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아끼려다 범죄 표적
‘설마’ 했던 환전 거래의 덫
‘설마’ 했던 환전 거래의 덫
최근 밴쿠버 한인 커뮤니티에서 대면 환전 거래를 미끼로 한 거액의 사기 사건이 발생해 교민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용의자는 치밀하게 조작된 은행 이체 완료 화면을 제시해 실제 송금이 이뤄진 것처럼 꾸민 뒤, 현금을 챙겨 그대로 도주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어두운 주택가 골목으로 유인 후 발생한 환전 사기
밴쿠버에 거주하는 교민 A씨는 지난 5월 20일 밤 10시 20분경, 코퀴틀람의 한 주택가에서 황당하고도 끔찍한 사기를 당했다. A씨는 아버지가 위독해 급히 한국으로 귀국한 지인의 부탁을 받고, 캐나다 달러를 한국 돈으로 환전하기 위해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통해 접근한 용의자는 당초 어스틴 스트리트 선상의 한 한식당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일이 늦어졌다”며 돌연 2분 거리의 한적한 주택가 골목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피해자 A씨는 “용의자가 도주 경로를 미리 파악하고 계획적으로 장소를 바꾼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조작된 송금 화면 제시 후 현금 들고 차량서 내려
A씨의 차량 안에서 만난 용의자는 “한국에 있는 형이 돈을 송금해 주기로 했다”며 대화를 이어갔다. A씨는 지정된 두 개의 한국 계좌로 나누어 입금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용의자는 “형이 실수를 해서 한 계좌로 돈을 통째로 보냈다”며 캡쳐한 송금 완료 화면을 A씨의 카카오톡으로 전송했다.
그러나 용의자가 제시한 송금 화면은 정밀하게 편집·조작된 가짜 이미지였다. 이미지 속 보내는 사람의 이름 표기(옥/욱)가 비정상적으로 합성되어 있었고, 송금했다는 계좌 역시 존재하지 않는 가짜 계좌였다.
용의자는 송금 실수를 바로잡아 주겠다며 차 안의 분위기를 정신없게 만든 뒤, A씨가 가지고 있던 캐나다 달러를 챙겨 그대로 차 문을 열고 도주했다. 도주 시각은 밤 10시 50분경이었다.
◇15분 남짓한 시간 내 조작··· 공범 개입 의혹도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의문점은 피해자 차량 내부에서 거래가 진행된 약 15~2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정교한 가짜 이체 화면이 제시됐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외부 공범의 개입은 물론, 최근 급증하는 AI 및 디지털 조작 프로그램이 범행에 동원됐을 가능성이 동시에 제기된다.
A씨에 따르면 거래 당시 용의자는 차량 안팎을 여러 차례 오가며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A씨는 “밖에서 통화하는 듯 행동했지만 실제 통화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며 “현장에서 계좌번호와 받는 사람 이름을 듣고 불과 몇 분 만에 정교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혼자 벌인 일인지, 누군가 도움을 준 것인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단순 개인 범행이 아닐 가능성을 의심하게 하는 정황도 확인된다.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캐나다의 유명 환전 사기 용의자 ‘최모 씨’에 대한 제보 글과 추가 피해 사례 모집 글을 올렸는데, 용의자가 해당 게시글을 내려달라고 재차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최모 씨’는 과거 캐나다 여러 지역에서 환전 및 렌트 사기 의혹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여러 차례 언급돼 온 인물이다. 다만 본지 취재 결과, 이번 환전 사기 용의자와의 통화 녹음을 확인한 ‘최 모씨’의 과거 지인은 그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르다는 취지로 진술해 동일 인물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도 연락 이어져··· “돈 돌려주겠다” 주장 반복
사건 이후 용의자는 오픈채팅을 통해 A씨와 계속 연락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까지 용의자는 “직접 만나 돈을 돌려주겠다”, “어딘가에 돈을 숨겨두고 위치를 알려주겠다”, “변호사 사무실을 통해 돈을 전달하겠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아직까지 실제 반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최근까지 이어진 대화에서 용의자는 “모든 일은 혼자 벌인 일”이라며 공범 가능성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용의자는 A씨에게 “큰 돈을 보자 순간 욕심이 생겨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해당 사건은 코퀴틀람 RCMP에 정식 접수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 파일 번호는 26-12580이다. A씨에 따르면 용의자는 키 170cm 초반의 30대 한인 남성으로 추정되며, 당시 모자와 뿔테 안경, 마스크 등을 착용하고 있어 얼굴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웠다.
A씨는 “비슷한 피해를 입은 분들이 있다면 현지 경찰에 추가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신고해야 용의자 특정과 수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교민 사회의 제보와 공동 대응을 호소했다.
최희수 기자 chs@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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