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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실험영화계를 이끄는 그 감독

한혜성 기자 helen@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0-10-08 16:16

박동현 감독

박동현 감독의 <기이한 춤:기무> (이하 기무)는 제29회 밴쿠버 영화제(VIFF) 용호상 후보작 8편 중 하나였다. 아쉽게도 용호상은 놓쳤지만 박감독은 후보로 선정된 것 자체가 인정을 받은 것이라며 의연한 웃음을 지었다.

68년생인 그가 아시아 감독에게 주어지는 용호상 후보로 오른 것은 <기무>가 그의 첫 장편이기 때문이다. 박감독은 단편 실험영화 감독으로는 이미 국내외에서 잘 알려져있다. 명지대학교 영화∙뮤지컬학부 교수이자 서울국제실험영화제 집행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한국 실험영화계를 이끄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기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영화 <기무>의 장르는 단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VIFF의 아시아 영화를 선정하는 프로그래머, 토니 레인즈(Rayns)는 <기무>에 대해 "장르의 분류가 없는 영화(Unclassified)"라고 소개했다. 박감독은 그 정의가 제일 마음에 든다고 했다.

"<기무>는 다큐멘터리 겸 에세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그래서 ‘분류가 안된다’는 토니의 정의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영화가 ‘유니크(Unique)’하다라는 말을 듣는 것은 칭찬인데, ‘분류가 없다’는 유니크하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기무>는 근대화 이후 급작스러운 변화를 겪어오며 한국이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단상을 담았다. 순간순간 정권이 바뀌면서 권력을 쥔 사람들에 도시가 입맛에 변화하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언급했다. 박감독은 한국에서는 건물과 문화 등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고 사라지지만, 그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하는 마음에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어요. 그러니까 70년대였죠. 한 선생님이 미국에 다녀오셔서 에피소드를 하나 얘기해주셨어요. 미국에서 운동화를 하나 샀는데, 한국에 올 때 세금을 안물려고 헌운동화처럼 보이기위해 도시를 한시간동안 걸으셨대요. 그런데 그렇게 돌아다녀도 운동화에 먼지하나 안묻었다는 거에요. 선생님은 우리도 그런걸 배워야한다고 강조하셨는데, 지금 제 생각은 달라요. 우리도 우리 것이 있고 우리 문화가 있는데, 선진문물이고 깨끗하다고 해서 무작정 배워야하는 건 아닌거죠"

서울의 개발은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 조금씩 지워버렸다. 뉴타운인 강남에서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자,옛 것을 가지고 있던 강북도 문화를 버리고 재개발을 시작했다. 그 동안 참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대형건물이 들어서면서 소담스런 맛집들이 모여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던 피맛골이 없어지고, 청계천이 옛모습을 찾아볼 수 없이 변화한 채 복원됐다. 특히 건물 같은 경우는 시작과 변화과정에서 세월의 흔적들이 천천히 쌓아져 가치가 생기는데 한국은 보존하는 법을 잊어버린채 새로 짓기만을 강조한다고 했다. 박감독은 그런 점을 아쉬워했다. 사람은 사라져도, 문화와 건물은 남아있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기무>는 기무사 건물을 주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의 1/3가량은 기무사 건물 곳곳을 담았다. 기무사라는 소재를 사용하게된 이유를 묻자, 의뢰가 들어왔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의뢰를 한 기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무사 터를 갖게됐어요. 건물을 헐고 스페인 빌바오 미술관처럼 엄청나게 큰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으로 그 공간을 갖게됐는데, 첫 전시가 필요했던거죠. 건물 안에 영화관을 설치하기로 했었기 때문에 건물이나, 터 등에 대해 기록영화를 원했어요. 그 프로젝트를 제가 맡게 된거죠. 건물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미술관 측이 그런 내용을 담지 말아달라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기무>를 만들게 됐어요.”

영화가 끝난 후, 한 관객이 <기무>라는 영화 제목의 뜻을 물어봤다. 박감독은 한옥의 라인을 따라가다보면 손이 마치 한국 전통춤을 추듯 아름다운 선을 그리기 때문에 제목을 붙였다고 했다. 물론 기무사의 ‘기무’와 동음이의어를 사용했다.

실험영화를 고집하는 이유

실험영화란 여러가지로 나뉠수 있지만, 박감독과 서울 영화제가 추구하는 실험 영화란 “형식을 깨부수는 새로운 형식∙새로운 도전∙새로운 영감 등 새로운 요소가 담긴 영화”다. 박감독은 실험 영화를 고집하는 이유를 ‘가장 영화이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스토리가 있는 것은 뮤지컬이나 공연에서도 할 수 있지만 실험 영화는 영화밖에 할 수 없는 여러가지 시도를 할 수 있어요. 아, 오해하지 마세요. 전 스토리있는 영화도 매우 좋아합니다. (웃음)”

실험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상업성을 포기했다는 의미다. 그래도 박감독은 행복하다. 좋아하는 것을하고 있으니까. 박감독은 예전에는 영화로 문화를 바꿔보겠다는 감독들이 많았는데, 요즘 지망생들은 어떻게하면 인기있는 감독이 될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들의 생각을 깨부수는 것도 박감독이 교수로서, 선배로서 앞으로 해야할 일로 꼽았다.

글∙사진=한혜성 기자 helen@vanchosun.com

<▲ 박동현 감독작 <기이한 춤:기무>의 한장면. (사진제공=V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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