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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자적 밴쿠버를 걷다, 보석 같은 산책코스-3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3-21 11:29

“린 캐년 공원, 뒷동산에 오르던 추억과 만나다”

유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이민자라면 동네 ‘뒷동산’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지 모른다. 뒷동산의 짧은 등산로는 대개 약수터와 이어졌다. 비록 아담한 동산이지만, 산은 그 자체로 거대한 정수기 같은 존재라서 사람들은 별 의심없이 약숫물을 가족과 공유하곤 했다. 가끔 그 공간이 동네 ‘무서운 형님들’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지만, 동산은 왠지 꽤 포근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밴쿠버에서도 산의 포근함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나무로 둘러싸인 산길을 천천히 걸으며 숲의 입김을 느끼다 보면 저절로 행복해진다. 길가의 풀잎 또한 때로는 정겹고, 발바닥에 느껴지는 자그마한 돌멩이도 하찮게 느껴지지 않는다.

노스 밴쿠버의 자랑인 ‘린 캐년 공원’에서도 뒷동산의 포근함을 고스란히 챙기게 된다. 공원의 적지 않은 몸집 때문인지 누군가는 “이 친구, 참 스케일도 크지. 린 캐년을 뒷동산에 비유하다니 말야”하고 중얼거릴 수도 있겠다.

그래도 어리기만 했던 날, 아버지의 등을 보며 린 캐년을 매주 들락거렸던 꼬마아이에게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이 거대 공원이 뒷동산이 아닐까?

꼬마가 성장해서 혹 밴쿠버를 떠나 살게 되더라도, 린 캐년은 따스한 추억으로 기록되어져 있겠지... 그리고, 그 기억은 아마도 흔들다리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린 캐년의 입구에 놓여진 흔들다리는 아이들에겐 큰 재미를 준다. 아직 철이 좀 덜 든 어른이라면, 이 재미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터.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이라면 조금 느긋하게 다리를 건너보자. 숲이 내는 소리, 폭포수가 만드는 화음에 귀가 즐거워진다.

이곳은 사람들이 린 캐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 훨씬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공원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12년의 일이다. 100년 전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공원을 거닐었던 어떤이가 느꼈을 행복을, 2012년인 오늘 흔들거리는 다리 위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즐겁다.

다리를 건너고 나면 본격적으로 숲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 길을 산책로라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길은 때때로 가파르고, 꽤 많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이쯤 되면 산책보다는 산행이라는 이름이 더욱 어울린다. 그래도 천천히 걸음을 옮겨보자. 공원의 끝자락에 놓인 아담한 폭포수 앞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기분 좋게 식힐 수 있다.

폭포수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플라이 낚시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곳에선 아무도 낚시를 하지 않지만,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주인공 브래드 피트 흉내를 내며 첨벙첨벙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낚시줄을 튕기고 싶어진다. 물론 그렇게 따라하다간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으니, 상상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참고로 ‘흐르는 강물처럼’의 실제 배경은 밴프의 ‘보강’이다.

흔들다리쪽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위에서, 갑자기 궂어진 날씨 탓에 우박을 만났다. 온몸으로 우박을 맞았지만 왠지 기분은 한결 상쾌해진 느낌이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이런 경험을 했다면, 아마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숲속에서는 푹 눌러쓴 모자 위로 톡톡톡 떨어지는 우박 소리를 들으면서 자연의 숨결을 잠시 느낄 수 있었다. 이것 또한 어깨 넓은 숲이 우리에게 건네는 소중한 선물이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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