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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먹먹할 정도로 아린 한국 현대사를 만나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10-17 13:25

극단 하누리 연극 ‘짬뽕’을 보고

짬뽕은 세간의 시선이 야속하기만 하다. 짜장면과 함께 중국집을 대표하는 양대산맥으로 군림해 왔건만, 그에 걸맞는 대접은 좀처럼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어처구니 없는 경험을 하거나 목격할 때마다 “이런 짬뽕 같은 경우는 처음이네”하며 이 맛깔스런 음식을 홀대하곤 했다. 짜장면이나 탕수육에 시비 거는 경우는 없었다. 오직 짬뽕만이 속어로 쓰였다. 짬뽕 소리를 들을 때 느끼는 강도는 ‘말미잘’과 거의 동급이다.

5·18 민주화 항쟁 이후 지금까지의 한국현대사를 묘사할 때도 ‘짬뽕’은 매우 적절한 수식어가 된다. 사태가 항쟁으로, 폭도가 열사로 이름을 달리하긴 했지만, 내란죄를 선고받은 이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대한민국에선 내란죄도 중죄가 아닌 모양이다. 한마디로 짬뽕 같은 상황이다.

 

연극 짬뽕은 이성적으로는 판단하기 힘든 한국 현대사, 광주에 대해 얘기했으며, 많은 이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서울에서 2004년 초연된 이후 10만여 명이 짬뽕을 통해 5·18을 경험했다.

이 연극이 매년 리메이크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 솔직히 놀랍다. 왜냐하면 연극은 은밀한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의 가슴을 보다 쉽게 먹먹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 얘기를 꺼내는 것을 사회적으로 금지시킨 시기에는, 허술한 배우의 연기에도 사람들은 울분을 토해내곤 했다. 알다시피 5·18은 더 이상 풍자의 소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이 짬뽕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달리 해석하면 그만큼 극이 탄탄하다는 의미다.
 

그 탄탄함을 극단 ‘하누리’(단장 성효수)를 통해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밴쿠버에서 모국어로 표현되는 연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가슴 쿵쾅거리는 경험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하누리의 짬뽕은 모국어가 귓가에 울린다는 것 이상의 감동이었다.

연극을 보면서 3개월 전 서울 대학로를 찾았던 기억이 났다. 대학로를 걷는 동안 술에 반쯤 취한 채 양곱창을 구워 팔던 아저씨가 생각났으며(애석하게도 그 허름한 양곱창집은 사라졌다), LP음반이 유난히 돋보였던 학림다방이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연극이 여전히 이 거리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대학로의 연극과 그 문화를 밴쿠버에서 고스란히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배우들의 숨소리를 느끼기에 약간 큰 듯한 극장이 다소 부담스럽긴 했지만, 잘 짜여진 극을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넉넉히 행복했다.

울 수도, 그렇다고 웃을 수도 없는 5·18 당시의 상황을 짬뽕은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냈다. 사랑하는 여인과 동생, 그리고 피붙이의 죽음을 끝으로 연극은 막을 내리는 듯 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연극은 죽음 이후부터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이때부터 더욱 빛을 발했다.

‘그 날’ 이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중국집 주인은 독백을 통해 자신은 살았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그 고백은 5·18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연출자의 의도를 제대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 배우의 표정을 읽고 목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이 뻐개지는 듯 했다. 내년 하누리의 공연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  극단 하누리의 연극 '짬뽕'이 13일부터 15일까지 버나비 쉐볼트 센터에서 공연됐다. / 사진=최성호 기자 sh@vanchosun.com >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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