에 70대를 팔아 매출 10억원을 기록했다. 그는 “골프 연습장이 여기저기 생기기 시작했는데 ‘다른 연습장에 없는 기계가 있다’는 걸 내세우고 싶은 사람들이 기계를 사 갔다”고 말했다. 입소문이 퍼지는 속도와 비례해서 빠르게 매출이 늘어났다.
-기술은 진화했나요?
“초기 모델은 LED 센서가 위아래로 빛을 쏴 골프채가 지나가면서 빛이 막힌 속도와 시간을 계산했는데 스크린에서 150m라던 거리가 필드에서는 170~180m 나가기도 했어요. 하지만 레이저와 레이더를 활용한 센서 기술이 점점 더 발달하고, 카메라로 공과 골프채의 방향을 찍으면서 정확도가 한층 높아졌습니다. 과거 정확도가 40~50%였다면 지금은 90%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스크린 골프장에서 펼쳐지는 '2025 신한투자증권 G투어' 4차 대회 우승을 차지한 김홍택을 축하하는 선수들. /골프존
골프존은 골퍼의 스윙을 녹화해 반복해서 보여주는 기술과 실제 골프장을 갖다 놓은 듯한 고화질 화면, 움직이는 스윙 플레이트 같은 신기술을 선보이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현재 골프존 직원의 절반 이상은 연구·개발 인력이다. 골프존은 골프 시뮬레이터 관련 특허만 742개를 보유한 ‘특허 강자’로 꼽힌다. 경쟁사들이 특허를 몰래 베껴 영업하다가 수십억 원대의 배상금을 내놓기도 했다. 같은 스크린 골프장 매트에 공을 놓고 치더라도, 골프공이 러프나 벙커 같은 지형에 빠진 상황에서는 비거리가 줄어들도록 설계한 골프존의 특허를 침해했던 것이다. 지난 2023년 특허법원은 “카카오VX와 에스지엠(SG골프)이 장기간 특허권을 침해하면서도 일관되게 침해 사실을 부인해 왔다”며 “골프존의 특허 기술을 모방한 제품을 모두 폐기하고, 카카오VX는 19억2000만원, 에스지엠은 14억6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거리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
그는 자신의 경영 철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거리가 짧으면 1~2타를 손해 보지만, 방향이 틀리면 3~4타를 한꺼번에 잃는다. 기업 경영도, 골프도 거리보다 방향성이 훨씬 중요하다.” 한 번에 장타를 날리지 못하더라도 옆으로 새지 않고 또박또박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현명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거리가 짧으면 조금 손해 보지만, 방향이 틀리면 크게 잃는 법이다.
-사업이 벙커에 빠진 적은 없나요?
“왜 없었겠어요. 사업을 시작할 때 우린 개발만 하기로 하고,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판매 권한을 줬어요. 스크린 골프장 붐이 일자 자기 권역 상관없이 물건을 팔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점주 입장에서는 전 재산 털어서 스크린 골프장 차렸는데 근처에 같은 매장이 또 생긴 거죠. 2015년쯤부터 점주들이 회사에 찾아와 시위하고 난리가 났어요. 저희가 상권 보호 지침을 만들지 않아 벌어진 일이죠.”

아시아 골프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3년 연속 선정된 그는 스크린 골프장으로 골프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벙커에서 어떻게 탈출했나요?
“1년간 기계를 하나도 안 팔았습니다. 매장을 늘리는 대신 기존 점주들과 상담하고, 상권 보호 방안을 만들었지요. 2019년부터는 저희가 직접 판매도 담당하고 있어요.”
벙커에서 탈출한 골프존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09년 처음 진출한 일본과 2011년 첫발을 뗀 중국에서 고전을 하기도 했으나 현재 미국·중국·베트남 등 전 세계 64국에서 350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해외 법인을 포함한 골프존 그룹의 매출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국가별로 골프를 즐기는 방식이 다른가요?
“미국에서는 ‘골프존소셜’이란 이름의 스포츠펍 콘셉트 매장을 운영합니다. 우리는 각자 방에 들어가 문 닫아 놓고 치지만 미국에서는 탁 트인 매장에 있는 바에서 술 한잔 마시고, 파티처럼 다 같이 어울리는 형태예요. 가족 단위 손님도 많고요. 일본은 스크린 골프장을 게임장이 아닌 연습장으로 사용합니다. 18홀 단위가 아닌 시간제로 돈을 받고, 무인화하기도 하죠. 라운드별 점수에 목매고, 내기 좋아하는 건 한국과 중국 모두 같은데 중국의 경우 방을 아주 크게 만들고 관람객들이 머무는 장소까지 만들어요. 기업이 특정 방을 독점해 손님 접대하는 데 쓰기도 하죠.”

미국 뉴욕주에 있는 스포츠 펍 형식의 스크린 골프장 ‘골프존 소셜’. /골프존
그는 “우리는 스크린 골프 기계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 없던 ‘한국 문화’를 수출하는 기업”이라면서 “테니스나 러닝처럼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트렌드’가 우리의 가장 큰 경쟁자”라고 말했다.
◇대중화를 목표로
골프존의 설립 목표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하자’다. 하지만 비용 문제는 골프라는 운동의 오랜 숙제다. 1924년 10월 8일 조선일보에는 “백성의 생활을 위협하는 배부른 양반들의 놀이터, 주목할 ‘골프터’ 문제”라는 기사가 보도됐다. 한국에 첫선을 보일 때부터 ‘배부른 양반들의 놀이’로 취급됐던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골프 인구는 약 660만명 수준. 전 국민의 10% 이상이 즐기지만 여전히 비싼 운동인 게 사실이다. 대한골프협회가 발표한 2023 한국골프지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골프장 이용자는 월평균 45만8000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골프는 왜 돈이 많이 드는 건가요?
“필드 이용료인 그린피는 수요·공급에 따라 몇 만 원 수준에서 몇 십만 원까지 뛰고, 캐디피와 카트비는 수도권 아닌 지방에서도 1인당 6만~7만원씩 내야 해요. 골프가 더 대중화되려면 이용료가 10만원 미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용료가 저렴해지면 골프장 운영 수익도 줄어들 텐데요?
“골프 인구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는 게 골프 산업 전체에 도움이 됩니다. 해외처럼 캐디 없이도 이용할 수 있고, 카트피를 저렴하게 공급해야 골프 인구가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필드에서 스스로 장애물을 피해 다니면서 골퍼를 따라가는 카트와 홀이 바뀔 때마다 코스를 설명해주는 골프존 앱 내 서비스를 개발 중이에요. 캐디피와 카트비 부담을 낮출 수 있죠.”

골프존이 중국에서 처음 선보인 시티골프. 티샷 등을 스크린에서 한 뒤 공이 주변 근처에 떨어지면 스크린장이 열리며 그린 구역이 나타난다. 그린까지 걸어가 실제처럼 퍼팅할 수 있다. /골프존



골프존이 새롭게 선보이는 신사업은 도심형 골프장인 ‘시티골프’다. 작년 9월 중국 톈진(天津)에서 처음 선보인 시티골프는 스크린 골프의 장점과 필드의 장점을 결합한 형태다. 티샷부터 어프로치까지는 스크린에서 진행하고, 그린 주변에 공이 떨어지면 스크린이 열리면서 실제 그린이 나타난다. 날씨나 시간 제약 없이 골프를 즐기면서 실제 필드 같은 경험도 즐길 수 있다. ‘톈진 시티골프’는 5000평 규모의 실내 공간에 18개의 스크린과 그린을 조성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 총국은 ‘2024년 중국 스마트 스포츠 대표 사례’로 골프존의 시티골프를 선정했다. 김 회장은 “멀리 차 타고 가지 않고도, 골프가 주는 일반적인 가치를 느끼면서 필드의 단점인 날씨·기후·온도·시간과 고비용 문제까지 해결 가능하다”며 “한국에서도 올해 안에 시티골프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골프 시장을 키우는 것만큼 그가 공을 들이는 일은 골프 꿈나무 육성이다. 2010년 골프존문화재단을 설립한 그는 2015년 사재를 출연해 엘리트 골퍼 양성과 골프 산업 발전을 위한 유원골프재단을 설립했다. 유소년 골퍼 90여 명이 재단을 통해 꿈을 키우고 있다.
-더 해보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
“곧 팔순이지만, 골프 치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늘리겠다는 생각을 늘 머릿속에 담고 삽니다. 시티골프가 대중화 속도를 한 번 더 가속화할 거라 생각해요. 골프 인구가 늘어나 관련 산업도 커지고요.”
그의 골프 스코어는 70대 후반 수준. 골퍼들이 꿈꾸는 ‘싱글 플레이어’(핸디캡이 한 자릿수)다.
-언제까지 현업으로 뛰실 건가요?
“아직까지 일주일에 몇 번씩 골프 라운드하는 제 건강 비결이 바로 ‘일’이에요. IT 기업은 40~50대도 쫓아가기 힘들다지만 다행히 골프는 경험과 경륜에서 나오는 아이디어가 쓸모 있는 분야니까요, 하하. 죽을 때까지 일하고 난 뒤 나보다 골프존을 더 잘 알고, 잘 키워낼 사람에게 맡기면 됩니다.”

아시아 골프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3년 연속 선정된 김영찬 골프존그룹 회장은 해외에 스크린 골프라는 한국 문화를 전파했다. 전 세계 64국의 골퍼들은 오늘도 스크린 골프장에서 날씨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골프를 친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김 회장의 아들 김원일 전 골프존 대표는 2014년 골프존 운영에서 손을 떼고 오랜 기간 책만 읽으며 칩거했다. 2020년 서울 청담동에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문학 전문 도서관 ‘소전서림’을 열고, 소전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문학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젊은 작가들의 예술 활동을 후원하는 재단이다. 김 회장은 “꼭 자손에게만 기업을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며 “골프존을 더 잘 키워낼 전문가가 있다면 흔쾌히 맡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금 골프존은 몇 번째 홀에 와 있을까요?
“글쎄요, 이제 전반 9홀을 끝내고 후반전을 시작했으려나요?”
-골프존의 홀인원은 어떤 순간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최후의 목표는 ‘골프존 문화 제국’이에요. 전 세계가 네트워킹을 하며 언제 어디서나 골프존 콘텐츠로 체험하는, 이게 골프존과 내 인생의 홀인원이죠.”
가끔 공이 벙커에 빠져도, OB(Out of Bounds·공이 규정 지역을 벗어난 경우)가 발생해도 새파란 그린 위에 꽂힌 깃발만 보며 똑바로 공을 날리겠다는 그의 경영 철학이 새삼 다시 떠올랐다. 팔순의 현업 골퍼 김 회장이 날린 후반전 티샷이 길게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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