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아시안 밴쿠버 암 환우회’가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1-13 15:31

“우리가 그대 위로 될게요”

슬픔이나 절망은 숫자 몇 개로 쉽게 계량화되어질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그 아픔을 헤아린다는 말 한마디가, 이미 상처 입은 사람에겐 때로는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당신이 어떻게 내 슬픔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내 앞에 놓여진 절망이 어떤 무게인지 당신이 무슨 수로 알아챌 수 있겠어요?”

몸속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는 의사의 짤막한 진단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맥없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 절망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투병의 시간을 견뎌 냈거나 혹은 그 과정에 있는 누군가일 것이다. 아픈 사람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기 위해 모였다.

 


“암 환우회를 도와줄 자원봉사자를 기다립니다”

12일 오후 2시 코퀴틀람 한인회 사무실. 이날 이 시각 이 장소에서, 밴쿠버에서 암과 싸우고 있는 한인들과 그 가족들이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모임을 주최한 것은 ‘아시안 암 환우회 밴쿠버 지부’였다. 회장인 조영일씨 역시 현재 암과 씨름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몸속에서 처음 암세포가 발견된 것은 20103월이었다.

“전립선암 판정을 받았는데, 두 달 후에는 직장에도 암이 발견됐습니다. 7월이 되서야 수술을 받게 됐는데, 그 후에는 약물치료가 진행됐습니다.”

암 확진이 내려진 순간 처음 드는 생각이 ‘불치병에 걸렸구나, 내가 이 병으로 죽는구나’였다. 의술이 발달해서 50% 이상은 치료가 가능하다고들 하지만, 그 수치가 크게 위로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때 느낀 절망은 삶을 자신도 모르게 포기하게 만드는 또 다른 질병이었다. 조영일씨의 얘기를 듣고 있던 한 암환자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 심경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다는 동의의 눈물이었다.

“건강한 사람이 무심코 건네는 위로의 말들이 제겐 오히려 감당 못할 상처가 될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신 분들을 만나니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네요.”

치료하면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치료의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환자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 독한 항암제가 몸속에 파고들면서 머리카락이 한주먹씩 빠져 나간다.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동떨어져 나간 느낌이다. 약물 치료를 받는 환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치밀어 오르는 구토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다. 그 힘겨움을 이해하고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 바로 ‘아시안 밴쿠버 암 환우회’다. 조 회장이 말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암 환우들은 정신적인 고립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암은 환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도 힘겨운 짐이지요. 그 고통과 아픔을 나누고 암치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암은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상대거든요.”

모임이 만들어지기까지 캐나다 한인 과학·기술자협회 회장으로 일했던 이규헌 박사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조영일씨가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이 박사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모임을 구상하게 됐다.


그러던 차에 미국 시카고에서 손경미씨라는 분이 운영하는 ‘아시안 암 환우회’가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어요. 일리노이주와 연방정부에 등록되어 있는 비영리단체였죠. 손경미씨를 직접 만나 모임의 취지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에, 그 단체의 지부가 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손경미씨 역시 암환자였어요.”

현재 암 환우회 회원은 열다섯 명 정도다. 회원은 ‘환자회원’과 ‘도움회원’으로 나뉜다. 이 모임의 간사인 이진훈씨는 도움회원, 그러니까 자원봉사자들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이진훈씨는 현재 암투병 중인 아내와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좀 더 많은 분들이 저희를 도와 주시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담 전문가도 암 환자와 가족들에겐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환자들이 우울증 같은 것을 앓기 쉬운데, 상담을 통해 그분들을 위로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밖에도 ‘아시안 밴쿠버 암 환우회’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여럿이다. 환우회는 병원 진행과정을 꼬박꼬박 확인해 줄 수 있는 소셜워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차량을 지원해 주거나 암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식이요법 혹은 운동요법을 알려줄 수 있는사람도 환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의 참여다. 조영일 회장의 얘기를 끝으로 이날 첫번째 만남은 매듭을 지었다.

“아픈 분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많이들 찾아오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암 환우회의 다음 모임은 29일(목) 오후 2시 코퀴틀람 한인회관 사무실에서 열린다. 문의 이진훈 간사 전화 778-889-6717 이메일 bedesda1004@gmail.com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암 환우회 조영일 회장은 "좀 더 많은 환자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모임에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한인 최대 문화축전 ‘한인 문화의 날’ 준비 중인 이사랑 한인 문화협회 회장
한류 바람이 매섭다. 케이팝을 시작으로 음식, 전통음악, 공연, 의상, 만화영화 여기에 한글 배우기 열풍까지. 세계가 한국 문화에 주목하고 있다. 밴쿠버도 이런 흐름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캐나다 뮤즈 한국 청소년교향악단 지휘자 박혜정
"음악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었어요."박혜정씨가 캐나다 뮤즈 한국 청소년교향악단을 창단한 이유다.이화여대 음대를 졸업하고 성남시 청소년...
글렌 구드 스쿨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된 김제영양
부모의 손에 이끌려 캐나다와 조우한 아홉 살 소녀에게 모든 것이 낯설었다. 환경도, 언어도, 사람도 모두 예전에 알던 것과 달랐다. 여기에 소심한 성격이 더해져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신협은행 5기 인턴사원 박우종씨
올해 신협은행 5기 인턴사원들은 다양한 특이사항을 갖추고 있었다. 이중 SFU에서 경영·금융을 전공 중인 박우종씨(21세)의 특이사항이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박씨는 캐나다군 복무 경력을...
“캐나다 유일의 ‘판관’, 100대 1 경쟁률 뚫었죠”
지난 84년,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낯선 땅 캐나다로 건너 온 사춘기 소년에겐 무엇보다 태권도가 큰 위로였다.밴쿠버에 정착한 한인이 그리 많지 않았을 때였다. 수퍼마켓이나 식당에서...
밴쿠버한국무용단 16주년 정기공연 이끄는 정혜승씨
정혜승 단장이 이끄는 ‘밴쿠버 한국 무용단’이 올해에도 어김 없이 무대에 오른다. 벌써 16년째다. 이번 정기공연의 제목은 ‘춤 매혹’. 언뜻 감이 오지 않는 이름이다. “무용은...
BC실협 한대원 신임 회장
  새로 단체장 명함을 갖게 된 사람에게 마냥 축하 인사를 전하기가 다소 거북한 요즘이다. 특히 한인사회의 대표적 경제단체인 ‘BC한인협동조합실업인협회’(이하 실협)의 새...
박성은씨가 들려주는 자연 의학의 세계
봄이 괴로운 사람들이 있다. 알레르기 환자들이다. 코퀴틀람에 거주하는 A(남·44)씨 역시 매년 이맘때면 외출을 피한다. 오리나무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이다. 외출만 하면 눈이 가렵고,...
주밴쿠버 총영사관 재외선거 담당 김재훈 영사
적어도 열명 중 한명은 참여할 걸로 생각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기대치를 한참 밑돌았다. 올해 처음 시행되는 ‘대한민국 재외국민 선거’에 대한 교민들의 차가운...
“요리를 파는 ‘햄버거 가게’ 들어보셨나요?
햄버거는 사소한 음식이다. 햄버거 입장에선 좀 안쓰럽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패스트푸드점 계산대에서 후다닥 주문을 마치고 나면, 곧이어 달작지근한 탄산음료와 함께 등장하는 햄버거...
[유망주] 캐나다 전국대회 출전 예정인 권준군
BC토론 및 담화 협회(DSABC)가 지난 3일 주최한 BC주 토론대회 노비스(Novice)부문에서는 이변이 있었다. 대회에 처음 출전한 6학년 학생이 8학년 학생들을 제치고, 높은 총점으로 부문 내에서...
장성순 재향군인회 신임 회장
지구 저 편에서 ‘대한민국의 안보에 일조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거창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 ‘안전지대’인 캐나다에 살면서 모국의 안보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인색한...
조지 페더슨 써리 프레이저 하이츠 로터리 클럽 회장
지난 10일 ‘Korean Concert’ 라는 제목의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은 4월 1일 개최될 한국 문화 공연에 대한 안내였다. 이메일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써리...
“우리가 한인사회 후세들에게 남겨줄 것은······”
오랫 동안 애정을 갖고 해 오던 일을 그만 두어야할 때, 혹은 그 일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어야 할 때, 사람들은 대개 ‘시원섭섭하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상투적으로 들리는 이...
“약물 대신 자세교정만으로 통증 치료, 삶의 질을 높여주는 특급 도우미”
‘직업 시장’에서 전문직의 주가는 늘 평균을 상회한다. 특히 경기가 좋지 않을 시기에는 매번 상한가를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무엇보다 해고의 걱정이 덜하다는 점, 설령...
“주정부 ‘취업문’ 나는 이렇게 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공부 꽤나 한다는 한인 학생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내로라하는 명문대학에 입학한 학생도 흔하다.그런데 ‘공부 잘하는...
세계적인 로봇 공학자 데니스 홍 버지니아공대 교수
어린 시절. 누구나 꿈을 품는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 ‘어린 시절 꿈을 이뤘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꿈을 이루기 위한 긴 여정 속에서 선택의 갈림길을 수도 없이 마주하기...
큰 화제가 된 두 권의 책 저술한 오강남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지난해 한국 지식인층에서 화제가 된 책 중에 오강남 리자이나대학교 명예교수가 쓴 두 권의 책이 있다. 5월에 나온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 이어 6월에 나온 ‘종교, 심층을...
의사·대학교수 그리고 사업가, 서른한살의 신재경
팔방미인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분야에 능통한 사람을 표현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그런데 몇 개 분야에 능해야 팔방미인이라 할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1~2개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쉽게...
“우리가 그대 위로 될게요”
슬픔이나 절망은 숫자 몇 개로 쉽게 계량화되어질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그 아픔을 헤아린다는 말 한마디가, 이미 상처 입은 사람에겐 때로는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당신이 어떻게...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