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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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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6-28 15:48

조정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오월은 싱그러운 봄빛으로 눈부시다. 골든 이어스 캠핑장을 향하는 듀드니 트렁크 로드 주변은, 색의 연금술사들이 펼쳐놓은 화사한 화폭 같다. 신록의 나무 사이로 뭉게뭉게 흰 불두화가 피어있고 짙고 연한 초록빛이 서로 스미고 어우러진 산자락은, 마크 샤갈의 파스텔화처럼 몽환적이다. 버드 그린, 모스 그린, 파인 그린…, 보드라움으로 마른 가지를 뚫고 나온 연둣빛 잎새들이 시나브로 생동감 넘실대는 초록의 물결을 이룬다.

  캠핑은 자발적으로 원시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출발 전 텐트, 슬리핑 백, 버너, 램프, 접의자, 비상약, 음식과 식기류…, 2박 3일 캠핑을 위해 많은 준비물을 챙기는 일은 시작부터 번거롭기만 하다. 그러나 문명의 편리함에서 멀어져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캠핑은 해가 갈수록 그 열기가 뜨겁다. 골든 이어스 공원은 세 곳에 409개의 캠핑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5월 중순 이후 캠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실정이다. 두 달 전 캠프장 예약을 마친 남편의 한쪽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다른 해 보다 복잡해진 절차와 긴 시간이 소요돼 인내심의 한계를 극복한 후유증이었다.

밴쿠버 근교에 드넓은 호수와 여름에도 눈 덮인 산을 품은 62,540ha 면적의 골든 이어스 공원은 캠핑, 피크닉, 하이킹, 카누잉, 낚시, 자전거 타기, 숲속에서 말타기 등을 할 수 있는 웅장한 규모의 주립 공원이다. 공원 입구로부터 12Km를 달려 캠핑장에 도착하니 계곡 물소리가 요란하다. 급류로 흐르는 물살은 큰 바위와 나무뿌리에 부딪혀 부서지며 호수(Alouette Lake)를 향해 흘러간다. 전기를 사용할 수 없어 새벽녘 한기에 대비해 큰 텐트 안에 작은 텐트를 이중으로 설치하고, 매트에 공기를 넣은 후 두툼한 침낭을 준비한다. 사다리를 이용해 나무와 나무 사이에 줄을 매고, 텐트 위에 넓은 타프도 설치해 이슬을 막는다.

주변 정리를 마친 후 왕복 5.5Km의 골드 크릭 트레일을 따라 폭포(Lower Falls)를 향해 걷는다. 캐네디언 햄럭이 주종인 숲에 우람한 그루터기의 흔적은 벌목되기 전 태고의 숲을 상상하게 한다. 두터운 이끼가 융단처럼 깔려 있고 네피로네피스가 군락을 이룬 숲은 오랫동안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듯한 신비함이 있다. 맑고 감미로운 새 소리는 어느 동화 속 노랑지빠귀처럼 누군가를 부르는 듯하다. 숲길을 벗어나자 하늘에 닿을 듯한 눈산이 위용을 뽐내고 흰 물줄기를 쏟아내는 위풍당당한 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저 없이 온몸을 던져 땅이 꺼지는 굉음을 일으키는 폭포는 물보라로 모습을 감춘 채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는다.

  산마루에 걸린 비구름이 바람을 타고 와 타프 위로 떨어진다. 오롯이 빗방울 소리에 귀 기울인다. 아무 움직임도 없는 숲속에서 온전히 내가 겸허해지는 시간이다. '우리는 왜 잠시라도 느리고 단순하게 자연 속에 머물고 싶은가? 인터넷과 스마트 폰의 미혹에서 벗어나, 예측 불허의 세상과 불가해한 이유로 어긋난 관계에 지친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서일까…' 비가 그친 뒤 모닥불 앞에서 듣는 새소리는 무심히 흘려보내는 일상에 행복의 씨앗이 있다고 일깨운다. 늘 보던 것을 새롭게 보려 할 때 그 사소한 것들이 나를 살아 숨 쉬게 한다는 것을. 박노해의 시 몇 구절을 기억한다.
“저 가벼운 홀씨 속에 /푸른 나무가 들어있다
가벼운 나비춤 속에/과실의 꽃가루가 들어있다
-젊은이의 가벼운 몸짓 속에/미래 현실이 걸어오고 있다-" (‘미래는 늘 가벼운 걸음으로 온다’ 중에서)

  숲속에서 숨을 고르는 적막한 시간은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내 안으로 거두어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가진 듯 마음이 편안하다. 내가 자연 속으로 스며들어 한 그루 나무가 된 듯 물심일여의 순간이 섬광처럼 스친다. 어느새 삶에 박동 소리를 들려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한 아름 안개꽃으로 피어난다. '세상사를 공유하며 말벗이 되어주는 한 사람, 용건이 없이도 안부를 묻는 아이들과 허물없는 친구들, 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가는 정의로운 사람들, 30여 년 한결같이 신뢰감을 주는 훼밀리 닥터, 콜로니 농장을 도시의 오아시스로 가꾸는 소박한 사람들, 깊은 통찰과 예리한 감성으로 삶을 이해시키는 작가들,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는 가수와 연주자들…' 
먼 순례길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그들을 나지막이 호명할 때, 아득히 먼 별 하나 내 안에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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