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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80 깔딱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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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3-05-24 09:03

정관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며칠 전부터 허리가 아파 바로 서서 걷기조차 힘들고 차도 겨우 올라 타고 내리고 하니 그 아프고, 불편함이 충치 앓는 것 보다 더 심한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동네 카이로프랙터에 가서 치료를 받기로 하고 벌써 2차례나 카이로프랙터의 손 아래에서 뼈 마디가 부서지는 듯한 우드득 우드득 하는 소리를 들었다. 앞으로도 몇 차례나 더 가야 할지를 모르겠다. 일이라곤 집사람 장 보러 가면 그 때 산 물건이나 들고 왔지 뭐 특별히 중 노동을 했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웬일인지 모르겠다. 누가 나이 80에 그 정도 안 아픈 사람 있냐고 하는데 이 경우는 약간 심하다.
  쇠로 만든 자동차도 10년, 잘 써야 20년 미만에 갈아 치워야 하는데 그보다 훨씬 약한 뼈대와 근육과 피부로 구성된 인체를 큰 고장없이 80년이나 사용 해 왔다는 것이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기적에 가까운 일에 항상 감사를 하다가도 카이로프랙터에 가서 기다리고 치료 받고 치료비를 지불하려면 짜증이 난다. 나는 왜 이렇게 지지리 허리가 아파야 하는가? 살만큼 살았으니 더 이상 아프지 말고 지금 바로 간다면......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런데 업친데 덥친 격으로 며칠 전 지금까지 잘 붙어있던 아래쪽 틀니가 갑자기 두 동강이 났다. 이 무슨 변고냐 싶어 아픈 허리를 달래가며 동강난 틀니를 들고 덴츄어 (denture) 에 찾아갔더니 이건 붙일 수가 없으니 새로 맞춰야 한단다. 이곳 치과가 비싼 건 샴척 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니 겁이 덜컥났다. 그래서 새로 하긴 하되 금액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싸게 해서 1,300불 이란다. 예상보다 비쌌지만 아무리 80을 바라보는 늙은이라지만 앞니 몇 개로 남은 생을 지날수 없어 그렇게 하라고 한뒤 기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하니 2주일 정도라고 한다. 아이고 그 사이 죽만 먹을 생각하니 허리 통증과 연관되어 이젠 살 만큼 살았으니 " 이참에 바로 가는 게 좋겠다." 는 엄살이 다시 햔번 머리를 스쳐간다.
  또 평소 치아 관리를 제대로 했더라면 이렇게 생돈 1,300불이 날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라는 인간은 게으르기 그지없고 돈에는 참 쫀쫀해 보이는 게 괜시리 내가 싫어진다.
  그런데 어럽쇼? 이게 웬일인가? 지금까지 그렇게 쌩쌩 잘 돌아가던 냉동고가 더위를 먹었는지 냉기를 뿜어내지 못한다. 허리 아픈데다, 틀니 부러졌지, 게다가 이 무더위에 냉동고까지 속을 썩인다. 이것들이 모두 짜고 이 늙은이를 골려 먹기로 작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냉동고 속의 식품들을 어떻게 꺼내 어디로 놓아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이거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요 설상가상에 외 눈에 안질이 난 경우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나이 80고개에 들어서기 직전, 등산으로 말하면 깔딱 고개에서 거친 숨을 내쉬는 중 인지도 모르겠다.
  60여 년 전 어리석게도 집이 가난해서 학비도 제 때 내지 못하는 형편이니 남들 다 가는 학원은 언감생심이요 그래서 대학입시에 떨어졌다고 믿었으니 그 울분이 상당했다. 그 때 그 울분을 삭히려고 서울 근교의 북한산, 도봉산 그리고 관악산을 번갈아 가며 오르곤 했다. 그 중 집에서 제일 가까웠던 관악산을 가장 많이 올랐는데 주로 당시 봉천동 등산로 ( 지금의 서울대 뒷길 정도로 추정됨 ) 를 타고 올라 연주암을 거쳐 과천으로 내려가거나 반대의 경로를 택했는데 어느 코스를 택하던 연주암을 100여 미터 앞두고 한창 숨이 차올라 헉헉대는 소위 깔딱고개가 시작되곤 했다. 이는 북한산이나 도봉산을 등반 할 때도 마찬가지로 정상을 100여 미터 앞두고는 여지없이 그 깔딱고개를 경험했다.
  지금 내가 인생의 깔딱고개에 도달해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그 문제의 냉동고로 돌아가서. 구입한 지 이미 5년이 경과했으니 수리 보증기간은 끝났고 이제는 기술자를 불러 고치던지 아니면 새로 장만해야 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생각하고 과거 냉장고 고장수리 비법(?) 이라고 들었던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본다.
  우선 냉동고를 비우고 플러그를 빼고 2-3일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루를 지내고 보니 궁금해 견딜 수가 없어 작동여부를 확인하려고 플러그를 끼웠다. 예상대로 무작동이었다. 다시 플러그를 빼고 하루 뒤 또 플러그를 끼워보았으나 역시 무작동 3일 째 되던 날은 거의 포기하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플러그를 끼워 보았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플러그를 끼우자 마자 냉동고가 우왕하며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와!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집사람을 불렀다. 이 냉동고 제대로 돌아가니 빨리 그 속에 들었던 먹거리들 다시 집어 넣으라고 소리친다. 집사람도 크게 걱정했던터라 기뻐하며 음식물을 집어넣으며 " 당신 참 재주 좋다" 고 한다. 어깨가 으쓱 해 지는 순간이었다.
  허리 아파 죽겠다는 생각, 틀니에 돈 걱정, 냉동고를 거의 다시 사야만 했던 걱정이 그 순간 싸그리 사라졌다. 그저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해낸 대단한 인물인 것 같이 느껴졌다. 사실 냉동고 문제는 허리 아픈거나 틀니에 비하면 그렇게 큰 일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사람의 기분이 이렇게 한순간에 180도 변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요만한 일에 그토록 일희일비 하는 나를 보니 성인 군자가 되기는 애전에 틀린 모양이다.
  이런 나를 보고 있자니 아주 어렸을 때 그저 재미삼아 읽었던 글이 아련히 떠 오른다.
< 시베리아의 어느 깡촌에서 곰에 쫒긴 한 젊은이가 마침내 폐 우물로 미끄러져 들어가다 중간에 뻗어 난 가냘픈 나뭇가지에 겨우 매달린다. 위에는 그 곰이 큰 입을 벌리고 금방이라도 뛰어들듯 으르렁 거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른 바닥에는 뱀 여러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가 매달린 갸날픈 나뭇가지는 그의 체중을 못 견뎌 어느 순간에 부러질지도 모르는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다.
- 그런데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그의 손등으로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가 잡은 나뭇가지 바로위에 벌집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이 청년은 그렇게 목숨이 위태로운 그 순간에도 횡재 했다는 듯 손등의 꿀을 열심히 빨아 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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