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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듯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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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10-04 09:48

조정 /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루틴이 몸과 마음을 변화시킨다. 부드러운 커피 향이 퍼지는 아침, 뜨거운 커피를 천천히 목 안으로 넘기는 일은 하루를 시작하는 저항감에서 벗어나는 의식이다.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데크 난간에 매달린 모이통에 앉은 새들을 관찰하며 잠자는 근육과 정신을 깨운다. 푸른 숲을 내다보며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모으는 일 또한 나의 소소한 아침 일과다. 달리기 출발선과 같은 하루의 시작, 커피의 카페인은 오늘의 경기를 위한 전략을 하나둘 전달한다. 다리의 보폭을 넓게 하고 근력, 순발력, 지구력을 모두 이용해 발을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뿌듯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린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이슬이 내리는 처서가 지난 오늘은 무씨를 뿌릴 준비 작업을 해야 한다. 상추 대와 쑥갓 대를 뽑고 퇴비를 뿌린 후 흙을 뒤집어 두둑을 만드는 일이다.  
 
  습관(habit)과 루틴(routine)은 둘다 반복하는 행동이란 공통점이 있으나, 얼마나 의도적으로 인지하고 행동하는가의 차이점이 있다.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이 있고 루틴은 더 강한 의도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일상에서 규칙적으로 하는 일련의 행동인 루틴을 지키는 것은 생활의 틀을 세워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는 일이다.
하루의 일과 중 책 읽기와 글쓰기, 명상을 겸한 걷기, 텃밭 일 그리고 장보기, 조리, 청소 등 핵심적인 일과 부차적인 일을 구분해 시간을 잘 분배하려 한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집중력이 떨어질 때 집안일을 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하지만 언제나 집안일이 우선순위에 놓이게 된다. 때론 삶의 진부함을 참아내며 집안일을 반복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무한 반복되는 부엌일 중 하루 세끼 반찬을 갖춰 온화한 얼굴로 밥상을 차리는 일은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자비행이라 할 만하다.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어 씻은 후 데치고 조리고 볶고를 반복하는 동안 ‘밥으로 복을 짓는다’고 의미부여를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가사노동은 충분히 보람 있다는 자기 암시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의 능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음식을 만드는 수고로 건강은 물론 식탁에서 감사와 즐거움을 나누고 빨래와 청소 역시 장마철 햇살처럼 하루를 반짝이게 하는 일이기에.   
 
  작은 습관도 꾸준히 하다 보면 몰입과 집중을 키워 새로운 삶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남편은 이민 후 5 Year’s Diary를 여섯 권째 쓰고 있다. 한 면에 5년의 간추린 일기를 쓸 수 있는 이 일기장은 구글 포토에 틈틈이 저장한 수많은 사진과 함께 과거로 날아가는 마법의 양탄자가 되어준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집안 행사와 친지들과의 만남, 여행 등 살아온 흔적들을 함께 돌아볼 때면 기억 저편 아득한 장면들이 다시 살아 움직인다. 십여 년 꾸준히 기록한 남편의 텃밭일지 또한 귀중한 자료가 된다. 재배한 작물의 종류, 봄에 씨 뿌리기와 모종을 심는 시기, 거름을 주는 횟수, 병충해 예방법, 토마토 굵게 키우기, 가을 무 파종과 마늘을 심는 시기…, 이 기록은 다음 해 풍성한 텃밭 농사의 교과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루틴은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나를 성장시킨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서평을 다루는 YouTube 영상을 빠짐없이 보고 있다. 숙련된 독서가인 사회자 두 사람과 저자 또는 관련 분야 전공자 모두가 선정된 책을 읽은 후 책 내용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토로하는 방송이다. 지금까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부터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에 이르는 67회 방송분을 보았는데, 사회자들의 진정성 있는 진행은 내 영역 밖의 어려운 책들을 이해하는데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가끔은 ebook으로 책을 구입해 읽으며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과 저자와의 내적 소통으로 생각의 힘을 키우려 한다.   
루틴은 삶을 바꾼다. 하루를 긍정적 루틴으로 보내려는 의지는 자신의 무게 중심을 외부에 두지 않고 자신의 내부에서 찾으려는 노력이다. 꾸준히 쌓아 올린 자기 성장을 꾀하는 루틴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만들고 언젠가 이룰 성취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긍정의 루틴은 어린 새가 하늘 높이 비상하기 위해 펼치는 작은 날갯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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