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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조국이 이민생활의 버팀목입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3-02 11:10

장성순 재향군인회 신임 회장

지구 저 편에서 ‘대한민국의 안보에 일조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거창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 ‘안전지대’인 캐나다에 살면서 모국의 안보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인색한 누군가에는 비아냥거림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에 퇴역한 황혼의 이 군인은 자신의 주장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설 마음이 없다. 그가 걸어온 길을 잠시 뒤쫓다 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진심’과 만나게 된다. 그는 지난 2월 18일 재향군인회 총회를 통해 회장직에 새로 오른 장성순씨다.









참혹했던 전장의 기억을 떠올리다

장성순 회장의 머릿속엔 전쟁의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다. 친구들과 노닥거리고 연애질에 한참 관심을 보일 나이에, 그의 인생에 끼어든 것은 다름 아닌 한국전쟁이었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이었어요. 전쟁 통에 제 부친은 총상까지 입으셨죠.”


10대 후반을 동란과 함께 보낸 뒤 그는 청년이 되었다.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던 이 청년의 선택은 ‘군인의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 한 가운데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국경 밖 전쟁, ‘월남전’이다.


“해병대 장교로서 실제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베트남이 어떻게 분열되고 결국 왜 무너졌는지 똑똑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지요.”


위스키 한병을 비워야만 괴로움을 떨쳐낼 수 있을 정도로 전쟁은 참혹했다. 이런 절실한 경험 앞에서 안보를 권력 싸움의 도구로만 인식하는 태도는 무례하기 짝이 없다. 평화로운 시기가 마냥 지속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도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그래서 그는 얘기해 주고 싶었다. 단순한 구호만으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이것이 생명을 담보로 전장에 나섰고 청춘의 일부를 대한민국에 고스란히 헌납했던 그가 재향군인회 회장을 맡은 이유다.


‘뿌리’가 흔들리면 우리도 위축될 수밖에 없어

해병 소령을 끝으로 그는 군을 떠났다. 퇴역 군인이 아내, 그리고 다섯 명의 어린 딸을 데리고 정착한 곳은 캐나다였다. 76년의 일이다.


“당시 교민 숫자가 3000명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한인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기였지요.”


이민 초기 방 두 칸짜리 아파트에서 일곱 식구가 부대끼며 살았다. 그는 가구공장에 취직했고 아내 또한 생활 전선에서 싸웠다. 이민을 결정하고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회상하면 여전히 눈물이 핑 돌고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거대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조국이 그리워지곤 했다.


“토요일이 되면 이곳에서 알게 된 한국 친구들과 회포를 풀었지요. 다들 바쁘게 살았기 때문에 밤 열두 시가 넘어서야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술 한두잔 주고받다 보면 고국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지요.”


모국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인터넷을 통해 쉽게 달랠 수 있게 된 지 오래지만, 당시만 해도 이민은 삶의 뿌리를 낯선 땅으로 완전히 옮기는 일이었다. 그때의 이민자들은 ‘내가 떠나왔구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구나’라는 감정과도 씨름해야 했다.


“이젠 다 지나간 일이지요. 힘들긴 했어도 다섯 딸들이 잘 자라준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합니다.”


부부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5년만에 넓직한 집을 마련했다. 그 동안 부지런한 부모를 보며 자란 딸들은 남들의 부러움을 너머 시기의 대상이 될 정도로 올곧게 성장했다. 그의 딸들은 각각 약사, 의사, 교사, 방송인, 물리치료사라는 명함을 지니고 있다. 장 회장이 자식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따로 있어 보인다.


“이곳에서 아무리 탄탄한 직업을 갖고 산다 해도 자신의 뿌리,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위상이 흔들리면 가슴 펴고 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안보가 건강하면 할수록 이민자의 입지도 더욱 든든해질 수 있다는 얘기죠.”


분단국가 한국, 안보가 최우선 과제

장 회장은 ‘안보’를 다시 대화의 중심에 두었다. 고국의 안보가 이민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대한민국과 내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조국의 안보 문제를 바로 내 일이라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정체성이 없다면 대한민국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않겠지요.”


그의 설명을 듣고나서야 “재향군인회 차원에서 한인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그의 회장 취임 일성을 비로소 납득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끝난 게 아닙니다. 전쟁을 잠시 멈춘 것 뿐이죠.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안보 문제는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향군인회 회장으로서 이러한 현실을 한인사회 곳곳에 알리고자 합니다.”


재향군인회 회장은 바쁜 자리다. 여기저기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임기 3년 동안은 안락하고 한가한 삶을 만끽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인사회 단체장으로서 혹시 있을 수 있는 불협화음도 조율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회장직을 기꺼이 맡았다. 마지막으로 그 이유가 궁금했다.


“젊어서는 전쟁터에서 조국의 명예를 위해 싸웠습니다. 마흔이 너머 캐나다로 건너왔고 벌써 3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다시 자랑스러운 내 고국 대한민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소중한 기쁨입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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