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세계는 지금 ‘주 4일제 실험’ 한창
‘월화수목일일일’ 주 4일제 근무라는 직장인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난달 ‘주 4일제 근무’ 도입을 골자로 하는 표준 근로시간 단축 법안을 발의하며 주 4일제 논의가 불붙고 있다. 노동계 등에선 직장 만족도 향상이나 부의 불평등 완화 등을 이유로 내세워 찬성하지만, 기업계 등에선 생산성 저하나 국가경쟁력 약화 등을 들어 반대하는 모양새다.
◇미국이 쏘아올린 ‘주 4일제’ 논쟁
2020년 대선 경선 때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후보(현 대통령)와 경쟁 관계였다가 ‘바이든 지지’로 돌아선 샌더스 상원의원은 바이든 대통령 경제 정책의 ‘좌클릭’을 견인한다는 평을 받는다. 이번에 ‘주 4일제’ 논의도 샌더스 의원 발의로 시작됐다. 샌더스 의원은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는 기준이 되는 표준 근로시간을 기존 주간 40시간에서 32시간으로 낮추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샌더스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급여 감액이 없는 주당 32시간은 급진적인 구상이 아니다”라며 “오늘날 미국 근로자들은 (주 40시간제가 도입된) 1940년대에 비해 400% 이상 더 생산적이지만 수백만 미국인이 수십 년 전보다 더 낮은 급여를 받고 더 오래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주 4일제’ 논의는 인공지능(AI)의 발전도 한몫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미국 CNBC는 지난 7일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주 4일 근무제 전환이 가속화될 수 있다”며 “미국 내 비즈니스 리더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AI 사용 경험이 많은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뉴욕 메츠 구단주인 스티브 코언도 CNBC에서 챗GPT 등 거대언어모델(LLM)로 인건비 2500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고 소개하며 “근로자에게 진정한 주 4일 근무가 현실화되는 미래를 보고 있다”고 했다.
◇이미 시작된 ‘주 4일제’ 실험
주 4일제 실험은 글로벌 곳곳에서 이미 시작된 상태다. 가장 최근의 주 4일제 관련 대규모 실험은 영국에서 진행됐다. 보스턴칼리지가 2022년 7월부터 61개 기업을 대상으로 주 4일 근무제를 시범 운영했다. 각각의 개별 기업이 주 4일제 관련 실험을 한 적은 많지만 61개의 기업이 대거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해당 실험에서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 4일제를 유지 중인 기업은 54개(8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1개(51%)는 아예 영구적으로 주 4일제를 유지하겠다고 못 박았다고 한다. 가디언은 보스턴칼리지 보고서를 인용해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관리자와 최고경영자(CEO)의 82%는 직원 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으며, 50%는 직원 이직률이 감소했고, 32%는 직원 채용 상황이 개선됐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절반 가까이(46%)는 생산성이 오히려 향상됐다고 답하기도 했다.
2019년 주 4일제를 도입해 생산성을 40% 끌어올렸다는 일본 마이크로소프트의 실험을 인상적으로 받아들인 일본 정부는 주 4일제를 장려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2015년 2500명을 대상으로 주 36시간 근무제를 시범 운영한 후 현재는 전체 인구의 90%가 근무 시간을 단축했다. 독일, 호주, 스페인, 핀란드, 포르투갈, 스코틀랜드 등도 특정 기업군을 일정 기간 동안 주 4일 근무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포스코는 국내 철강 업계에선 처음으로 올 초부터 격주 주 4일을 시행하기로 했고, 충청남도는 0~5세 자녀를 둔 육아 부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오는 7월부터 주 4일제를 실시하겠다고 8일 밝혔다.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최근의 근무 트렌드를 보면 주 4일 근무가 직장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미국 직원들이 사무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을 고려하면 반짝이는 네온사인처럼 (신호를) 분명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적잖은 회의론도
그러나 주 4일제 시행에 걸림돌은 여전히 많다. 우선 주 4일제 도입이 쉽지 않은 분야가 많다는 게 문제다. 예컨대 학교는 주 4일제 도입이 어려운 곳으로 꼽힌다. 학부모들이 주 4일제에 일괄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지 않는 한 교사나 교직원도 주 4일제를 시행하기는 어렵다. 레스토랑이나 소매업, 의료·법률 분야같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간이 곧 돈’인 산업도 주 4일제 전환이 쉽지 않다. 근무시간 단축이 노동자들의 수입 감소로 이어지는 직군에서는 근무일 단축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주 4일제의 핵심은 ‘생산성’이란 지적도 나온다. 임금 삭감 없이 주 4일제가 안착하려면 생산성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그간 5일 동안 하던 일을 4일 안에 구겨 넣는 건 직장인에게도 압박이란 지적이다. 영국 BBC는 영국 디자인 회사 ‘펀치 크리에이티브’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목요일 오후쯤 돼 이번 주에 해야 할 업무를 끝낼 수 있는 시간이 더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했다. BBC는 이처럼 빡빡한 일정에 맞춰 업무를 완수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협업을 등한시하게 될 수 있다고도 전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무급제 등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수단과 문화가 보편화된 서구권에선 주 4일제 도입이 용이할 수 있지만 한국은 아직 그런 조직 문화나 경영관리 체계가 자리 잡지 못했다”며 “주 4일제를 도입하더라도 일방적·획일적으로 도입하기보단 기업별로 근로자에게 동기부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게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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