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내 안의 두꺼비집

조정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8-30 16:01

조정 / 사)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수종사에 오르는 길은 너무도 가파르다. 초파일을 며칠 앞둔 주말 운길산을 오르는 차량 행렬도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커브 길을 돌고 있다. 잠시 두물머리 풍경을 내려다보던 사람들이 다시 산길을 오르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성스러운 카일라스를 향해 묵묵히 오체투지 하는 티베트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은 추위와 허기의 눈보라 속에서도 두 손을 모으고 멀고 먼 ‘영혼의 순례길’을 걷고 또 걷는다. 무릎이 까지고 손목이 저리는 삼보일배의 고행을 견디며 지극한 마음으로 평안을 간구한다. 나도 잠시 그들 대열에 서서 두 손을 모은다.
‘쾌유 기원의 연등을 달아보리라. 생명의 기운이 넘실대는 푸른 하늘에 그의 온전한 치유를 빌어보리라'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어느 날 친구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큰일 났어, 큰일 났어…”라며 말을 잇지 못하던 친구는 남편이 아침에 갑자기 쓰러져 지금 중환자실에 있다고 했다. 평소 건강하던 그가 뇌출혈이라니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들이 맞닥뜨린 돌발 상황을 실감하지 못했다. 며칠 지나면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예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리라며 친구를 위로했다. 함께 아침 산책길에 나서고 장보기며 맛집을 찾는 소소한 일상을 다시 찾게 될 거라고 내 바람을 담아 말했다. 그러나 모두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뇌 수술 후 재활 치료 중인 그의 병세는 별다른 차도가 없어 보인다. 불가항력적인 병마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지난 기억들도 모두 지워버린 듯하다. 안타깝게도 인지 능력을 상실한 그의 뜻 모를 중얼거림은 보는 이들을 돌아서서 눈물짓게 하고 있다. 그의 투병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걷고 있는 듯하다. 이 믿기지 않는 상황은 격류에 휩쓸려가는 사람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듯한 절망감이 들게 한다. 다행히 친구는 기대와 절망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도 남편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한 소설가의 말을 기억한다. “삶은 계획하고 기대한 대로 오지 않음을 알아 이제 그 무게를 내려놓으려 한다.” 소설가로 큰 입지를 세운 그는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하지 않는 것이 삶의 모토라고 했다. 무리수를 두는 것은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자신의 에너지 100%를 모두 소모하며 살지 않는다는 지론이다. 무리한 결과에 집착하다 건강과 재산을 잃었다는 가슴 아픈 뉴스를 볼 때면 그의 말엔 큰 설득력이 있다. 자기 능력이나 체력을 극복하겠다는 일념으로 한계량 이상의 에너지를 방출할 때의 강박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때로는 건강을 잃어 자신의 미래를 박탈당하고 가족들을 혼란과 고통의 돌이킬 수 없는 블랙홀로 밀어 넣는다. 그들은 열심히 재물을 모으는 일에는 몰두했으나 미처 그 재물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도구로 전환하지는 못했다. 부지불식중에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고 마는 화재의 원인은 발전기에 규정 값 이상의 초과 전류가 흘렀을 때이다. 기계에 과부하가 걸렸을 때 그 손상을 막는 제동장치나 초과 전류를 차단하는 두꺼비집의 역할처럼 삶의 방향감각을 지키는 안전장치는 무엇일까?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한다. 인생의 성공 여부를 물질이나 명분에 두지 않고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마음 설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으며 소박한 기쁨을 얻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면서 바라는 완벽한 삶이란 바로 우리가 흘려보내는 평범한 일상 속에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도 정서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개방적으로 생각하고 유연하게 행동한다.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줄 알며 자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고 있는가. 무엇으로 인생을 채우며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있음에 기쁨을 느끼는가?’
 
 가파른 산길에서 벗어나 호젓한 오솔길로 접어든다. 세상의 번잡을 떠난 신록의 숲속은 새 생명들의 함성으로 가득하다. 깊이 뿌리내려 수액을 끌어올리는 나무들, 둥지 떠난 산새의 가벼운 날갯짓, 이끼 덮인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 봄을 맞은 생명들이 안단테 음률에 맞춰 소리 높여 살아있음을 노래한다. 
 
 일주문을 지나자 소박한 맞배지붕 아래 '해탈문'이라 쓰인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숨을 고르며 높고 가파른 돌계단 위 그 문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딘다. ‘미혹한 집착에서 벗어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 수 있기를…’
오늘도 무한한 우주 공간의 푸른 점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사랑의 저 편 2025.04.18 (금)
               시인의 방에 알 전등이 꺼지고               구 시대의 유물 같은 나의 시들은               잠이 든다               꽃 한 송이 값도 못되는 내가               꽃이 되어 네 곁에 누워본다               잠 들기엔 너무나 아까운 저기             ...
김영주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비록 비가 잦은 계절이지만, 햇살만 비추면 여지없이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간다. 일할 때는 늘 자동차를 몰고 다녀서 자전거가 눈에 띄지 않았다.  취미나 스포츠를 즐길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은퇴를 하면서 자전거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온 세상이 기지개를 펴고, 살아 숨쉬는 것들이 초록 생명을 뿜어내고 있다. 나무가 새순을 톡톡 밀어내고, 화단에는 녹색 단검들이 솟아나고...
양한석
반가부좌를 틀고 바다와 마주 앉으면 마음 안쪽에도 수평선이 그어진다. 수평 구도가 주는안도감 덕분인가. 흐린 하늘에 부유하는 각다귀 떼 같은 상념들이 수면 아래 잠잠히내려앉는다. 바다빛깔이 순간순간 바뀐다. 이 바닷가 어디쯤에 창 넓은 집 하나 지어 살고싶다는 내 말에 섬에서 태어난 토박이 지인이 웃었다. 바다를 노상 보라볼 필요는없어요. 생각날 때 고개를 넘어 달려가 안겨야 애인이지 같이 살면 마누라가되어버리잖아요. 그럴...
최민자 
젊은 날 최전방 백암산 중턱에서 만난 불에 탄 주목과 구상나무의 그루터기들, 살아 천년죽어서 천 년을 버텨오며 옹골찬 기개로, 선 굵은 삶을 살았던 주목과 구상나무에게서 늘푸름과 꼿꼿함을 배운다. 전쟁의 포연 속에 육신을 불태웠어도, 꿈틀거리며 밀려오는 혹독한 칼바람에도, 자신을이겨내고 그루터기로 살아남은 홀연한 기개, 세상의 어느 누구도 뿌리로 이어지는 강인한삶의 의지를 꺾지는 못하였으리라. 다시 덕유산 향적봉에서...
이상목
이슬비는 2025.04.11 (금)
봄을 머금은 이슬비는 아기 숨소리보다 조용히세상을 어루만집니다 보드라운 손길로민들레 얼굴을 씻기고가로수 조막손 살며시 펴게 합니다 늦잠 자는 꽃망울가만가만 깨우며서두르지도성내지도 투덜거리지도 않습니다 풍경을 부둥켜안는 이슬비는 괜찮다 괜찮다 다독이시던어머니의 속울음입니다.
임현숙
브레넌의 죽음 2025.04.11 (금)
“아이고 우리 딸이 너무 바빠서 먼지도 못 닦고 다니는구나!”   딸의 차 운전대 위에 하얀 눈처럼 먼지가 쌓여 있었다.   "엄마! 그거 건드리지  마! 아직 브레넌 털이 남아 있어, 그냥 놔둬. 엄마, 플리스."  딸의 목소리는 울음을 삼킨 듯 떨렸다.  브레넌이 떠난 지 벌써 반년도 넘었는데 ...  "아직은 아냐. 좀 더 있다가 닦을게. 지금은 그냥 놔둬."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지난 여름 방학을 며칠 남겨...
김춘희
그대 뒷모습 2025.04.11 (금)
서녘 하늘에 별이 돋는다. 마음이 잔잔해야 보이는 초저녁별, 실눈을 뜨고 별 속에 아는 얼굴이있나 찾아본다.지난겨울에는 눈이 자주 많이 내렸다. 눈이 내릴 때마다 우리나라 문화계의 큰 별들이 떨어졌다.미당 선생이 떠나시고 얼마 후, 온종일 눈이 내리던 날 정채봉 선생이 눈 나라로 가셨다. 이어 운보선생도 떠나셨다. 그 뒤로는 겨우내 하늘이 낮게 내려앉으면 또 누가 떠나실라 겁이 났다. 이윽고 건너다본 커다란 눈, 그 웃음 뒤에 끝 모를...
반숙자
별(星)의 집 2025.04.11 (금)
산그늘 아래 조가비 같은 오두막 한 채저녁 밥물 끓는 소리 도랑물처럼 흐르고굴뚝 연기 아스라이 어스름을 몰고 오는데박꽃처럼 허리 휜 어머니가정짓간 문턱을 넘나듭니다사립문을 건너온 초저녁 별들이초롱불처럼 처마 끝에 깃을 내리면비탈 밭에서 달빛을 지고 돌아오시는 아버지,실루엣 같이 구부정한 아버지의 뒷모습도달빛처럼 환해집니다아이들 글 읽는 소리마저 아득히 사라지고고요가 홀로 내려앉아 졸고 있는 집,곤한 어머니 아버지의...
이영춘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