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미네르바의 부엉이

조정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03-07 16:28

조정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부엉이 한 마리가 식탁 위에 놓여 있다. 겨우 한 뼘 키의 부엉이는 눈매가 매섭고 부리가 뭉툭하다. 동그란 눈과 날카로운 부리 대신 치켜뜬 눈매와 잘려 나간 부리, 발톱을 살짝 감춘 모습이 영 예사롭지 않다. 부엉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만든이의 암묵적 의도를 헤아려보는 아침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다. 믿기지 않는 세상 소식에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힘든 날들이다. 우리 사회가 불확실성의 위기에 놓였던 계엄령이 해제된 후 그 정당성 여부를 가리는 상반된 주장들이 갈수록 여야 정치권과 그 지지 세력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인터넷 신문과 방송, 유튜브와 SNS, 카카오톡 등에서 쏟아내는 진영 간의 일방적 정치 뉴스는 점점 우리의 일상을 잠식하며 불안과 두려움을 키우고 있다. 핸드폰을 곁에 두고 밤잠을 설치며 시시각각의 뉴스에 마음 졸이다 또 안도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제 사고의 알고리즘에 의해 자기 나름대로 듣고 본 정보만 옳다는 확신으로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억압적인 태도로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가족과 친구들 모임에서조차 느닷없는 정치 성향의 날 선 말들은 냉소적 불통의 분위기로 이어지고 끝내는 소원한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며칠 전 남편은 하루 종일 나무토막을 깎고 다듬어 낯선 부엉이를 만들었다. 눈을 치켜뜨고 주둥이를 꽉 다문 표정에서 사뭇 진지한 메시지를 읽는다.
 ‘말을 아껴 침묵으로 소통하라’ 
세상의 부조리가 들끓는 뉴스에 시시비비를 가리다 지친 몸과 마음을 이제 추스르려는 다짐이기라도 할까. 사회적 정의와 인간의 품격이 사라진 비난과 분노, 증오와 처벌 같은 어둠의 말로 뒤덮인 미디어로부터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인가 보다. 때로 침묵은 상대와 나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생각해 보고 사소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하는 힘이 있음을 안다. 다른 견해를 갖은 누군가에게 말하기가 주저될 때 말을 삼키는 것은 내 생각과 판단이 사실에 근거를 두는지, 내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일지 생각할 틈이 필요할 때이다. 
 부엉이는 때로 올빼미로 불리기도 하는데,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눈동자는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와 미네르바의 깨어있는 지혜를 상징한다. 숲속에 사는 부엉이는 머리가 크고 어두운 곳에서도 눈이 밝으며 방음 기능이 있는 날개로 소리 없이 사냥감을 덮칠 수 있다고 한다. 부엉이의 생김과 행동은 깊이 생각하고 사물을 정확히 분별해 뜻하는 목표물을 얻도록 특화 적응된 것이다.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은 1821년 그의 저서 <법철학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펼친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일상을 마무리하는 어둠이 내리면 고요한 마음과 지혜의 눈으로 세상과 자신을 성찰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요즘 분노 과잉의 개념이 전도된 말에 대한 나름의 저항은 거리두기다. 왜곡된 정보에 반응하지 않고 냉정을 유지하는 것은 나를 ‘장삼이사’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며 진실에 눈감는 일이 결코 아니다. 소리 높여 주장하는 각 정치권의 말들이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지 아닌지,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비전을 제시하는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올바른 수단을 쓰는지 살피며 이성적 시민의 역할을 다짐하는 중이다.
‘언제쯤 우리의 일상이 분노와 대립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역사는 끊임없는 대립과 극복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메우고 있다. 지금의 시련을 함께 극복하자고 모인 저들은 오늘도 삭풍의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친다. 절망의 끝에서도 희망을 보는 눈부신 그들의 노랫말에 귀 기울이는 겨울밤이다.
 “– 나 태어난 곳 
   사랑이란 아름다운 말을 배운 이곳
   저 무성한 들풀과 같이 
   내가 살아가야 할 이 땅이여–”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칠월의 에필로그 2025.07.04 (금)
초록이 물오르면포도 광주리에 둘러앉아시퍼런 입술들이 깔깔대며구름 위를 달린다포식자의 먹잇감이풀을 뜯는 칠월은가슴에 품은 진초록이다칠월마다 삶의 이삿짐이옮겨갔지만진초록이 마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칠월은등줄기 진땀이어미의 젖가슴을훑고 가는 여름감기나의 노스텔지어 칠월에발을 담구면시리고 저리는 삶의 변주곡이장조로 화답을 한다
반현향
  나는 한국을 방문할 때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 호텔 신세를 지곤한다. 강남보다는 강북에 있는 호텔을 선호한다. 강남은 남에 나라에 온 것 같아 낯설다. 그래서 강북에 머문다. 60년대 모습과 정감이 조금은 남아 있어 길 찾기가 편하다. 또 혹시나 내가 남긴 옛 추억하나라도 만날 수 있을까 해서다. 50년대 후반 주경야독, 신문팔이, 고학시절, 자주 찾던 신문사들이 아직도 현존하는 광화문 근처에 머물고 있다. 석간 신문을 박아내는 우렁찬...
심정석
만년설 2025.07.04 (금)
소복이 쌓인 눈이어느새 쌓인 눈이하얗게 쌓인 눈이 봄이 왔다고마음대로 눈물이 된다 숨죽여 울고소리 내어 울고가슴 치며 울어도 녹지 않는 마음이라는 게 있다
문선혜
분가 2025.07.04 (금)
    아들이 분가했다. 처음 집을 떠나 독립해서 살아보겠다고 했을 때, 내 안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허전한 느낌이 훅! 들어왔다. 살인적인 고물가, 렌트비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아이가 지는 게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그런 염려스러운 엄마 맘이 먼저였다. 장남에게 은연중 믿고 의존해 왔던 내 기대어진 몸을 바로 세워야 하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아이는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지혜롭고,...
고희경
아침 이슬이여, 너는 어둠의 울타리에 걸어 놓은  내밀(內密)의 창(窓) 지순한 그리움의 초상이구나    춥고 습한 긴밤들을 눈물로 견디며 모든 고통의 순간들은 결국 숭고한 환희로 통하는 길이라는 지혜를 터득한 너의 맑은 이마여!                                           ...
안봉자
작은 아씨 2025.06.27 (금)
  어머니는 젖이 풍부하신 분이셨다. 우리 형제들을 키우면서도 일부러 젖을 떼려고 애쓰지 않고 아이가 먹겠다면 언제까지고 먹이려고 하셨다. 나도 거의 세 네 살까지 젖을 먹었다고 들었다. 내 밑에 막내 동생은 여섯 살이 넘도록 젖을 먹었다. 친구들과 밖에서 놀다가도 들어와서는 어머니 품을 파고들어 젖을 먹었다. 주위 사람들이 젖을 떼지 다 큰 애를 무슨 젖을 먹이냐고 하면 어머니는 이제 더 먹일 아이도 없는데 나오는 젖을, 먹겠다는...
심현섭
그리움 2025.06.27 (금)
사그라져 가는 물안개 아침 햇살에 부서지고   파도가 뿜어낸 당신 닮은 은빛 숨결 물 비늘이 허공 위로 흩어지네   그대 향한 서성임이 아픔의 태산 되어 울고   요란한 살여울 지쳐 밀려온 그 자리 차디찬 빙산 이어라   볕 뉘 사이로 스며드는 따뜻한 당신 목소리에 오늘도 목이 메이네
김정임
바람이 전해준 말 2025.06.27 (금)
  캐나다 웨이에서 오클랜드 스트리트로 우회전 핸들을 틀자마자, 눈부신 초록의 나라가 시야에 확 펼쳐졌다.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시원해진다. 문득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로 시작되는 설국(雪國)의 첫 페이지가 떠올랐다. 하얀 눈의 나라로 들어가는 대신, 나는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든 별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길은 조금 지나면, 디어 레이크 파크 숲을 우측으로 끼고 돌면서 계속...
지연옥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