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옥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2001년부터 아버지를 천국으로 환송하시고 한국에 혼자 살고 계신 어머니를 자주 방문하며 살아왔다. 이번 봄에도 남편과 함께 어머니를 방문하여 8주간 같이 살다가 왔다. 주중에는 어머니께서 노인복지관에 있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고 계셨기에, 낮을 제외하고 우리는 같이 지낼 수 있었고, 토요일과 주일에는 온종일 어머니와 같이 지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매년 방문하면서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어머니께서 세월 따라 쇠약해지시는 모습을 보게 되어 마음이 서글퍼졌다. 지난 8월로 만 98세가 되신 어머니는 단기 기억이 감소하셨지만, 여전히 정신력이 강하시고 판단력이 분명하시다. 어머니께서는 얼굴에 주름이 없으시어 보통 같은 연배의 사람들보다 10년 이상 거의 20년도 더 젊어 보이셨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소통의 부재와 격리의 힘든 시간을 보내시면서 어머니께서 몸무게도 빠지시며 갑자기 쇠약해지신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전에는 어머니께서 글을 읽으실 때만 안경을 사용하셨는데 2년 전부터 항상 안경을 착용하심을 보게 되었다. 8년 전부터 걸으실 때 지팡이를 사용하시고 있다.
주말에는 한국에 살고 있는 세 남동생 네가 교대로 어머니를 방문하여 근사한 식당으로 모시고 나가서 점심을 먹고 시간을 같이 보냈다. 하지만 저녁에는 어머니께서 혼자 지내시게 되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셋째 남동생은 대전에 살고 있는데, 오가는 시간만 무려 5시간이어서 모두 최선을 다하며 애쓰며 살아왔다. 한국 방문하면 어머니에게 매일 식사를 준비하여 아침 식사, 저녁 식사, 주말에는 점심까지 해 드리며 지냈다. 주간 보호센터에서 버스가 사시는 아파트 앞까지 와서 오전 9시경에 어머니를 모셔 가고, 오후 5시경에 모셔다 드렸기 때문이다. 버스 타러 가실 때나, 버스에서 내려 귀가하실 때에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다니셨다. 흡사 예전에 어머니가 어린 내 손을 잡고 유치원 버스로 배웅하며 맞이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며 인생이 다시 역으로 되돌아감을 느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엔데믹이 되었다고 하지만, 교회에서는 고령의 성도들이 예배에 참석하시는 것을 장려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져간 랩톱을 사용하여, 주일날에는 유튜브 영상으로 나오는 교회 예배를 실시간으로,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드릴 수 있었다. 5월 둘째 주일은 어버이 주일이었고, 어머니께서는 거의 4년 만에 우리와 같이 교회에 출석하실 수가 있었다. 어버이 주일날에 예배 시간 중에 어버이들께 선물을 드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대표로 앞에 나가서 받으시는 절차가 있었다. 어머니는 교회에서 가장 고령인 권사님이시기 때문이었다.
한국 방문 때 어머니께 아들네와 같이 사시는 것이 어떠하시냐고 여쭈어 보았지만, 어머니께서는 혼자 사시는 것이 편하시다고 늘 답변하시곤 하셨다. 고령이고 집에서도 누군가의 도움이나 보호를 받으셔야 하는데, 혼자 사시는 것이 늘 걱정이 되었다. 2001년부터 혼자 사시는 어머니께 매주 3번 정도 전화 드리다가, 2008년부터는 매일 전화를 드렸다.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 어머니께서 노인 복지관에 다니시게 된 후로는 매일 한국 시각으로 아침 8시에 전화를 드려 그날의 날씨, 식단 등을 알려 드렸다. 지난 16년 동안 매일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지낸 셈이다. 주간보호센터에도 CCTV가 있어서, 우리가 캐나다에서 실시간으로 한국의 주간보호센터 내에서 활동하시는 어머니를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올봄 캐나다로 우리가 귀국 후에 한 달 반쯤 되었을 때, 남동생들이 어머니를 너싱홈(요양원)으로 모시고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남동생들도 모두 70세가 넘어가는 노인들이고, 올케들도 모두 65세가 넘는 노인들이니, 지난 세월 따로 살다가 98세인 고령의 어머니를 모시고 보살피며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 거의 매년 어머니를 방문하여 5주 내지 6주간 같이 지내면서 식사 준비하여 같이 식사하고,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가요 무대”를 시청하고, “우리말 겨루기”를 보며 맞추며 즐거워하였다. 주일에는 어머니와 같이 그곳 교회 예배에 참석하여 그곳 교회의 교인들도 많이 알게 되었고, 예배 후에는 노인 성도들을 위한 “평생 대학”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운동하며 재미있는 게임 등으로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어머니와 같이 할 수 없게 되고 그 모든 시간이 추억이 되어가고 있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께서 너싱홈 (요양원)으로 입소하셨다기에 놀란 마음을 쓰다듬으며 전화하니, 둘째 올케가 10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요양원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자기 친정어머니도 요양원에서 4년간 지내시고 2년 전에 99세에 소천하셨다고 한다. 그동안 요양 보호사가 주말에 어머니 아파트를 방문하여 목욕, 청소 등을 도와드리고 있었는데, 이제 주간뿐 아니라 야간으로도 어머니께서 돌봄을 받으셔야 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노인이 된 우리도 앞으로 거취에 관하여 생각하게 된다.
너싱홈에서 주 야간으로 어머니를 보살피며 섬기게 되어 안심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교회의 속장님으로부터 아들네와 같이 사시는 어머니의 친구 권사님의 근황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보다 한 살 어리신데, 집의 화장실에서 친구 권사님께서 넘어지시어 갈비뼈가 부러지고, 무릎을 다치시어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고 하였다. 가족이 같이 살아도 24시간 보호하며 보살피기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특히 70세 이상의 노년이 된 자식들에게는 더 힘들 수 있겠다.
어머니께서 계시는 너싱홈에는 일주일에 한 번 목사님이 방문하시어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건강 체크, 식사 등 돌봄을 잘 받으시며,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며 지내신다고 한다. 너싱홈에는 가족 돌봄 앱이 잘 되어 있고 인터넷의 발달로 수만 리 떨어져 있는 이곳 캐나다에서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의 건강 정보, 식단표, 급여 제공 기록지 등을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어서 편리하고 감사하다. 어머니께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사진, 영상으로 볼 수 있어 한결 마음이 놓이고 감사하다. 너싱홈 간호과장의 배려로 매주 2번씩 어머니와 영상통화 할 수 있게 되어 더욱 감사하다. 어머니께서 너싱홈의 간호사, 요양보호사들에게 감사하다는 표현을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하신다는 소식에 그저 감사하다. 매일 아침, 저녁에 감사 기도를 드리시며 자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천국에 대한 소망 가운데 믿음 생활하시며 건강하시고 평안한 삶이 되시기를 기도 드린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