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옥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그동안 거의 매년 한국에 혼자 살고 계시던 어머니를 방문하여 어머니께서 사시는 아파트에서 같이 지내다가 왔다. 작년 우리 부부가 어머니와 8주간 같이 지내고 헤어지기 전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언제 다시 방문할 것인지를 물어보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내년 봄에는 꼭 다시 어머니를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 드렸다. 올해 8월 중순에 만 99세가 되시는 어머니는 다니시던 교회에서 최고령자이셨고, 지금 계시는 너싱홈(요양원)에서도 최고령자이시라고 한다. 작년 우리가 어머니와 같이 지내고 온 지 1달 반 후에 어머니께서는 너싱홈으로 입소하시게 되었다. 작년 방문 때에 했던 어머니와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너싱홈에 계시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하여 이번 봄에 한국을 방문하였다.
평소에 어머니께서는 요양원에는 절대 안 가시겠다고 완강하셨기에, 이번 한국 방문 시에 우리를 만나시고 너싱홈에서 나오시겠다고 할지 동생들이 걱정하였던 것 같다. 너싱홈에 계시는 어머니를 찾아가 뵙고, 어떠하신지 여쭈어보니, 지난 9개월간 적응되시어 너싱홈이 좋다고 하셨다. 입소하신 지 처음 1주일 정도는 사시던 아파트로 가시겠다고 하셨으나, 너싱홈에서 잘 돌보아 드리어 안정되신 것 같았다.
예전처럼 우리와 같이 지내기를 어머니도, 우리도 소망하였으나, 이루어질 수 없었다. 너싱홈에서는 아직도 코로나 감염에 주의하여 모든 간호사, 요양보호사, 직원들이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고 근무하고 있었고, 모든 방문객도 마스크 (KF94, KF95) 착용과 손 소독이 필수였다. 방문객의 체온도 매번 측정하였다. 코로나 팬데믹 때, 코로나 감염으로 너싱홈 입소자 다섯 분이나 사망하는 일이 있었기에 상당히 주의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외박이나 외출로 코로나 감염이 되면, 온 너싱홈에 영향이 되므로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너싱홈에는 모든 바닥이 평면으로 되어 있어서, 어머니께서 워커를 끌고 다니시기에 안전하고 편리하게 되어 있었다. 너싱홈에 입소하시기 전에는 지팡이를 사용하셨는데, 안전을 위하여 워커를 사용하시게 되었고 익숙하시게 되었다. 그런데 일반 아파트에는 침실과 화장실 사이에 얕은 문지방이 있으니, 특히 밤중에 어머니께 위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를 위하여 너싱홈에 계시며 사시는 것이 안전한 일이었다.
우리는 평소에 매주 두 번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한다. 한국 방문 전 영상 통화할 때 이제 몇 주만 있으면 한국에 도착하여 어머니를 만난다고 하면, 어머니의 표정이 밝아 지시며 활기차 지셨다. 우리와 같이 지낼 것으로 기대하며 기다리셨다.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하루라도 외박하실 수 없음을 아시고 어머니는 우리가 만나 뵐 때 슬픈 모습이었다. “너희가 오면 같이 지내고 싶었는데” 하시던 어머니의 서운한 표정과 말씀이 안타까운 여운으로 남아 있다. 예전처럼 어머니와 같이 아파트에서 지내지 못하기에, 일주일에 3번에서 4번 너싱홈에 계시는 어머니를 방문하며 지냈다. 어머니 아파트에서 너싱홈까지 전철을 한 번 갈아타고 가야 했다. 전철 타기 전에 걷고, 전철을 갈아타기 위하여 중간에 걷고, 전철에서 내려서 걷고 하여, 편도 2시간으로, 왕복 4시간 걸렸다. 2시간이나 걸려 너싱홈에 도착하였지만,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벅찬 마음에 피곤을 잊고 다녔다.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오랜만에 처음 만나듯 반갑고 마음이 떨렸다.
“어머니, 지난밤에 잘 주무셨어요?, 아침 식사를 잘 드셨어요?”라고 인사하며 어머니께서 계시는 방으로 들어가 만나 뵈었다. 어머니는 2인용 방을 혼자 사용하고 계셨다. 간호사, 요양보호사, 너싱홈 원장 등 모두 친절하시고 어머니께 잘해 드리고 있어서 감사하다. 너싱홈에 주말에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서, 우리는 컴퓨터를 가지고 가서 텔레비전과 연결하여 주일날에는 어머니께서 다니시던 교회의 예배를 실시간으로 같이 드렸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가요무대, 설교를 같이 시청하였다. 원래 방문 시간은 30분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캐나다에서 어머니 뵈러 왔다고 간청하여, 1시간에서 2시간씩 어머니와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었다. 너싱홈의 노래 부르기 시간에 같이 참여하기도 하고, 우리가 준비해 간 과일로 간식을 모든 입소자가 함께 드시기도 하였다.
캐나다로 오기 전 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할 때, “엄마” 하며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데, 그 광경을 보던 요양보호사가 “엄마라고 부를 수 있으니”하며 자신은 엄마라고 부를 엄마가 없다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99세가 되시는 어머니도 나에게는 언제나 생각만 해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엄마이다. 불과 어머니를 만나고 온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온다. 캐나다로 이민 와서 살기에 수시로 보고 싶은 어머니께 달려갈 수 없어 안타깝고 가슴 한편이 시리고 먹먹해진다. 어머니께서 아침과 밤에 우리 자녀 손들을 위하여 감사하며 기도 드리신다고 하시니 감사하다. 천국에 소망을 두고 믿음 가운데 살아가시는 어머니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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